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 - 141」
       목포밴댕이 

       심 옥 배

     변두리 시인들은
     낭만이 넘치는가

     바닷가 밤거리를
     기세로 떠돌다가

     곰삭은 옛맛 그리워
     찾아드는 홍어집.

     알싸한 홍어 한점
     캬아 하는 소주 한잔

     다정도 발효되어
     절절이 넘치는데

     낙서로 채워진 벽면
     따로없는 예술이네.

     삼합을 먹고나선
     앳국이 제격이다

     헛헛한 가슴속에
     따끈하게 차오르는

     그 술집 목포밴댕이
     깊어가는 가을밤.

◎이현보(李賢輔)와 이정보(李鼎輔)∙1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地不長無名之草)는 명심보감 성심편에 나오는 글귀다. 삼라만상 하나하나에 이름이 붙여진다. 그래서 그런지 가왕 나훈아도 ‘잡초’의 가사에서 ‘이름 없는 잡초’가 아닌 ‘이름 모를 잡초’라고 했었지 싶다. 남에게서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이름을 인정받는 것과 같다. 사람의 이름에는 영혼 등 인생 전부가 담겨 있어 인생 항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름이 붙어 짐으로 사물의 존재가 드러나고 구별되어 진다.
 사람에 있어서는 한 사람의 일생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전해진다. 이런 가치와 중요성을 불가에서는 이름에 모든 것이 있다는 명전기성(名詮其性), 유가에서는 이름이 바르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하여 정명순행(正名順行)이라며 이를 강조해 왔다. 내 이름은 한자로 ‘李性輔’이다. 그런데 내 이름이 잘못 표기되어 기분이 상한 때가 몇 차례 있었다. 문학상 수상 상패에 ‘李成輔’로 적혔는가 하면 책자에 ‘李聖甫’로 적혀 있기도 했다. 그냥 한글로 이름을 적었으면 아무런 탈도 없으련만 굳이 한자로 적어 기분을 상하게 했다. 

 조선조에 시조 작품을 남긴 이현보(李賢輔, 1467-1555)와 이정보(李鼎輔, 1693-1766)의 ‘李’자와 ‘輔’ 자가 나와 같기에 관심이 많다. 먼저 이현보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이현보의 아호는 농암(聾巖)이다. 그의 향리에 ‘농암’이라는 바위가 있고 ‘귀먹은 바위’라는 뜻이 자신의 정신적 지향점과 같아서 스스로 붙인 아호이다. 그런 그에게 별호가 있었으니 바로 ‘소주병(燒酒陶甁)’이었다. 옛적 소주병은 아래가 펑퍼짐하고 목이 가늘고 긴 모양의 오지그릇이었으니 그를 일러 ‘소주병’이라 함은 거무틱틱한 외양과 그 속에 든 맑고 매운 소주가 그의 사람됨과 방불했기 때문이다. 연산군 때 문과를 치르고 사관(史官)을 거쳐서 폭군의 비위를 무던히 거슬렸던지 마침내 귀양살이를 했고 중종반정(中宗反正) 뒤에 귀양이 풀려 여러 요직을 지내면서 그 꿋꿋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아 당시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소주병’이라 한 것이다. 농암은 고려 때부터 전해오는 어부가를 개작하여 <어부 단가> 다섯 수를 남겼다. 이 어부 단가는 후에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에 영향을 주었다.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옛 선비들은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 십 년 공부를 했다. 선인들은 어렵게 얻은 벼슬이련만 환로(宦路)의 무상을 쉽게 달관하고 서둘러 전원이나 강호로 돌아가 자연 그대로 살기를 바랐다. 이현보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 중에 시름 없으니 어부의 생애로다
   일엽편주에 만경파(萬頃波) 띄워두고
   인세(人世)를 다 잊었거니 날 가는 줄을 알랴.
         - 이현보 ‘어부 단가’ 첫째 수
 이것은 <어부 단가> 다섯 수 중의 서사(序詞)다. 넓은 물결 위에 일엽편주, 즉 조각배 하나 띄우고 낚시줄 드리우면 날짜 가는 것도 잊는 초연한 경지가 읽혀진다. 농암은 지금으로 말하면 법무부 차관쯤의 벼슬인 형조참판(刑曹參判)을 그만두겠다고 몇 번 간청했으나 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으므로 신병 요양차 온천에 간다 하고 도망치다시피 고향 안동 예안(禮安)으로 돌아가 귀거래사를 읊으며 한 어부로 자처하였으니 온갖 시름이 다 가신 듯하다. 그러기에 뒤에 명종(明宗)이 농암의 덕망을 기려서 다시 청하는 글을 내려 “나귀를 탄 채로 대궐에 들라” 했는데도 굳이 사사(謝辭)한 것도 조금도 괴이한 일이 아니다. 다시 <어부 단가>의 둘째 수를 보자.
 
   굽어는 천심녹수(千尋綠水) 돌아보니 만첩청산(萬疊靑山)​
   십장(十丈) 홍진(紅塵)이 얼마나 가렸는고
   강호(江湖)에 월백(月白)하거던 더욱 무심(無心)하여라.
 “아래를 굽어보니 깊고 푸른 물이요, 주위를 둘러보니 첩첩 쌓인 푸른 산이로다. 길길이 피어난 속세의 먼지가 멀리 가려졌는가, 강호에 달이 밝으니 더욱 사심(邪心)이 없구나.”와 같은 뜻인 이 둘째 수는 ‘천심녹수-만첩청산’과 ‘십장홍진-강호월백’의 댓구로써 강호의 한정(閒情)을 읊고 있다.  농암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고향 예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강가에서 배를 탈 때 배에는 화분 몇 개와 바둑판 하나뿐이었다 한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전사옹(田舍翁)을 자처하며 집 앞 시냇가에 배를 띄우고 자연을 유유자적하니 사람들은 농암을 신선으로 여겼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능곡 시조교실 제공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작품 〈목포밴댕이〉는 만추의 계절에 술 고프고 정 고픈 사람들이 바닷가 밤거리를 떠돌다 찾아든 홍어집에서의 감흥을 3수 연작으로 읊은 심옥배 시인의 작품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 노트’를 옮겨 본다. 만추의 계절이 오면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태어난 달도 음력 10월이라 그런지 가을은 내게 사유의 계절입니다. 얼마전 지천명을 맞이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무지로 삶에 대한 참회의 눈물만 나옵니다. 결실의 계절만큼 인생도 50년을 살고 보니 이제는 모든 어우러짐 속에 있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 ‘참나’라 받아들여집니다. 잘 삭은 홍어처럼 저 또한 잘 삭아져 끝끝내 멋진 인생에 우리 함께 건배하고 싶습니다.
 ‘홍어’ 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지금부터 얼추 40년 전의 일이다. 나는 당시 난 전문 월간지인 ‘蘭과 生活’ 지에 한국란 채집기를 연재하고 있었다. 꽤나 인기를 모았던 이 채집기로 해서 목포대학교 국문과 유금호 교수와 친분을 갖게 되었다. 유금호 교수는 애란인이기도 했고 MBC 장수 드라마 프로그램이었던 「전원일기」의 극본을 썼던 김정수 극작가의 부군이었다. 이 채집기는 〈난을 캐며 삶을 뒤척이며〉로 제하여 단행본으로 발간하였고 유금호 교수가 발문을 써주었다. 이런 저런 연으로 자택인 강남 아파트로 초대를 받았다. 귀빈(?)을 모신다며 목포에서 직송하여왔다는 홍어를 내왔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홍어 때문에 그날 나는 죽는 줄 알았다. 그날로 해서 차츰 맛 들인 홍어, 이제는 없어서, 안 주어서, 못 봐서 못 먹게 되었다.
 사는게 곤궁해서 그 유금호 교수의 생사도 모른체 지내고 있다. 또 한 가지 홍어에 관한 일화가 생각난다. DJ 대통령께서 청와대에서 목포의 홍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늦게 홍어가 도착하였기에 늦은 이유를 물었더니 서해안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 때문이라고 했다. 화가 난 대통령께서는 ‘올려버려’라고 했단다. 그래서 서해안 고속도로의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에서 110km로 되었다나 어쨌다나.(呵呵大笑)

 변두리 시인들이 낭만이 넘친다며 당을 지어 바닷가 밤거리를 기세 좋게 떠돌았것다. 그러다 / 곰삭은 옛맛 그리워 찾아든 곳이 홍어집 / 이었다. 모르긴 해도 중곡동 홍어집이었지 싶다. 그 홍어집은 필자도 몇 차례 들린 곳이다. 탄성이 절로 이는 홍어 한 점에 캬아 하고 마시는 소주 한잔이다. / 다정도 발효되어 절절이 넘치는데 / 눈 들어 쳐다본 / 낙서로 채워진 벽면 / 이다. 그 벽은 / 따로 없는 예술이었다 /. 그렇고말고, 온갖 재담이며 위트가 넘치는 벽면 일진데 예술이 따로 없고 말고다. 다정도 발효되었단 표현엔 감탄이 절로 인다. 홍어 삼합은 삭힌 홍어에 돼지고기 수육과 묵은김치를 곁들인 음식을 일컫는다. 말만 들어도 벌써 군침이 돈다. 거기다 막걸리 한사발까지 더하면, 그 홍탁에 반하지 않는 사람은 나사 빠진 사람이라 하던가. ‘삼공불환차삼합(三公不換此三合)’, 삼공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다. 삼공을 주어도 이 삼합과 바꾸지 않는다 했으니 다한 말이다. 거기다 앳국이다. 앳국은 홍어 애를 넣어 끓인 국이다. 죽인다는 탄성이 절로 인다. 헛헛한 가슴속에 따끈하게 차오르는 그 술집, 이름하여 목포밴댕이다.  사람 약을 올려도 정도가 있어야지, 병약하여 금주 한지 오래인 필자, 어찌 약오르지 않으리오. 〈목포밴댕이〉로 해서 취기 오른 가을밤이다. 시간내어서 목포밴댕이 집을 찾을까 한다. 거기서 발효된 다정으로 가을밤을 보낼까 한다. -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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