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50」

    하늘말나리

      심  옥  배
   

   새벽녘 하얀 고요
   스러지는 별 하나

   마지막 한줄기 빛
   솜털로 내려앉아

   빨갛게 피어오르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한낮의 별이거나
   거센 비바람에도

   언제나 새초롬히
   신부처럼 외로앉아

   이순간 화양연화를
   기쁘게 노래합니다.

◎ 人 香 • 1
 매화향자고한래(梅花香自苦寒來•매화의 향기는 고통과 추위를 겪는 데서 오는 것이다)는 중국​ 남송(南宋)의 철학자 주희(朱熹)의 『경세현문(警世賢文)』 근분편(勤奮篇)에 나오는 싯귀다. 매경한고(梅經寒苦•매화향은 고통과 추위속에서 나온다)라는 사자성어는 이 싯귀에서 나왔다.

계묘년 설날 아침에 벙근 홍매의 향기를 맡으며 떠올린 싯귀이다. 청아한 매향에 심혼이 맑아짐을 느낀 설날 아침이라 올해엔 무언가 좋은 일이 있지 싶었다. 향기로운 향의 내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반면에 악취에는 너나없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마련이다. 향기는 자연적으로 풍기는 것도 있고, 인위적으로 발라서 나게 하는 것도 있다. 자연의 향기라면 아름답게 피어난 꽃에서 나는 향기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꽃의 향기는 그윽하고 풍요롭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본능적으로 그 꽃의 향기를 코로 맡아보게 된다.

사람은 코로 냄새를 맡아 후각 작용을 하는가 하면 눈으로는 여러 가지를 관찰하면서 취택을 하게 된다. 그것은 향을 코로 음미하면서 눈으로는 맛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몸을 태워서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향은 희생정신의 교육적인 향기를 선사한다. 향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 그 예로 향유(香油)가 있으며, 그리고 향조(香祖)라고 불리우는 궁노루의 향장(香獐)도 있다. 그 밖에도 향초(香草)와 향차, 향화, 향목, 향촉 등 그 가지 수는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이러한 향은 제각기 독특함과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도 싫지 아니하다. 무엇보다 여름날 짙푸른 녹음에 묻혀오는 싱그런 풀 향기, 가을날 낙엽이 되어 그 낙엽을 끌어모아 불태울 때,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의 구수한 향기는 일품이다.  자연이 주는 향기도 향기거니와 더불어 인위적인 향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고반여사(考槃餘事)’는 옛사람들의 생활 취미와 즐거움을 적은 책으로 명나라의 도륭(屠隆)이 편찬하였는데 고반은 세상에서 은둔하여 자신만의 즐거움에 잠긴다는 뜻이다. 서적과 그림에 대한 것, 종이, 먹, 붓, 벼루에 대한 것, 거문고에 대한 것, 향과 차에 대한 것, 분재, 정자, 의복, 한약에 대한 것들이 내용이다. 그중 향에 대하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속세를 떠나는 은자가 노자의 ‘도덕경’을 논하면서 향을 피우면 마음이 맑아지고 정신이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밤늦은 사경에 달이 기울어 흥도 깨지고 처량할 때에 향을 피우면 심회가 통하여 시라도 읊조리게 될 것이다. 맑게 갠 날 창가에서 옛날 책자를 베끼거나 먼지를 털어내고 한가롭게 앉아 있을 때, 혹은 밤에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으면서 향을 피우면 졸음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근래에 향을 피우는 사람들이 그 진정한 취미를 알지 못하고 여러 가지 향을 합쳐서 기교를 자랑하니, 이런 인공의 농염한 것이 값은 비싸지만 어찌 정결한 부인이나 덕이 높은 고사(高士)에게 어울릴 수 있겠는가. 마땅히 천연으로 된 침향(沈香)의 유아충담(幽雅沖澹•아담하고 그윽하며 성질이 결백함)함을 취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솔가지 실눈 뜨는 옥녀봉 산자락에
   밀물 썰물 헤아려 온 춘란의 촉이 튼다
   수천 년 샛바람을 견딘 섬사람의 기상이려니.

   신열을 토해내는 햇살은 눈 부시다
   고절한 잎새마다 거제 혼은 묻어나고
   표백된 물빛 언어는 소심으로 피어난다.

   갯벌처럼 질척이는 이 고장 따슨 인정
   난향에 취한 섬이 꿈틀 기지개를 켜면
   반도에 퍼지는 봄기운 신바람이 절로 인다.
             拙詩, ‘거제 난향’, 전문

향기의 여운이란 사람을 흥취(興醉)케 한다. 때문에 고급 향기일수록 살아서 움직이며 더불어 감동과 감화를 준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죽었을 때나 제사를 지낼 때, 어떤 엄숙한 기도를 올릴 때도 꼭 향을 사르게 된다. 그러고 보면 향은 우리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미래지향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흉사는 흉사대로 길사는 길사대로, 병들은 자의 쾌유를 빌 때, 또 절에서 불공을 드릴 때도 향은 빠질 수 없다. 향기 향(香)자는 가장 대표적인 곡식인 禾(벼 화)자 아래에 曰(甘: 맛 감의 변형)자를 받친 글자로 쌀(禾)로 밥을 지을 때 풍기는 냄새가 입맛(口)을 돋군다는 데서 향기롭다는 뜻이 되었다 한다. 그래서 香의 원래 뜻은 새로 수확한 곡식으로 갓 지어 낸 밥의 ‘향기’이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하늘말나리〉는 숲의 그늘 없이 도로 변두리에 핀 하늘말나리를 지난여름 내내 마주하면서 느낀 감회를 2수 연작으로 읊은 심옥배 시인의 작품이다. 나리는 외떡잎식물로 이루어진 백합과에 속하는 나리속 식물을 말한다. 원예식물로 널리 심고 있는 백합도 나리속 식물이지만 나리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개나리도 줄여서 나리라고 부르고 있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본다.

 “유난히 무덥던 지난여름 내내 숲의 그늘 없이 핀 하늘말나리를 도로 변두리에서 오고 가면 마주하였습니다. 자연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우주의 본질 즉, 소우주가 되도록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꽃은 어떻게 가느다란 줄기에 무거운 꽃송이들을 피워 보란 듯이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지요. 그늘 없는 황막한 길 위에서도, 그토록 격렬한 비바람에도 꽃이 하늘을 향해 쳐들고 있는지요. 나는 매일 수 없이 일어나는 번뇌에도 고개를 떨구는데 이 가녀린 꽃 한 송이로 삶의 신성함을 경험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전 세계에는 100 여종의 나리속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 여종 가까운 나리가 자생하고 있다. 나리는 꽃이 피는 방향에 따라 접두사가 붙는다. 하늘나리는 하늘을 향해 피고, 중나리는 옆을 향해, 땅나리는 땅을 향해 핀다. 땅나리는 나리 중에서 유일하게 짙은 반점이 없이 깨끗하다. 마치 성형수술로 점을 뺀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다 ‘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줄기 아래쪽에 여러 장의 돌려나는 잎(돌려나기 ⸱ 윤생)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하늘말나리는 꽃이 하늘을 향해 피고 돌려나는 잎들이 있는 나리를 가르키는 것이다. 하늘나리는 꽃이 하늘을 향해 피는데 돌려나는 잎이 없다는 뜻이다. 또 섬말나리는 울릉도 특산이라 ‘섬’자가 붙었다. 섬말나리는 돌려나는 잎이 2~3층인 것이 특징이다. 홍자색 꽃이 피는 아름다운 솔나리도 있는데 잎이 솔잎처럼 가늘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몸이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나리는 ‘참나리’다. 참나리는 나리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참’이라는 접두사가 붙었다. 하늘말나리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반그늘과 부엽질이 많고 모래 성분이 많은 토양에서 잘 자라고 우산말나리, 각시나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밤하늘에 별들이 스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새벽녘에 하얀 고요 스러지는 별 하나/, 새벽녘은 고요롭다. 그 고요로움은 하얀 고요로움이다. 별 하나가 스러진다. 그 스러진 별은/ 마지막 한 줄기 빛이 되어 솜털로 내려앉았다. 그리곤 그때 빨갛게 하늘말나리가 피어났다. 때로는 한낮의 별이거나 거센 비바람이기도 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새초롬히 신부처럼 외로 앉았다./ 하늘말나리는 여럿이 피지 아니하고 혼자 피어난다. 꽃대궁은 직립이다. 자세 흩어짐이 없는 언제나 새초롬한 신부 같다. 그래서 외롭다. 그래서 홀로 핀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고 정점에 이르는 때를 일러 화양연화라 하지 않던가. 갓 피어난 하늘말나리는 화양연화를 기쁘게 노래한다고 마무리 지었다. 그 신선한 결구는 오랜 여운을 지니고 계묘년을 맞았다. 모두에게 화양연화의 때를 맞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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