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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140」김영자 -'가을볕'▲김영자:인천출생/LS(주)미르상사대표/2021년현대시조등단/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감사

    「금요거제시조選 - 140」
          가 을 볕

 

 


 


    
  
          

      김   영   자

     햇살이 능청스레
     양볼을 간지르니

     부끄러 발그스레
     홍조로 익어가고

     논밭의 오곡백과는
     튼실하니 춤춘다.


     말문이 트인 듯이
     털어내는 알밤들

     갈햇살 가닥마다
     꿈들은 수확되고

     저녁답 황홀한 노을에
     내 모습이 얼비친다.


     뜨겁던 지난 계절
     이별이 아쉬워서

     먼 산의 나무들은
     머리를 염색하고

     단풍잎 꽃살문 끼워
     겨울 더욱 살갑다.

◎강태공(姜太公)의 낚시
‘운(運), 둔(鈍), 근(根)’, 삼성그룹을 세운 호암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 세글자를 붓글씨로 써 주곤 했다고 한다.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運)이 따라야 하고, 당장 운이 없으면 우직하게(鈍)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운이 닿더라도 근기(根, 근성)가 있어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그중에서 ‘둔(鈍)’은 ‘은둔’과도 연관이 있다.
 호암은 한창 시절에도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 은둔에는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참고 기다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틀어박혀 숨는다는 뜻은 아니다. 만인 앞에 나서는 것을 삼가는 쪽에 가깝다. 경영자들은 호암이 사업에서 물러나면서까지 은둔해야 했던 선택의 이면에는 상황을 판단하는 냉철한 안목이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거대한 변수가 등장했을 때에는 물러서서 조용히 지켜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지 숨어서 지켜보고, 힘이 모자란다면 변수가 사라지거나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미끼 없는 곧은 낚시 바늘로 세월을 낚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강태공이다. 강태공은 흔히 낚시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인재로 등용되기 위해 위수(渭水)에서 날마다 미끼 없는 곧은 낚시를 한 사람이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하루는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 근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형색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으나 식견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고 있을 정도로 탁월했다. 그 노인이 바로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이었다. 문왕은 여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던 주나라를 일으켜 줄 만한 인물이라는 뜻에서 태공망(太公望)이라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강태공이 그저 한가롭게 낚시나 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문왕을 도와 상공업을 발전시켜 어업과 소금업의 이점을 살려 훌륭한 정치를 했고 병법에 뛰어나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강태공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란 말을 남겼다. 강태공은 문왕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만큼 궁색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결혼 초부터 어려운 가정형편을 돌보지 않고 책만 끼고 살았고 그의 아내 마씨는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보따리를 싸서 친정으로 달아났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여상이 문왕의 스승이 되었다가 후에 제나라 제후로 봉해졌다. 여상이 제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는 소문은 마씨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마씨는 여상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떠났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돌아왔단다.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있다가 물 한 동이를 떠오라고 해서 그 동이의 물을 마당에 쏟으며 그릇에 담아보라고 했다.
 마씨는 당황해하며 물을 그릇에 담으려고 했지만 쏟아진 물은 이미 땅속으로 스며 들어간 후였다. 여상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한번 엎지른 물은 그릇에 담을 수 없고 한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소.

    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이것은 월산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의 시조다.
그는 세조의 손자요, 성종의 형이자 연산군의 숙부다. 살벌한 정치의 소용돌이와는 담을 쌓고 詩文과 자연을 즐기다 깨끗하게 살다 간 사람이다. 이 시조 한 수에 그의 맑은 지조와 높은 격조가 달밝고 서늘한 강바람 속에 선명히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추강의 밤에 찬 물결은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순수 감각이다. 낚시를 드리운 것은 하나의 습관일지니 고기 낚을 생각은 애시당초에 없는 것이다. 그 사이 밤은 이슥하고 달빛이 휘영청하다. 빈 배에 무심한 달빛만 싣고 돌아오는 초연함, 이 바로 행복이다. ‘무심’은 ‘아무 사심이 없음’을 뜻할 진데 ‘빈 배’는 허심탄회한 정신적 상황을 표현한 말이리라. 이 시조는 단순한 강호한정(江湖閒情)의 서정시가 아니라 고고하고 청순한 인생관을 노래했다고 이해된다. 둔(鈍)이며, 곧은 낚시로 낚은 세월이며, 빈 배 하며, 만추에 자세를 가다듬는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가을볕〉은 양볼을 간지르는 가을볕의 감흥을 3수 연작으로 읊은 김영자 시인의 작품이다. 가을볕의 고마움을 애란인들은 안다. 새촉의 가구경인 발브를 여무리고 성장을 돕는 보배로운 햇살이기에 되도록 볕살을 많이 쬐도록 한다. 하지만 한 때는 국어 교과서에 나온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 題한 안톤 슈낙의 글귀 때문에 가을볕에 대한 비감을 지니고 있었다. /울음 우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쪽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주검 위에 初秋의 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하략). ‘봄볕에 며느리 내 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 보낸다’는 속담이 있다. 가을볕은 피부에 이롭기에 생겨난 속담이지 싶다. 시인도 가을볕을 쬐기를 즐기는 모양이다./ 햇살이 능청스레 양 볼을 간지르니 / 안그래도 많이 타는 수줍음이기에/ 부끄러 발그스레 홍조로 익어가는/ 볼이다. 그 가을볕에/ 논밭의 오곡백과는 튼실하니 춤춘다./ 그래서 가을을 두고 결실의 계절이라 하지 않던가.

톡톡톡 불거지는 알밤들, 이를 두고 시인은/ 말문이 트인 듯이 털어내는 알밤들/ 이란다. 때 되어 불거지는 알밤을 두고 말문이 트인 듯하다는 표현은 그 정경을 사실감 있게 표현하였다 하겠다. 따가운 여름햇살과는 여실히 차이가 나는/ 갈 햇살 가닥마다 꿈들은 수확되고/ 있다. 어머니 손길 같은 갈 햇살 가닥이다. 그 가닥에서 알알이 곡식이 영근다. 이윽고 저녁답 황홀한 노을에 발그레진 내 모습이 얼비친다. 노을과 나, 그 대비가 자못 흥미롭다. 폭염의 여름, 뜨겁던 지난 계절을 함께 견딘 이별이 아쉬웠던가 먼산의 나무들은 저마다 머리를 염색했다. 어떤 나무는 붉게, 또 어떤 나무는 노랗게, 갈색으로 물들였다. 한바탕 이별의 잔치를 벌일 모양이다. 그 중/ 단풍잎 꽃살문 끼워 겨울 더욱 살갑다./고 3수 연작의 종장을 마무리 했다. 꽃살문은 큰 사찰에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더러는 단청이 퇴색한 것도 보이지만 정교함 아름다움은 어느 문에 비할바가 아니다. 단풍잎을 꽃살문 끼웠으니 겨울이 더욱 살갑지 않겠는가. 조락이 한창이나 앞산엔 머리를 염색한 나무들로 장관이다. 근심 ‘愁’자는 가을의 마음이라 하는 회의문자(會意文字)다. 愁愁로운 마음으로 낙엽을 쓸어본다. 근심도 함께 쓸렸으면 좋으련만.-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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