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내 사조직

1988년 1월 23일부터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3월 입학식과 육사 44기 졸업식을 마친 후 정식으로 학과 수업을 받았다. 석차로 나눈 교반의 순서를 따져보니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육사 입학을 하였다. 같은 반에 유난히 거슬리는 목포 출신의 동기생이 한 명 있었다. 말끝마다 “김대중 선생”이라는 존칭에 필자는 뭐가 선생이냐면서 면박을 주곤 했었다. 그러다 곧 서로 정이 들고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생도 과정과 전우애를 위해 그까짓 선생 호칭의 거부감을 애써 포기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 방학을 마치고 서로의 고향 방문과 휴가 소감을 나누던 중 그 동기의 “호남 출신 선배 장교를 비롯해 재학 중인 전라남북도 출신의 육사 생도들이 광주의 어느 한 호텔에서 친목 모임을 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는 소감에 필자는 유난히 노발대발했다. 

“야, 너희들이 뭔데 그런 모임을 해…….” 당시 4학년들이 주축이 되어 경남 함양 출신의 연대장 김석재 대령에게 이 모임의 부당함과 위화감을 하소연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 이후 호남 출신 생도들의 공개적인 모임은 없었지만, 대한민국 호남향우회의 위력은 육사 내에서도 여전히 대단하다. 

 이는 영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의 이미지와 역차별의 한이 육사에도 서린 때문인지 졸업생들의 각 출신 지역의 비율에 근거해 호남인들의 장군 진급이 상대적으로 어느 지역 출신보다도 높은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 국군 내 사조직의 대명사는 육사 출신으로 주로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하나회다. 1951년 진해에서 미국의 웨스트포인트(미육사)의 교육훈련제도를 도입하여 만든 정규 4년제 육사의 태동에 즈음하여 대구를 중심으로 뭉친 첫 사관생도들의 인맥이 하나회의 모체이다.

 육사 졸업 당시 성적이 우수한 비영남 인맥으로 결성된 사조직이 청죽회인데 이북5도와 서울 출신으로 다수가 육사 교원 등 교육기관에 주로 근무를 하였다. 팔이 안으로 굽듯 경북 구미 출신인 박 대통령은 하나회만 자신의 곁에 두고 장차 군의 중심이 되어 한국군의 정예 장교단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때로는 하나회의 군내 항명과 비리에도 눈을 감고 두둔하기도 하였다. 

 하나회는 육사 11기부터 36기까지 육군본부가 발표한 공식 명단이 있다. 필자가 생도 재학 시 총 5명의 교장으로부터 훈시를 들었는데 그중 4명이 하나회 출신이었다. 물론 가장 기억에 남고 학군단 중위 교관 시절 자주 식사도 함께 한 분이 15기 민병돈 교장이다. 종종 언론에서는 “기이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민따로”라는 별명을 추가 설명하곤 한다. 많은 군사 평론가들이 저분이 어떻게 하나회가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아쉽게도 필자가 당시 그런 의문을 품기보다 “45기 졸업식장에서 왜 노태우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았습니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대답은 “임석 상관으로 화랑 연병장의 본부석으로 들어올 때 거수경례를 한번 하면 됐지 졸업 식사를 한다고 나가면서 대통령에게 두 번 세 번 생도들 보는 앞에서 경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필자에게 말했다. 

 이를 두고 “나무위키”라는 매체에서는 “나는 당신을 상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도발적인 표현으로 하나회 내 전두환계와 노태우계의 대립을 노골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한편 육사 졸업을 100일도 채 남기지 않은 1991년 12월에 부임한 김정헌 교장은 육군정복의 바짓단이 짧아 검소한 시골 할아버지같이 손뼉을 치며 졸업생들을 맞이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나회 18기로서 육사교장을 끝으로 전역 후,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된 것에 상심하여 자신의 희생이 우국충정의 발로임을 강조하며 순국을 택했다. 

 필자의 생도 시절은 1990년 전후로, 주로 소령 보직의 훈육관 중에는 알자회 멤버들이 있었고 장성급 장교들은 다수가 하나회 출신이었다. 알자회는 조사된 바로는 34기부터 43기까지 명단이 공개되었으나 하나회의 후신이나 하부조직이라고 오해를 사기도 했었다. 기억에 남는 알자회 모 소령은 훈육관으로 그 기세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당시 생도들은 사조직에 대한 정보와 판단은 없었다, 다만 기수 선두주자이며 잘 나가는 선배로 인식했다. 91년 2월 육사 51기 신입생도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였다. 

 여담으로 육사 51기에 개그맨 서경석이 있었다. 그 훈육관은 51기 기초군사훈련의 지도 장교로 인근을 지나가던 필자를 비롯한 중대 4학년 생도들의 학과 출장 군기가 형편없다는 지적으로 불러 세웠다. 다짜고짜 ”껍데기를 벗겨버리겠다“ 라는 폭언과 함께 야간에 완전군장출두를 명 받았다. 자신의 지시와 얼차려에 토를 달지 말고 순응하라는 일장 연설이 또 시작되었다. 방탄모에 가려진 얼굴에 불만이 있었던지 ”야, 거기 키 큰 놈 불만 있어?”
 다른 동기생들을 생각해서 아무 말 없이 연병장 몇 바퀴 돌고 넘어가려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훈육관은 생도들에게 껍데기를 벗긴다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생도 교육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다며 우리를 또 포격하였다. 필자를 설득시키려 했지만, 다시 한번 훈육관은 껍데기를 벗긴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몇 년 후 93년 4월 문민정부의 출범에 즈음하여 군 인사 비리와 하나회를 성토하는 문서를 육사 31기 백모 대령이 직접 살포하여 하나회 문제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먼저, 군내에서는 하루아침에 음지가 양지가 되는 빅뱅이 일어났다. 정치적으로는, 이 투서 사건으로 하나회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두 전직 하나회 출신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탄압과 격하가 공개적으로 진행되면서 군 출신 대통령 정부의 부당함과 비 정통성을 강조하였다. 

 5.16, 10.26, 12.12, 5.18 등이 지속해서 드라마와 스크린의 소재가 되어 사실과 진의가 시청률을 위해 왜곡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한 반목과 멸시, 음해와 왜곡, 그리고 정치적 판결의 번복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비상식적인 정치적 토양이 되어 국민에게 외면받는 정치 구조와 당선자들을 만들고 있다. 하나회를 지우려고 다시 육사 출신의 만나회를 이용했던 YS정부 또한 군내 육사 출신이 중심이 된 사조직 후원을 통해 국권을 보장받으려 했다. 망각의 세월은 경북의 알자회 출신 전 기무사령관의 박근혜 구국 쿠데타 연출 시나리오를 한 장씩 넘기고 있으려나?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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