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金曜巨濟時調選]
「금요거제시조選-157」윤미정-'울렁울렁'▲윤미정:경남자원봉사자체험수기일반부최우수상(2009년)/현대시조등단/거제시조문학회사무국장/제2회금요시조문학상수상

  「금요거제시조選-157」             
       울렁 울렁

 




 


 

      윤  미  정  

三代가 적덕(積德)해야 간다는 울릉돈데
미루고 미루었던 계획을 감행했다
크나큰 크루즈에 올라 꿈에 젖은 그날 밤.

밤새워 달려와서 설렘 속에 내린 그곳
우리를 반기우는 햇살은 따사로워
상큼한 바닷바람이 외투마저 벗긴다.

성인봉 하얀 눈은 설국이 따로 없고
수줍고 아름다운 태곳적 신비함에
그날의 울렁거림을 추억하는 갤러리.

◎즐겨하는 일과 낚시3
 개구리 울음소리가 하도 요상해서 어떤 이에게 물었더니 두꺼비 소리하고 했다. 연후에 귀를 기울렸더니 분명 개구리 소리는 아닌 것 같아 두꺼비려니 했다.  십수년 전 일 이다. 지금은 메워 버린 스무 평 남짓하던 연못에 까만 올챙이가 빈틈이 없을 정도로 수면을 메웠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놀란 나머지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허사였다. 낭패한 표정의 나를 보고 짓궂은 이웃 사람이 찾아도 없을 거라며 섬진강으로 갔단다. 왠 섬진강 하였더니 ‘섬’ 자가 두꺼비 섬 자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또 이 친구들이 행방을 감출지 지켜보고 있다. 이 올챙이들이 고기 미끼는 되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노인과 바다>는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쿠바 어부 산티아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동료 어부들에게 물고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잡지 못한 것을 무척 불운한 것으로 여겨지고 심지어 그를 돕는 소년 마놀린에게 조롱을 받기까지 한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전보다 훨씬 먼바다로 나갔다. 행운이 있을 것 같은 예감에서 였다. 점심때 쯤 큰놈이 낚시에 걸려들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무겁다. 낚시줄을 있는 대로 풀어주며 밤낮으로 고기에게 끌려다니면서도, 손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끈질기게 배보다도 더 큰 물고기와 대결했다. 마침내 사흘째의 날이 밝으면서 고기가 수면에 나타났다. 노인은 작살로 물고기의 심장을 찌르고 고기를 뱃전에 묶었다. 1천 5백 파운드를 넘는 대물이었다. 하지만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잡은 대물을 가지고 해안으로 돌아오려 할 때 노인은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일단 잡은 물고기가 너무 커서 노인의 배가 오히려 물고기에 끌려가게 되자 그는 낚싯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고군분투해야 했다. 도중에 노인은 그가 잡은 물고기를 노리는 상어의 공격을 받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 모든 역경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잡은 물고기를 해안으로 가져왔지만 이미 대부분을 상어들이 먹어치운 후였고 노인은 앙상하게 남은 물고기의 뼈만으로도 만족하며 성취감으로 가득하게 된다. 지친 노인은 오막살이에 도착하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그는 자면서 사자의 꿈을 꾸었다.

   미끼 가진 아해 안개 속에 나를 잃고
   나도 저를 잃고 조대(釣臺)로 찾아가서
   석양에 낚싯대 들고 나니 흥을 겨워 하노라.

 박권(朴權)의 작품인데 숙종 때 사람이라고 적혀있을 뿐 그 밖의 내력을 알지 못한다.지은이는 낚싯대를 매고 아이는 미끼통을 들고 같이 집을 나섰는데 짙은 안개 속을 헤쳐 가다가 아이는 지은이를 찾아 헤매고, 지은이는 아이를 잃고 안개 속을 헤매다가 못 찾은 채 그냥 낚시터로 가서 낚시를 드리워 종일 지낸 것이다. 미끼 든 아이를 잃었으니 미끼 없는 빈 낚시를 종일토록 담그고 있는 것이 된다. 빈 낚시에 걸려들 눈먼 고기가 있을 턱이 없으니 이 점에서는 안개가 없어서 미끼 든 아이를 잃지 않았더라도, 미끼통을 옆에 끼고 있더라도 낚시에 끼우지 않았을 것 같고, 설사 낚시에 미끼를 끼웠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시늉이었을 뿐 고기 잡을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석양에 낚싯대 들고 나니 흥을 겨워 하노라’에서 우리는 속된 조부(釣夫)와 고고(孤高)한 조사(釣士)의 구별을 보게 된다. 단순한 낚시꾼은 바구니의 무게에서 어깻바람을 느끼겠지만 의젓한 낚시꾼은 사람 자취 못 미치는 안개 속에서 값진 하루를 보낸 흥취를 못 이기는 것이리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인내, 그리고 인간 정신에 관한 고전적인 이야기다. 헤밍웨이의 글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한 인간의 도전과 용감함, 좌절과 나약함,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묘사한다. 그래서 문학의 걸작이란 평판을 받고 있다. 동양의 낚시는 조그마한 규모의 고요한 수면에서 자연과 친화하는 정관적(靜觀的) 행위인데 비해, 헤밍웨이의 낚시는 풍랑이 이는 대양에서의 힘의 상징인 사자를 꿈꾸며 죽음을 건 투쟁으로 인식하고 있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울렁울렁〉은 어렵사리 찾아간 울릉도에서의 감흥을 3수 연작으로 읊은 역마살 있는 윤미정 시인의 작품으로 詩題가 자못 운치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방문객이 뜸하던 차에 어쩌다 마주친 이들에게 “동쪽 대문에 남향집을 얻으려면 삼대가 적선을 해야 하고 천하 명품의 감상 기회를 얻으려면 평소에 덕을 쌓아야 한다.”면서 “천하 명품의 진위여부는 감상 연후에 평가하시라.”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三代가 덕을 쌓아야 간다는 울릉도”는 시인에게서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면 울릉도 주민들은 전부 덕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역마살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인은 미루고 미루었던 울릉도행 계획을 감행했단다. 역마살을 두고 예전엔 역마의 말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살을 역마살이라 하여 불안정하고 분주함으로 좋지 않은 이미지였지만 요즘에는 추진력과 활동력이 좋다는 긍정적인 해석으로 변해가고 있다.
 / 크나큰 크루즈에 올라 꿈에 젖은 그날 밤 / 이었다. 그 밤을 새워 달려와선 / 설렘 속에 내린 그곳 / 은 울릉도였다.
 
 울릉도를 두고 청마 유치환 선생은 1948년 발간된 시선집 『울릉도』에서 “동쪽 먼 심해선 밖의 /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 금수로 구비쳐 내리던 / 장백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중략) /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 동쪽 먼 심해선 밖의 /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라고 〈울릉도〉를 읊었다.  이번에 동북아역사재단은 1956년 9월 5일 조선일보 석간에 실렸던 〈독도여〉라는 시를 최초로 발굴 했다고 발표했다. 〈독도여〉는 시선집 『울릉도』에도 실리지 않은 작품이다. 기회에 이를 실어 본다.

   무슨 저주가
   이 같은 절해에 너를 있게 하였던가
   종시 청맹(靑盲) 같은 세월과
   풍랑의 허망에 깎이고 찢기어
   한 포기 푸새도 생명하기 힘겨운 
   독올(禿兀) 불모(不毛)한 암석만의 편토(片土)
   다시 갈 곳 없으매 
   갈매기도 마침내 해골을 바래(曝)는 곳
   그러나 진정 너이 욕(辱)됨은 
   이 유당(流黨)의 고절(孤絶)에 있음이 아니거니
   제 모국에서 분노가 오늘처럼 치밀 제는
   차라리 너 되어 이 절해(絶海)에 이름 견디고저

오늘 (3월 16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의 독도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기에 〈독도여〉가 더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밤새워 달려와서 설렘 속에 내린 그곳 / 울릉도의 햇살은 따사로웠다. / 불어오는 상큼한 바닷바람은 외투마저 벗기고 있다. 외투를 벗기는 훈풍, 그 표현이 운치를 더한다. 성인봉의 하얀 눈이며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섬 울릉도, 그날의 울렁거림은 갤러리에 추억으로 간직한단다. 역마살 있는 시인의 울렁거림 속에 매화 한창인 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며칠 사이에 앞산 정수리에 진달래가 만개했다. 나도 소싯적의 역마살이 도지려는지 갈피를 못 잡는 심사다. 봄을 타나 보다.<능곡 시조교실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춘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