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48」   
        홍시                   

      윤미정 

아들의 초딩시절
크나큰 홍시 하나

두 눈을 반짝이며
껍질째 삼키면서

엄마아 외할머니는
왜 이렇게 착하지.

해마다 상강 무렵
엄마표 홍시 택배

겨우내 우리 가족
간식이 되었다네

고향집 입에 베물고
복에 겨워 웃는 나.

평생을 자식위해
아꼈던 그 모든 것

모두 다 내어주고
달팽이 껍질 되네
 
주홍빛 추억 하나가 
전화기를 붙든다.

◎가짜와 진짜
 세상엔 가짜가 많다. 거제시장을 역임하시다 지금은 야인이 되신 K형으로부터 들은 얘기다.경남도의원 시절 하얼빈이 있는 흑룡강성을 일행들과 함께 친선 방문하였는데 선물로 백사주를 받았다고 한다. 수년 후 아끼던 백사주의 마개를 여는 순간 마개 쪽으로 치솟아 있던 백사의 머리 부분이 이상해지더란다. 눈여겨보니 가짜였다. 귀한 손님에게 드린 선물이 가짜라, 다한 말이다.가짜가 어찌 술뿐이랴. 가짜 뉴스에 가짜 화장품, 가짜 약품도 있다. 위조지폐도 있으며, 가짜 그림과 골동품 등, 거기다가 모파상의 진주목걸이가 아니더라도 가짜 다이아 반지, 가짜 보석 소동도 없지 아니하다.가짜와 진짜가 공존하고 있다.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 부지기수다.

 옛날 중국 제(齊)의 선왕(宣王)은 간(竿)이라고 부르는 기악(器樂)의 삼백인 합주를 퍽즐겼다고 한다. 늘 합주만 시키므로 남부에 살던 한 처사가 취간(吹竿)할 줄도 모르건만 그 악기 합주 대열에 슬그머니 참여하여 그저 간(竿)을 입에 다 대기만하고 시늉만 함으로써 악사의 행세를 하며 지냈다고 한다.그 후 선왕이 돌아가시고 그 세자 되는 민왕(悶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도 역시 간악(竿樂)을 애청하였다. 그러나 민왕은 합주식을 원하지 아니하고 각 개인의 단주식을 좋아하였다.일이 이렇게 되자 그만 남부 처사의 마각이 들어나 줄행랑을 놓았다.가짜 행세를 하는 사람은 옛날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가짜가 필요한 경우도 없지 아니하다. 고려청자의 모조품을 만들어 즐기기도 하는가 하면 마멸되어 가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가짜 석탑이나 비석을 만들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진짜를 아끼고 보존하기 위해 가짜를 만드는 것이다.
 민속놀이 같은 것을 보거나 옛것을 모방할 땐 의례 가짜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가짜 동물, 가짜 임금, 가짜 신하, 가장행렬이 오히려 보기 좋은 것이다. 우습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가짜 행세를 업으로 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배우니 연극배우니 하는 이들도 가짜 역을 맡기 위해 생활하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가짜를 위한 가짜, 진짜 대응을 하기 위한 가짜, 이처럼 가짜로서의 생명과 가치를 지닌 가짜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남의 빈터를 빌려
   비닐로 둘러친 난 실

   이름 치레란 놀림 속에
   능곡재(菱谷齋)라 양각하여

   곰삭은 정지 문짝을
   현판으로 내걸었다.

 
   물에도 썩지 않는
   제주도 참벗나무
   
   삼다도 바람을 견뎌
   아직도 피가 돌아

   세월의 앙금을 털고
   가슴 열어 보인다.

   삭아야 제맛이 나는
   속이 꽉 찬 참벚나무

   장인의 손끝을 울리고
   속살에 새긴 글씨

   현판은 무슨 현판이냐고
   굽어보고 있구나.
            拙詩, ‘현판식을 마치고’, 전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을 들출 필요도 없다.문제는 가짜가 진짜를 몰아내고 진짜 행세를 하려는데 있으니까 말이다.예나 지금이나 가짜를 미워하고 가짜를 몰아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왔다. 그러나 좀처럼 없어지기 어려운 것이 가짜이기도 한가 보다.가짜를 볼 줄 아는 눈이, 그리고 가짜에 속지 않을 배움의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삭풍에도 의연한 나목을 본다.겨울이 어서 갔으면 싶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계간 현대시조 발 행인 능곡 이성보 시인

시조 작품 〈홍시〉는 친정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홍시를 매체로 하여 3수 연작으로 읊은 윤미정 시인의 사모곡이다. 홍시(紅柿)는 아주 잘 익은 감이다. 시인이 읊은 〈홍시〉는 모르긴해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대봉감이지 싶다.
예전의 홍시를 두고는 까치밥을 떠올린다.펄 벅 여사는 장편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1933년) 받았다. 우리에게는 노벨문학상 수상보다도 한국 사랑에 대한 고마움이 더 각인되어 있다. 그녀는 작품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라고 예찬했다. 그녀가 남긴 유서에도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이며, 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쓰여 있을 정도이다. 그녀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1960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몇 가지 경험 때문이었다. 그중 하나가 ‘까치밥’에 얽힌 일화이다. 어느 날 그녀는 따지 않은 감나무의 감을 보고 통역을 통해 근처에 있던 사람에게 물었다.
“저 높이 있는 감은 따기 힘들어서 그냥 남긴 건가요?”
“아닙니다. 이건 까치밥이라고 합니다. 겨울 새들을 위해 남겨둔 거지요.“
그녀는 그 사람의 말에 너무도 감동하여 탄성을 지르며 말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 겨울 새들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두는 성품, 그 성품을 펄 벅 여사는 예찬했으리라. 이제는 대봉감을 비롯하여 상품 가치가 큰 감을 위주로 감나무를 재배하고 보니 까치밥을 남겨 두지 않는다. 겨울 새들의 입장에서는 야박한 인심이라 혀를 끌끌 차지 싶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감은 주린 배를 채워 줄 요긴한 식량 노릇을 하였기로 선인들은 감나무를 사랑했다. 또한 칠절(七絶)과 오덕(五德)으로 이를 상찬했다.
 칠절은 7가지 좋은 점으로
 첫째 수명이 길어 오래 살고
 둘째 무성한 잎은 좋은 그늘을 만들고
 셋째 새가 집을 짓지 못하고
 넷째 벌레가 자라지 못하고
 다섯째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째 열매가 먹음직스럽고
 일곱째 잎이 큼직하여 글씨를 쓸 수 있다를 들었다.
 또 비록 일개 나무에 불과 하나 사람이 갖춰야 할 오덕인 文, 武, 忠, 孝, 節을 품고 있다고 했다. 그 잎이 넓어 글씨를 쓸 수 있으니 文,
 단단한 가지는 화살촉을 만들 수 있으니 武,
 겉과 속이 한결같이 붉으니 忠,
 노인도 즐겨 먹을 수 있으니 孝,
 서리를 이기고 오래 달려 있으니 節, 이라 했다. 오덕을 갖추었으니 예절지수(禮節之樹)로 불리며 나무 중의 으뜸으로 삼았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크나큰 홍시를 받고선 신바람에 두 눈을 반짝이며 껍질째 삼키면서 / 엄마아 외할머니는 왜 이렇게 착하지. / 절묘한 묘사에 독자로 하여금 입가에 웃음이 절로 일게 한다. 그 묘사는 둘째 수로 이어져 점입가경이다.서리 내리는 상강 무렵이면 엄마표 홍시 택배는 연례행사였다. 그 홍시 택배는 온 식구의 겨우내 간식이 되었다. 입에 베무는 홍시는 꿈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집, 바로 친정이었으니 그 행복감이라니, 어찌 흔연한 마음이 아니겠는가.
 일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 아꼈던 그 모든 것을 모조리 자식에게 내어주고 빈 껍질만 남은 어머니. / 달팽이 껍질이 되고 만 / 어머니시다./ 주홍빛 추억 하나가 전화기를 붙든다 /. 전화기를 붙들은 종장으로 해서 <홍시>는 시가 되었다.그것도 다함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思母曲으로 말이다.능곡 시조교실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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