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산책(276)

        고향

    海亭 옥영재

달은 밝아
휘영청 고향 땅 밝히는데
거기에 뉘 있어
늙은 몸을 부르는가

아서라 
앞 산 불러와
한잔 술에 거나하자

고향땅 어디에도 묵은 이 하나 없어
산천마저 
쉬 늙어 허리조차 굽었으니

툇마루 
텅 비인 자리 
굽이치는 피톨이여

*피톨:혈액의 고형 성분으로서 혈장 속에 떠다니는 세포

감상) 

눌산 윤일광 시인

올해의 마지막 작품으로 해정(海亭) 옥영재 선생님의 <고향>을 선했다. 해정선생께서는 고운 최치원문학상과 월요문학상을 수상하신 분으로 시적감각과 언어의 부림이 뛰어난 문인이시다.
<고향>은 시조다. 그러나 행의 구성이 구태스런 옛시조의 음보보다는 현대시의 느낌이 나도록 배열을 낯설게 했다. 그런 까닭에 시조라기보다는 시의 냄새가 물씬 풍기게 된다.
누가 불러서 고향을 찾는 것이 아니다. 이미 ‘고향땅 어디에도 묵은 이 하나 없어’ 앞산을 불러와 한 잔 술 거나게 하자는 행간에 이르러서는 인생무상의 비애를 느낀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고향집툇마루에 서려있는 피톨에서 독자의 슬픈 감정을 억제한다.
시는 감정의 발로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다. 지극히 절제하면서 평온을 유지한다. 이를 시 창작법에서는 ‘감정의 대위법’이라 부른다. 나이 들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고향에 대한 애잔한 감정을 ‘피톨’이라는 용어를 내세움으로 슬픈 감정을 순화시킨다.
곧 설날이 다가올 것이다. 고향은 누가 있어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피톨이 나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올 설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을 것이다. (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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