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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탐방기: 호정 진용호] 거제도 기행약력)1938년생/아호/호정(湖靜)/거제시 거제면 외간/창조문학 수필(2014 신인상 수상)/창조문학 소설(2018 신인상 수상)

 

잘 다녀오세요. 아내의 환송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고향 길 눈에 익어 눈 감고 뒷걸음으로도 달려갈 것 같은 거제도.
설레는 마음은 벌써 연연 700리의 섬을 감싼다.
7인승 승용차는 가벼운 듯 앞만 보고 내 달린다. 거가대교 진입로

“여기 어디고, 저게 뭐꼬?”
“너 처음 보나? 부산 신항이다. 저건 화물 콘테이너를 들고 내리는 크레인들이다.”

두시 방향에 삼 대 같이 서 있는 크레인이 수출입 역군처럼 도열해 있다. 안 집사님의 승용차 액슬레이더에 오른쪽 발바닥에 힘이 가해지는 느낌이 오자 경사진 교각 위로 비행기 이륙하듯 하늘을 향해 오르니 벌써 땅이 발아래 보인다.

우측은 신항의 분주함, 좌측은 신공항 예정 바다가 호수처럼 펼쳤고 멀리 영도 태종대가 신기루처럼 가물거린다.

이제 “상전이 벽해"로 변한 거가대교가 시작 되었다. 2004년 12월에 착공하여 2010년 12월 14일에 개통하였으며 공사비가 무려 1조 4469억원이 소요되었다. 구조물 길이 180m, 폭 26.5m, 높이 9.75m, 무게 45,000톤의 침매터널 18개를 연결하여 만들어 졌다.

부산시 강서구 천가동 가덕도-대죽도-중죽도-저도-거제시 장목면 유호리(하유)를 잇는 길이 8.2Km의 왕복 4차선 침매터널로써 한국 최초며, 파도와 조류와 바람이 거셀 뿐만 아니라 수심이 48m나 되는 연약지반의 외해에 건설된 것은 세계 최초란다. 수심 48m의 해저를 벗어나 2개의 사장교 위로 하늘에 떠서 바다 위로 달리고 있는 듯한 쾌감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만하다. 침매터널과 대교가 건설된 이 해역은 진해군항에 출입하는 함정의 길목이며 여수, 통영 지역에서 부산으로 오가는 여객선들의 해상로 였다.

1967년1월14일에 해군 56함(충남호)과 여수항을 출발하여 삼천포, 통영, 성포를 경유하여 부산으로 가던 여객선 한일호가 밤중에 충돌하여 승객 100여명이 한일호와 함께 수장된 곳이기도 하며 나도 성포조합(수협)에 근무할 때 그 날 이상철 서기와 내가 부산 자갈치에 위치한 수협중앙회 경남지회에 “1966년도 결산 준비”를 위해 출장 명령을 받고 밤 배 한일호로 같이 가기로 약속하였으나 그 한일호에 타기 3시간 전의 배로 나 혼자 부산에 갔다. 집사람이 부산 친척 집에 새벽에 들어갈 수 없으니 낮 배로 가라고 권유하는 바람에 일찍 떠났고 이것이 생사를 갈라놓은 잊지 못할 일이였다.

이상철 서기는 중매인 김용찬씨와 함께 밤 배 한일호를 타고 가다 불귀의 객이 되었다.

이 해역은 겨울철이면 대구의 산란지로써 대구가 다량으로 잡히고 겨울철 밤이면 낙지잡이 소형 어선의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깜박여서 군함들의 입출항이 매우 까다로운 해역이다. 나도 해군 복무 시 함상근무를 하면서 이 해역을 입출항 할 때 견시 근무를 한 바 있어 그 실상을 잘 안다.

아름다운 풍광에 눈을 뗄 때쯤에 “김영삼 대통령 생가”에 도착 하였다.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1372번지 대계부락, 닭이 날개를 펴는 모양이라 하여 큰 닭섬이라고 부르며 거제도 최동단 새벽의 여명을 알리는 장닭의 정기를 받아서 똑똑한 인재가 난다고 했다.

생가는 100년의 세월을 이긴 기와집이지만 개축을 하여서 옛집의 형태는 변했으나, 전체가 아담하여 복이 저절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1970년도 초반 내가 장목면 관포 수협에 근무할 당시 종종 외포에 출장 가면 꼭 들려서 김영삼씨 부친 김홍조 영감님께 인사드리고 점심때면 밥상을 함께 하였던 그때를 회상하며 추억을 더듬어 본다.

김영삼씨는 1927년 12월 20일 태어나 1954년 거제에서 전국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9선을 거치며 파란만장의 정치인으로써 민주화의 앞장을 섰고 1993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기념관의 기록전시관 1층에는 출생부터 대통령 당선되기 전까지의 정치와 지도자의 역사가 기록되어있고 2층에는 문민정부 5년의 역사가 기록 되어 있었다.

전국에서 거제도에 관광 차 오면 이곳을 찾는 분이 많고 오늘도 많은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관광객은 자식들에게 꿈을 심어주려고 대통령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게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눈에 띤다. 앉은 아이마다 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하며 고현 포로수용소를 관람하기 위하여 자리를 떴다.

 오늘이 마침 58주년 현충일이라 악몽 같은 6.25의 참상을 상기시켜봄도 뜻깊은 일이다. “고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1983년 12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되어 1998년 9월에 착공, 2002년 11월 완공하였다.

격전의 포성이 귓전을 때릴 즈음인 1950년 11월 당시 거제군 일운면 고현, 상동, 용산, 양정, 수월, 해명, 제산 지구 360만평 위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고 부산에 있던 포로 중 인민군 15만 명, 중공군 2만 명, 여자포로와 의용군 포로 3000명 도합 17만3000명을 수용하였다.

포로 중에는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가 한 막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상적 갈등이 심하여 유혈 폭동이 자주 일어났으며, 1952년 5월7일 에는 포로수용 소장 “돗드” 준장이 친공 포로에게 납치당하여 무릎을 꿇는 치욕도 있었다. 유엔 사령부가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를 분리 및 분산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반공 포로는 제주, 광주, 논산, 영천, 부산으로 보내고 친공 포로는 거제, 한산 용초도, 봉암 등지로 이송 되기도 했으며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후 폐쇄되었다. 유적공원 내부의 시설로는 분수 광장, 철모 광장, 흥남철수작전 기념비, 탱크 전시관, 무기 전시관, 당시 포로수용소의 배치상황, 포로 생활상 및 폭동 현장 등을 재현한 “디오라마관”이 압권이다.

곳곳의 시설관에서 들리는 총소리와 비명 소리는 6.25를 겪어 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전쟁게임을 보는 것 같을지 모르지만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겐 남편과 아들을, 아버지와 고향을 잃은 잊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고 참상이었다.

 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그 의로움, 호국의 처절한 용기가, 숭고한 희생정신이 산화되어 땀과 피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되고 뼈와 살은 한줌 흙이 되어 해마다 산하를 신록으로 새롭게 태어나는가 보다.

이곳이 많은 관광객이 찾아 와서 반공교육의 산실이 되었으면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넓은 공원 내부를 둘러보다 보니 배가 출출하다. 일행 7명의 식성은 각각이지만 나와 양왕용 교수님은 멍게 비빔밥, 다섯 분은 생우럭 매운탕으로 하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하였다.

멍게 비빔밥, 짭조롬 한 바다 내음이 입안을 감돌고 해녀들의 휫파람 소리가 귀에 들린다. 장목 관포에서의 갓 건져 올린 멍게들.. 뱃전에 앉아 먹기 싫을 정도로 많이 먹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 때는 생멍게였지만 지금은 냉동 멍게라 그 독특한 향이 실종되어서 아쉽다. 그리고 가짜 참기름 맛이 멍게 맛을 반감하였다. 내 고향에 오신 손님이라 음식 값을 내가 치르고 나니 고맙다는 인사말이 천금보다 더 무거웠다. 점심식사 후 거제도의 서북부 중앙을 관통하는 사등, 둔덕을 잇는 지방도를 굽이굽이 돌아서 둔덕면 방하리에 도착하였다.

오늘의 메인 코스인 “청마 생가, 기념관”을 찾았다. 청마 탄생 100주년을 맞춰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우리나라 문학사의 거목으로 큰 족적을 남긴 청마 유치환 선생의 예술혼을 널리 알리고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하여 둔덕골 산방산 자락 방하리에 청마ㄹㅇㅇㅇㅇㅇ기념관을 건립하였다고 쓰여 있었다.

청마는 1908년 음력 7월 14일에 이곳 둔덕 방하에서 진주 유씨 준수와 밀양 박씨 우수 사이의 8남매 중 차남(장남:유치진)으로 출생하여 1967년 2월 13일 부산남여상 교장 재임 시에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출생기”에서 “열나흘 새벽 달빛을 밟고 유월이가 이고 온 왕고모님댁의 제삿밥을 먹고 난 후 자신이 태어났다”고 직접 말한 바 있고 이곳 거제도 둔덕골에 대한 애틋한 향수가 청마의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한편 돌아가셨을 때에는 콧대 높은(00여고) 사랑하는 제자 여고생들이 하관 시 막무가내로 함께 죽겠다고 뛰어들기도 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청마는 태어나기는 거제지만 세살 때 통영으로 이사하여 1922년 통영보통학교 4학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가세가 기울고 하여 1926년 동학교 4학년 중퇴하고 귀국하여 동래고보를 졸업하고 연희 전문을 다니다 중퇴했다.

이로 인하여 청마의 출생지와 관련하여 통영시와 거제시가 각각 “청마문학관”, “청마기념관”을 건립하여 고향 분쟁이 끊이지 않고,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태지만 청마가 잠들어 있는 거제 둔덕골 산방산 자락 지당골의 선영 모친 박우수 묘비에 있는 “사모곡”의 내용에 “멀지 않아 제 또한 당신 곁에 당신 모셔 하늘 우르르고 묻힐 날을 기약하오며”라는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어 고향이 거제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작품을 통하여 통영을 고향이라 칭한 때도 있어 분쟁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하였다.

청마 유치환은 시인이자 교육자였으며 그의 문학 작품엔 강한 에너지와 생의 의지를 느낀다.
그는 허무가 느껴지는 작품을 쓰기도 했지만 언제나 정신적, 생명적 요소를 중시한 작가였다.
 1931년 문예월간 제2호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37년부터 부산에서 문예동인지 <생리(生理)>를 주재하며 5집까지 간행한 바 있고 1939년 첫 시집 <청마 시초(靑馬詩抄)>를 발간하였다.

 여기에 허무와 낭만의 절규 인 <깃발>, <그리움>, <일월>등 55편이 수록되어 있다. 1940년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 만주의 황량한 광야를 배경으로 한 허무 의식과 가열한 생의 의지를 쓴 시 <절도>, <수>, <절명지> 등이 <생명의 서>에 수록되어 있다.

 1947년 <생명의 서>, 1948년 <울릉도>, 1949년 <청령 일기>가 쓰여졌으며 광복 후 “청년 문학가 협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6.25 중에는 문총구국대의 일원으로 보병 3사단에 종군하였다. <보병과 더불어>는 이 무렵의 시집이다.

 이후에도 주옥같은 작품 중 <유치환 선집>, <뜨거운 노래는 빵에 묻는다>, <미루나무와 남풍>,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수상록 <에루살렘의 닭>등 소재가 청정 해역과 천년의 절경을 간직한 거제의 모습을 담은 글이 수없이 많았으나 기념관에서 눈을 멈췄다. 청마의 생가는 4칸 초가로써 마당과 우물 울타리가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고 마당에는 융단같은 잔디가 발바닥 촉감을 간질거린다.

좁은 마루 앞의 댓돌에는 네 컬레의 흰 고무신은 안방에서 청마, 아버지 유수씨와 누님(왕고모), 어머니 우수씨가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는 양 작은 음성이 들려옴직하다. 아마도 자식(청마)의 여자 사랑이 남달라서 걱정을 하는가 싶다. 본처 권재순 또 이영도 또, 반희정 .. 범애주의자로써 자기에게 눈짓하고 기대 오는 여인마다 박절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가녀린 마음씨를 걱정하는가 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시 잘 쓰고 글 좋고 인물 훤칠한 청마를 한번쯤 연모 안 해본 여인 있었으랴 제자 여고생의 가슴에도 사모의 연정을 불어 넣었으니.. 청마의 묘소는 생가에서 1.2 Km쯤 떨어져 있다고 하였으나 남은 여정을 위하여 멈추기로 하였다. 지금 간다 해도 신록 우거진 이 좋은 날씨에 묘에 머물겠는가? 최후의 승자인 어느 여인과 같이 청마의 안장 위에서 깃발을 들고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를 외치며 박차를 가하면서 삼방산 정상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을 것이다.

다음 코스는 “바람의 언덕”이다. 둔덕에서 남부면 도장포까지는 거제도의 서남부를 가로지르는 길이다. 지나는 길 중 본인의 고향 외간리를 얼핏봤다. 동리 뒤편에 녹음으로 덮혀 있는 유일한 부모 유산인 산야가 주인인 내게 정겹게 인사하지만 일정 관계로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지나쳤다. 동부 저수지의 맑은 물에 산 그림자가 졸고 있고 떠 있는 오리 배에는 연인 간의 밀어가 새어 나온다. 학동 고개 입구인 노자산 자락 평지 “거제 자연 휴양림"이 단장을 끝내고 사립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듯 하였다.

고갯길 가팔라서 승용차의 숨소리가 거칠어 보였으나 그것도 잠시 고개 마루에 다 달으니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바람이 좋다. 학동 몽돌 해수욕장에는 수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도로변에 세워둔 자동차의 행렬은 과히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맛있는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 충동으로 커피숖을 찾았으나 찾지 못 하고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

바람의 언덕은 거제 8경중 하나이다. 거제 8경은 <외도, 내도 비경>, <거제 해금강>,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 <여차, 홍포 해안 비경>, <계룡산>, <바람의 언덕>, <동백섬 지심도>, <공곶이> 등이다. 동백꽃과 팔색조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다보니 삼거리 함목에 이르렀다. 여기서 3~4분 거리에는 목적지 도장포 “바람의 언덕”이 있다.

 거제도 곳곳이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하지만 이름보다 더 아름다운 “바람의 언덕” 도장포는 옛날에는 십여채의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어업을 하면서 살아가던 이름 없는 조용한 어촌이었고 바람의 언덕은 방목하는 염소 떼들의 놀이터였지만 TV 드라마 “회전목마”의 타이틀 풍경 “순수의 시대" 영화 "종려나무 숲”의 배경지로 이름나면서 유명해졌다. 도장포항은 해금강 유람선의 선착장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편으로 나무 계단으로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자연 방파제처럼 낮게 누워 있는 언덕은 파란 잔디로 뒤덮여 그림처럼 아름답다.

바람은 힘겨루기라도 하는지 가슴이 후련하게 불어온다. 여긴 바람이 주인이다. 언덕 정상엔 네델란드에서나 봄직한 큰 풍차가 느릿느릿 돌면서 운치를 더 하고 있다. 선남선녀들이 서로의 미모를 자랑하며 추억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요즘 아가씨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모양이다. “나 예쁘지?” 자가 발전이 도가 넘치는 것 같아서 “발전소 고장나더라도 전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해봤다.

아득히 내도 외도가 암청색 푸른 바다의 요 위에 해무를 이불삼아 실눈을 뜨고 가물가물 잠들고 있다. 학동 몽돌해변과 수산 동리의 아름다움과 포말을 꼬리처럼 달고 달리는 유람선 위에서 손 흔드는 낮 설지만 정겨운 모습이 지중해의 경치가 부럽지 않은 우리 국토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 바다 밑엔 얼마나 많은 고기가 헤엄치고 있을까? 거제도는 천혜의 황금 어장터 이다. 내가 작사하고 내 딸 지영이가 작곡한

“거제사랑의 노래”
연연이 이어진 700리 해안 / 천혜의 황금어장 내 고향 거제 협동의 깃발아래 한데 뭉쳐서 / 향토발전 선봉에 우리가 서자
 후렴
너와나 손잡고 앞에 나서자 / 뭉치면 두렵잖다 우리의 기상
힘차게 뻗어가자 세계를 향해...를
마음속으로 불러 보며 거제기행을 마무리 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 (2013. 6. 6. 58회 현충일에 거제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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