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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정순] 희망의 이름에이정순/길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이 계획되어 있는 지인을 따라 길을 나선다. 산길을 거슬러 활공장(滑空場)으로 가는 길이 험하다. 임도다 보니 급격하게 가파른 경사도를 만날 때의 공포는 나만의 몫인가. 개인의 장비가 30kg쯤 됨직했으니 사람과 장비의 무게까지 차량이 휘청거린다. 비포장 길에서 돌부리를 밟는 바퀴의 거친 소리조차 파일럿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다. 고도의 취미 생활로 잘 다져진 정신력과 자신감이 뭉쳐서 다 받아들이는 넉넉한 인격체들이다. 

산 정상에 있는 활공장에 도착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취미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이방인이 되어 바라본다. 각처에서 참여한 파일럿들이 안전을 위해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창공에는 이미 반달 같은 패러글라이더가 점점이 떠다닌다. 

삿갓 모양의 캐노피가 무게 중심으로 주축을 이루는 것이 패러글라이더다. 캐노피를 펴 놓고 보면 얇은 원단에 불과하다. 동력이나 외력도 없이 여러 개로 나누어진 천 조각이 바람을 받아 날개 역할을 하며 자연 속의 기류를 탄다. 하네스와 캐노피가 결속이 잘 되게 여러 개의 산 줄이 연결되어 방향조절을 한다.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공기와 열을 감각으로 느끼는 게 곧 파일럿의 실력이다. 더러는 방향과 속도가 불규칙하게 바뀌는 난기류에 대응해야 하니 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런데 난감한 일이 일어났다. 지인은 내게 비행을 체험시키려고 작정을 했던 모양이다. 무섭다고 손사래만 치기에는 이미 준비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텐덤을 위한 다인용이란 나로 인하여 승용차로 가도 될 길을 버스가 대기한 격이란다. 할 수 없다고 꽁무니만 빼기에는 민폐가 너무 커서 애 낳는 각오로 비행을 결심했다.

안전모를 쓰고 벨트를 매는데 이미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유아용 카시트 같은 하네스에 몸을 실었다. 지인의 응원을 뒤로 하고 하늘을 향해 이륙을 했다. 순간 어느 지점에서 내 몸이 튀어 올랐다. 겁먹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고 안심시켜 주는 교관의 배려도 소용이 없었다. 광활한 시야로 발아래 펼쳐진 세상은 평면도였고 저만치 멀어지고 있는 땅이 새삼 그리워졌다. 

상공 800미터쯤 지점에 떠 있다는 교관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집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초보자를 비행시키는 일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 것인가. 기류에 따라 추락의 부담까지 안고 재능 기부를 해 주시는 교관의 배려를 생각하면 멋있게 즐겨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로 체면도 예의도 다 던져 버렸다. 

숙련된 교관이 나를 지켜 주고 있는데 경솔하게도 삶과 죽음을 잠시 묶었으니 이 얼마나 무례했던가. 한 편으로는 하늘 끝의 세상이 궁금했다. 갈 수만 있다면 하늘 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 스무 살의 어여쁜 꽃잎을 한 번만이라도 안아 보고 싶었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내 상처를 헤집다가 한순간 두통과 현기증을 견딜 수 없었다. 

염치 없게도 착륙을 부탁했고 발이 땅에 닿는 순간은 안도감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대개 많은 체험을 하라지만 적극적으로 이끄는 건 부담스러워 한다. 체험에는 날씨 조건이 맞지 않으면 불가능 하다고 들었다. 나를 위해 부담을 불사하고 기회를 만들어 준 지인과 교관님께 무한적으로 감사하다. 쉽지 않은 이 도전이 내게는 또 다른 희망의 이름으로 하루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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