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민망함을 감추려고 웃음기 섞어 말씀하셨다. 시도 때도 없이 방귀가 나오니 아무리 허물없는 자식들 앞이라 해도 부끄럽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말씀하셨을 터인데 나는 흘려들었다. 나뿐 아니라 다섯이나 되는 자식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은 데에는 노인 어머니의 방귀를 망신을 살만한 허물로 여기지 않은 탓도 있다. 막내는, 나이 들면 괄약근이 약해져 그럴 거라고 제법 아는 척을 했다고 한다. 그때 우리 형제들은 모두 제 살기에 바쁘던 때였다. 연년생이다시피 터울이 없어서 자랄 때는 올망졸망 많은 것 같더니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 한 자리에서 얼굴보기조차 쉽지 않다. 친척 관혼상제에 참석한 때나 한 둘의 얼굴을 볼까말까 할 정도였다. 형제 둘은 외국에 나가 살고, 국내에 있는 형제들도 맞벌이하랴 제 살림하랴 콩 튀듯 팥 튀듯 동동거리는 처지였으니 말이다. 엄마는 어느 자식이 병원에 동행해줄 수 있으려나 며느리 눈치, 딸의 눈치 보다가 감기 걸린 것을 핑계 삼아 혼자 병원에 가셨다. 양력 설 쇤 며칠 후였다.

내과 과장은 외국에 있는 큰 사위의 친구였던 터라 임의롭다고 여기셨던지 또 방귀타령을 하셨다. 변비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의사는 “노인성이지요 뭐.” 가볍게 말하면서도 입원하여 검사 받아보길 권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엄마 방귀와 변비의 원인이 드러났다.

엄마의 대장암은 그날 바로 국내외 자식들에게 알려졌다. ‘다행히 초기’라는 말을 덧붙여서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충격을 줄였다. 수술하면 예후는 괜찮을 거라고 암을 진단한 의사가 설명했다. 그건 암을 단계별로 나눈 일반적인 소견일 뿐이다. 엄마의 연세와 허약한 체질 그리고 류마티스 진통제인 스테로이드계 약 복용했던 것이 걱정되어 우리는 수술을 쉽게 결정하지 못 했다. 하지만 수술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수술을 앞두고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 입원하셨다. 6인 병실에서 암 수술 대기자인 엄마가 겉보기엔 가장 가벼운 환자라서 당장 위로는 되었지만 병실의 환자들이 남의 일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시한부 2개월 선고받은 신장암 환자, 간병인이 일일이 수발을 해야만 하루하루 사는 중증의 할머니, 코에 삽입된 호스로 유동식을 넣어 연명하는 중년여자. 언제 귀가할지 막연한 환자들뿐이다. 그들이 귀가를 할 수는 있을까. 나는 갈 때마다 침상에 붙은 이름표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바뀌었는지 둘러보았다. 여명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긴 해도, 엄마가 그 병실에 있는 동안 명줄을 놓친 사람도 귀가한 사람도 없었다. 엄마 병실에서 그들을 보고 온 날이면 내 몸 어딘가에서도 병이 자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암은 진단한대로 초기라서 암부위의 대장을 잘라내고 잇는 수술은 순조롭게 끝났다고 한다. 항암치료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회복 후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수술 환부가 잘 아물고 퇴원하여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못한 효도를 원 없이 하려고 마음먹었다. 오남매 모두 그런 옹골진 다짐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 고비만 넘기면 되었는데 엄마의 폐렴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암 수술까지 견뎌낸 엄마가 폐렴으로 휘청거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고령의 환자가 큰 수술 후 폐렴이 오면 치료가 어렵고 위험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결국 기도 삽관을 해서 엄마는 목소리마저 잃었다. 중환자 집중치료실과 일반 병실을 두어 차례 옮겨 다니는 동안 엄마의 빈집을 지키는 매화나무는 꽃눈이 트고 낮 동안은 바람도 많이 보드라워졌다.

엄마는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셨을까. 수술을 일주일 앞두고 입원해 있는 동안 우리 형제들에게 번갈아 하룻밤 씩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하셨다. 내가 엄마 곁에서 하룻밤을 같이 한 그 밤, ‘나는 이제 거의 끝까지 온 것 같다.’고 먼저 운을 떼셨다. 생애 한 바퀴를 돌아와 먼 곳으로 떠날 때가 되었다고 느끼시는 것 같았다. 나는 의사가 수술하면 금세 회복된다고 했으니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날 밤 엄마와 나는 소곤소곤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은밀하게 하신 이야기는 ‘지금 갖고 있는 주식은 말이다, 팔아서 네가 가져라. 네가 일러준 대로 해서 불린 돈이니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날 밤 엄마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얘기인 듯 두 번 세 번 강조하셨다. 엄마 퇴원하시면 그 돈으로 다 같이 언니가 있는 미국이나 가자고 나는 허풍을 떨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기회, 엄마는 다섯 자식을 하룻밤씩 데리고 있으면서 꼭 해줄 이야기를 미리 마음속에 정리해 두셨던 것 같다.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고 미리 정리할 기회가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죽음이다. 엄마가 기도삽관으로 목소리를 잃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 하셨겠지만 정신이 온전하고 기력을 잃기 전에 자식들 각자에게 할 말과 때를 맞추어서 전하셨다. 그런 엄마의 염력을 우리는 두고두고 신기하게 여겼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창창하게 장래를 설계하다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는 안타까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죽음이 목전에 있는데도 막상 본인은 인정하지 않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임종을 맞는 사람 또한 많을 것이다. 

잦은 방귀의 원인을 밝히러 한겨울에 입원한 엄마는 팔십구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셨다. 장남인 오빠가 엄마 곁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날, 집에 가고 싶다고 간절히 말씀하셨단다. 임종복 차림에 간단한 인공호흡기를 목에 달고 들것에 실려 귀가하는 집주인을 꽃잎 지기 시작하는 목련과 발갛게 봉우리 맺힌 영산홍이 맞이했다. 오신지 두 시간여 후에 엄마는 생애 가장 힘든 겨울을 보내고 봄볕 속으로 너울너울 날아가셨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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