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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金曜巨濟時調選]
「금요거제시조選-156」김현길-'죽마고우야 잘 가라'▲김현길:둔덕출생/진주교대대학원졸/시인.수필가.시조시인/문협.및국제펜클럽회원/ 거제시조문학회전회장/시집「홍포예찬」외 시조집/수필집/장편소설

  「금요거제시조選-156」             
  죽마고우야 잘 가라






 


 

      김  현  길  
목쉰 할바시 패뜨다 둔 화투장 갖고 놀았지

껄티기로 군불 땐 고구마 뒤주가 있던 너희 아랫방에 모여 생고구마를 새앙쥐처럼 갉아먹다가 내복 벗어 이를 잡았지 호롱불 심지 돋우고 그을음을 칠 때면 덜거랑 포구나무엔 부엉이가 북북 울었제 아아 이런 아련한 옛날얘기를 진작 너 살아생전에 했음 좀 좋았을까 추억만 남겨놓은 채 너만 홀로 떠나 버렸구나 동무들과 비렁 둠벙에서 멱을 감고는 송골산 재몬당 여시 바우에 둘러앉아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더러는 백조 담배를 꼬나 물기도 하고 방하 섬에 빠진 낙조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소를 찾아 헤맸었지 또 동네 뒷 산에 생소나무 하러 가서 묏덩거리 불을 내고 나무고 지랄목대기고 식겁 똥을 쌌던, 군대 생활 삼 년은 또 우짜고 둘이 입대할 때 친구들이 돈을 모아 통영 도깨비 골목 양지 여인숙 우리에게 각방 잡아 주던 그때 일 생각 날거야 훈련 마치고 자대 배치시 소양강 군용선 타기 전 잠시 둘이서 ‘소양강 다목적댐’ 글자를 배경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하고 사진을 찍었지 제대할 적에는 서울 양동 뒷골목 개구리복 입고 돈도 없으면서 젊음을 주체 못하고 밤새 설치고 돌아댕겼지 얼마전 누워있는 너의 방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장작개비처럼 비쩍 마른 너의 다리를 만져보았지 씩 웃더구나 복수찬 배는 차마 만져보질 못했다 그날 집에 와서 혼자 몰래 울었다 친구야 이제 너는 저 밤하늘에 별이 되어 호월천지를 비추고 있는데 나만 홀로 이승에 남아 개똥벌레의 *형광처럼 맴돌고 있다. 

머잖아 우린 만나게 돼 있어 못다한 얘길랑 그때 또 하자.

 *형광 : 서원직(서서)이 조조의 계략인 줄도 모르고 노모의 편지를 받고 유비와 작별하게 되었다. 가다가 되돌아와서 깜빡했다며 유비에게 한 사람을 천거하였다. 천거한 사람은 제갈공명이었다. 유비가 서서에게 선생과 비교하여 어떠냐고 물었더니 “내가 노둔한 말이면 그는 기린이요, 그가 호월천지를 밝히는 달빛이면, 나는 개똥벌레의 형광입니다.”에서 인용


 1956년 거제 둔덕 출생/진주교대 대학원 졸/2005년 시사문단 시 등단/2013년 수필시대 수필 등단/2014년 현대시조 시조 등단/한국문협회원. 경남문협회원. 국제펜클럽회원/거제시조문학회 직전회장 /시집 : 「홍포예찬」 「두고 온 정원」 「나의 전생은 책사」/시조집 : 「육순의 마마보이」/수필집 : 「비에젖은 편지」/장편소설 : 「임 그리워 우니다니」

◎즐겨하는 일과 낚시2
‘낚시 문학’을 꼽는다면 모르긴 하나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의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가 첫 번째로 꼽히지 싶다. 야성적인 모험심이 오늘날 미국을 이룩해 낸 정신적 바탕이라면 헤밍웨이야말로 미국인의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미국적 작가였다. 의사인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직선적이고 격렬하며 사냥을 좋아했으니 그의 야성적인 기질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반면 조용하고 정숙한 어머니는 음악에 소양이 깊었다. 이런 극단적인 두 기질이 한데 엉켜 위대한 작가를 형성해 내는 기적을 낳은 것이다.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아들이 세 살 났을 때 이미 낚싯대를 선물했고 열 살이 되자마자 엽총을 사주는 극성파였다. 

 도시의 상류 사회보다는 북부 미시간의 워룬 호반(湖畔)에서 미개한 인디언을 사귀고 원시적인 자연을 즐기도록 어린 아들을 유도했다. 그에게 낚싯대와 엽총은 평생의 반려가 되었다. 그의 야성을 흥분시키기에 가장 알맞은 것은 바로 전쟁이었다. 1차 대전이 터지자 즉시 출정(出征)을 자원했으나 권투 시합 때 다친 왼쪽 눈 때문에 불합격, 그러나 적십자 요원으로 다시 응모해서 이탈리아 전선에 나갔다가 박격포탄으로 무려 237군데에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고 그중 몇 개는 몸속에 넣은 채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는 그가 사랑하는 투우의 나라 스페인에 내란이 일어났을 때 몸을 바쳐 반(反)파시스트 군의 구원을 위해 활약한 일인데 이때의 경험이 뒷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나타났고 이 작품은 소련 게릴라 부대의 교과서로 쓰이기까지도 했다고 한다. 2차 대전 때는 프랑스 게릴라 부대를 도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하여 전설적 전공을 남겨 전후에 동성훈장(銅星勳章)을 받기도 했다. 

 그의 모험적 투쟁욕은 50세가 넘어서도 왕성하여 아프리카로 맹수사냥을 나갔다가 우간다 지방에서 두 번 연속된 비행기 추락 사고로 두개골이 금이 가고 내장이 파열되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도 살아남았지만, 한때 그의 사망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는 63세 때 갑자기 엽총에 의해 자살에 가까운 최후를 마쳤는데 이는 그가 생전에 마력을 느껴오던 ‘격렬한 죽음’ 바로 그것이었고, 그에게 야성적 투쟁 기질을 심어준 그의 아버지가 권총 자살한 것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앞 못에 든 고기들아 뉘라서 너를 몰아다 넣거늘 든다
   북해청소(北海淸沼)를 어디 두고 이 못에 와 든다
   들고도 못 나는 정(情)은 네오 내오 다르랴.

 이 작품은 어느 궁녀의 작품이라고만 전할 뿐 작자가 밝혀지지 않은 옛 엇시조의 가락이다. 낚시와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물고기를 소재로 한 것이기에 택하여 보았다. 
 “궁중 앞뜰에 있는 연못 속의 물고기들이여, 누가 너를 몰아다 넣었길래 이 못에 들어왔느냐? / 북녘 바다 밝은 늪을 다 버리고 어찌 이 못에 와 들었느냐? / 한번 들어와서 다시 나가지 못하는 정황(情況)은 너와 내가 다름없구나.” 대강 이런 내용이다.  사람은 사물을 대할 때 그때그때의 정신적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법이다. 다방의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열대어만 보아도 낚시질부터 생각하는 조광(釣狂)이 이 궁중 연못의 물고기를 보았다면 어떤 미끼를 쓰면 저놈이 잘 물겠는가를 생각하겠지만 이 궁녀는 물고기를 통해서 자기의 부자유한 처지를 비추어 본 것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1952년, 그의 나이 54살 때인 말기의 중편으로 1953년 퓰리처상,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 속에다 인생의 체관(諦觀)을 그리고 있는데 결국 생명은 덧없고 세상은 괴로움의 되풀이라고 본 듯하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죽마고우야 잘 가라〉는 병사한 죽마고우를 두고 그와의 지난날을 사설시조로 읊은 김현길 시인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설시조도 시조의 한 갈래이므로 시조의 기본 정형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따라서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형식을 반드시 지킴은 물론 초장, 중장이 길수록 종장은 간결하게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설은 다분히 산문적이고 장형이라는 데서 평시조나 엇시조와는 그 구조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

 견해차는 있겠으나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를 두고 최초의 사설시조라 말하는 이도 있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세어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 이어
   매여가나 곱게 꾸민 상여에 만인의 울어 예나
   억새, 속 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가랑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 뉘우친달 어찌하리.

 위의 〈장진주사〉가 이백(李白)의 〈장진주〉를 닮아 그 내용이 너무 처절하여 익살스럽고 상스러운 제재만 주로 보던 눈에는 사설시조답지 않을지도 모른다. 

 친구를 뜻하는 성어가 많다. 그중 竹馬故友는 대나무로 만든 말을 같이 타고 놀던 친구란 말로, 어렸을 때부터 사귄 친한 친구를 말함이다.
 시인은 그런 죽마고우를 먼저 보내고 암울한 심사를 사설시조로 잘도 읊었다. 
 몇 해 전 초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둔덕 어구에서 아는 이가 망시미(망상어의 사투리) 낚시를 하자는 기별이 왔다. 망서린 끝에 갔더니 무슨 양식장 사이 뱃길에서 댓 발 남짓한 낚시줄에 낚시 바늘이 열 개나 달렸는데 낚시 바늘마다 망시미가 줄줄이 달려 올라왔다. 죽이는 손맛이었기에 그때의 손맛을 상기도 잊지 못하고 있다.
 시인은 사설시조 가락을 낚시에 걸려 올라오던 망시미처럼 잘도 엮어 내고 있다.
 간간이 맛깔나는 사투리까지 곁들이는 언어구사 능력이 만만치 않기에 읽는 즐거움이 더한다. 시인은 사설의 형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터득했지 싶어 앞으로 기대가 크다.
 창작이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최소한의 속박을 최대한 벗어날 수 있는 시조의 시형이 바로 사설시조이기에 더
욱 그러하다. 
<능곡 시조교실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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