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산책(277)
       어머니의 등

    길송 박주일 

날마다 새벽이면
어머니와 동생들과 앞산을 넘었다
어머니는 머리에 채소 몇 이파리를 이고
우리는 책가방을 메고
해가 저물어야 돌아올 집을 생각하며

산길을 내려오면
넷째와 막내는 초등학교 가는 길로
둘째와 셋째는 중학교 가는 길로
나는 고등학교 가는 길로
어머니는 시장으로 가는 길로
주어진 하루를 채우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수업을 마치면 새벽에 헤어졌던 장소로 다시 모여
어두워진 산을 넘어 집에 가는 길은 어머니 등처럼 가팔랐고
자식들 배곯지 않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은
허기진 배를 채워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쌓여
어머니의 굽은 등이 되었나 싶다

고단하게 주어진 하루 내내 비추어진 햇살은
다듬어지지 않은 말의 발톱처럼 어색하였고
어머니의 허리는 더 휘어져 갔다
늦가을처럼 어머니는 늙어가고
서릿발 시린 낙엽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감상) 

눌산 윤일광 시인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누구든 마음이 설레게 된다.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늘 두 가지의 길에서 서성이게 된다. 그 하나는 지나간 것에 대한 아름다움과 다가올 것에 대한 환상이다. 대체의 인간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 것은 그때가 아무리 힘들고 외롭고 아팠다할지라도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화해하고 악수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렇다. ‘머리에 채소 몇 이파리를 이고 … 시장으로 가는 길’은 ‘자식들 배곯지 않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의 일상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쌓여 … 굽은 등이 되었다’는 시적화자의 기억은 비단 시적화자의 기억이 아니라, 지독히도 가난했던 그 시절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슬픈 모습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추억에 대해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고단하게 주어진 하루 내내 비추어진 햇살은
      다듬어지지 않은 말의 발톱처럼 어색하였고
      어머니의 허리는 더 휘어져 갔다’
시인의 이런 표현이 독자의 시선을 묶어두면서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는 시의 영원한 소재가 된다. 계묘년 새해 아침,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엄마이기를 바라면서 이 시를 선하여 올려본다.(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 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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