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47」   
평택으로 돈 벌로 간 아내           

      








        김현길
살기가 힘들어서
아내가 돈 벌로 갔다

안전모 쓴
웃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보다가
눈물이 핑 돌아
휴지통을 찾았다
어제는 목쉰 소리로
코로나에 걸렸단다
덜커덕 겁이 나서
그만 내려오라 했다

아침 밥
누룽지 데워놓고
우두커니 서 있다.

◎ 돈과 사지(四知)•2
 검은 토끼해라는 癸卯年이다. 경제며 물가, 부동산, 금리 등 하나 같이 어려운 것 투성이 인데 검은 토끼해라고 하니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마음이 어둡기만 하다. 올해도 돈으로 인한 가슴앓이가 계속되리란 근심 속에 언 몸을 녹이려 양지에 앉았으려니 저수지의 분수는 마냥 솟구치고 있다. 인간의 불안은 실제보다 과장된 것이 많다고 한다. 인간의 근심 걱정 중 90% 이상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정말로 걱정할 만한 것은 4%에 불과하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보고는 음미해 볼 만하다. 근심과 걱정은 대체로 돈에서 비롯된다. 아침부터 시작된 돈 걱정이 저녁때까지 계속된다. 돈타령이 기상나팔이 되고 돈타령이 자장가가 되고 보니, 돈이 일상의 전부가 되었다. 

 돈은 어느 사이에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 개인의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인격까지 대신하는 절대가치가 되어 버렸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돈은 모두가 서슬이 시퍼렇도록 추구하는 가치가 되고 말았다. 돈이란 말은 언제 생겨났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두 가지 설이 유력한데, 그 하나는 고려와 조선조에 돈이 패(貝), 구(龜), 천포(泉布), 도(刀), 백(帛), 맥(陌) 등으로 호칭 되었는데, 그중 음(音)이 ‘도’와 ‘돈’으로 혼용되던 ‘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화폐의 순환성에 근거를 둔 순환 사상의 한 설이다. ‘돈은 돌고 돈다’는 말의 ‘돈’에서 그 어원을 찾고 있다.  낙향한 지 올해로 30년이다. 어쩌면 돈에 시달린 30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말이 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고향인 키프로스 섬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젊은 조각가가 살았다. 남다른 예술적 조예와 감성을 가진 그는 여자에게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조각에만 열중했다. 그러던 그의 생활 패턴이 상아를 깎아 멋진 여인의 나체상을 만든 이후부터는 달라졌다. 그 조각은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여인상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아름다운 이 작품에 푹 빠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여인상에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터 갔다. 매일 여인상을 보고 만지는 일이 중요한 일상사가 되었다.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듯 조각상에 말을 거는가 하면 꽃을 꺾어 바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그의 마음이 한편에는 이 조각품이 진짜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함이 자리 잡았다. 마침 키프로스 섬 최대축제인 아프로디테 제전이 열리자 그는 가슴 속에 품은 소원을 여신에게 빌었다.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기원을 들은 여신은 상아 여인상에 혼을 불어넣어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조각상이 살아있는 여인으로 변하자 피그말리온은 결혼 후 파프스라는 딸을 낳았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을 만들었다. 돈이 얼마나 궁했는지 가지고 있는 돌이 죄다 돈이 되었으면 하고 피그말리온처럼 석신(石神)께 간절히 기도나 드려볼까 하는 생각도 하여 보았다. 부질없는 줄을 알면서도 말이다.

     양어깨에 매단 짐이
     한 백 근은 되는 갑다
   
     백 근 짐 죄다 지고
     갯가로 갈 일이다
  
     간물에 배추 헹구듯
     시름 덩이 헹궈 볼까.

     빚덩이 끌어안고
     한 삼십 년 살다 보니

     이력이 붙은 가난
     옹이처럼 야물어져

     빚도 다 재산이란 말
     그 말뜻을 알 것 같다. 
   拙詩, ‘어떤 세상사’, 전문

 화병(火病)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병이라고 한다. 1996년 미국 정신과협회에서는 이 화병을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공인한 바 있다. 화병의 영어 표기도 말 그대로 ‘Hwa-byung’이라고 한다. 근대 산업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열심히 달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그만 기력이 쇄진하여 그 화병이 생겼는지 모를 일이다. 모르긴 하나 화병 역시 돈 때문에 비롯된 정신질환이지 싶다. 검은색을 두고 동양에서는 지혜의 상징이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색상으로 부정의 의미는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癸卯年,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 하지 않던가. 지혜롭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고 마알간 하늘에다 눈길을 보낸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계간 현대시조 발 행인 능곡 이성보 시인

시조 작품 〈평택으로 돈 벌로 간 아내〉는 생활 전선에 뛰어든 아내를 두고 못난 지아비 심사를 사설시조로 읊은 김현길 시인의 思婦曲이요 自嘆歌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중국 당나라 때의 인재 전형 방식에서 유래한 말로 당서(唐書) - 선거지(選擧志)에 나온다.신언서판은 용모, 언변, 글씨, 판단력의 기준을 의미한다. 이는 고려 때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물 평가의 기준으로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엔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되고 보니 이재술(理財術)이 신언서판의 앞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돈이 없으면 신언서판이 공염불이 되고 만다.

 시인은 글재주가 상당하다. 3권의 시집 (홍포예찬 ⸱ 두고 온 정원 ⸱ 나의 전생은 책사)와 시조집 1권 (육순의 마마보이), 수필집 1권 (비에 젖은 편지) 그리고 소설집 (임 그리워 우니다니)을 펴낸 바 있다. 모두(帽頭)에 이재술을 들먹인 것은 글재주에 비하여 이재술은 별로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빚쟁이는 왜놈보다 무섭다고 했다. 시달려 본 사람은 안다. 연말이면 그 시달림이 극에 달한다. 보다 못한 아내가 나섰다. 평택의 어느 공사판에서 안전모를 쓴 아내가 사진을 보내왔다. 따라 웃고 싶지 않은 남편, 사진을 보다 말고 자괴감에 눈물이 핑 돌아 휴지통을 찾았다. 코로나에 걸렸다는 아내, 덜컥 겁이나 그만 내려오라 했단다.

 하는 일마다 잘 안되는 시인, 그를 두고 門出來福을 떠올렸다. 옛날에 청춘 남녀가 있었다. 둘 다 외딴집에 사는데 몹시 가난했다. 한참 나이가 들도록 결혼을 못 하고 있었는데 방물장수의 도움으로 서로 결혼하기로 하였다. 이윽고 결혼일에 신랑이 처녀 집에 도착하니 신부가 너무 반가워 뛰어나오다 그만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죽고 말았다.아랫녁에선 지지리 복 없는 사람을 두고 문출래복이라고 한다.

/아침밥 누룽지 데워놓고 어두커니 서 있다/는 시인, 6권의 저서마다 고향 둔덕을 예찬하였건만...명심보감 성심현(省心篇)에 갈시일적여감로 취후첨배불여무(渴時一滴如甘露 醉後添盃不如無)라 했다. 목이 마를 때 한 방울의 물은 단 이슬과 같고, 술 취한 후에 마시는 술은 안마시는 것만 못하다. 시인에게 갈시일적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 내 처지가 부끄럽기만 하다.씁쓸한 마음에 허영란의 노래 ‘날개’를 흥얼거렸다.

     ‘날아라 날아라 고뇌에 찬 인생이여
     일어나 뛰어라 눕지 말고 날아라
     어느 누가 청춘을 흘러가는 물이라 했나
     어느 누가 인생을 떠도는 구름이라 했나.’

 시인에게 드리는 갈시일적 마음으로..-능곡 시조교실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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