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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거제찬가] '폐왕성과 마고할미의 전설'이승철:거제향토사연구가/시인/수필가/소설가/사진작가/ 전 거제시 문화재담당공무원

                     폐왕성과  마고할미의 전설

거제시 둔덕면 우두봉 아래 신라시대 축성된 성이 있다. 이 성의 본래 이름은 기성(岐城)이다. 산마루에 성을 쌓았다고 기성이라 한다. 기성의 이름을 따서 서기 983년에 이 성 아래 거림리에 기성현(岐城縣)을 설치하였다. 기성현은 거제도를 통치하는 곳으로, 지금의 시청 역할을 했던 곳이다. 고려 18대 의종 왕이 정중부의 반란에 이곳으로 쫒기어 와서 기성현에서 3년간 살았다. 고려사에 보면 의종왕이 정중부의 반란에 혼자 말을 타고(匹馬單身) 거제도로 도망을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성은 의종왕이 기성현에 거주하면서 만약의 사태에 왕이 피신 할 수 있는 피신처 역할을 했다. 왕이 정중부의 난에 폐위가 되어 온 곳이라 하여, 폐왕성(廢王城)이라 했다. 또는 왕이 피신 온 곳에 있는 성이라 하여 피왕성(避王城)이라 하기도 했다.  

 
이곳은 거제의 관문으로 신라시대 방어성지로 축성하여 고려와 조선시대 개축한 성으로 역사가 깊다. 성벽위에 망을 볼 수 있는 여자(觀望所)를 만들어 놓았는데, 복원 공사를 하면서 조선시대 개축했다고 없애 버렸다. 신라에서 고려, 조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인데, 그 흔적을 없애 버려서 아쉽다. 일각에서는 의종왕이 이 성에서 살았을 것이라 추측도 하지만, 그당시 역사로 볼 때 기성현에 거주 했고, 성지는 위급할 때 피신처로 활용했다. 성지 발굴에서도 왕이 살았던 집터와 방위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내가 페왕성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1969년 가을, 심봉근씨가 대학원 논문자료 조사를 하러오면서 성지답사를 같이 했다. 심봉근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갖고 있다. 그런 인연으로 심봉근씨가 동아대학박물관장, 문화재전문위원 동아대학총장을 지낼 때까지 거제의 문화재 지정과 발굴에 많은 관심을 갖고 나와 같이 많은 일을 했다.

이 성 지정도 심봉근씨와 필자가 나서서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하였다가. 2010년 8월 22일 국가지정문화재 509호로 지정하였다. 둔덕 폐왕성을 처음 조사 할 때는 둔덕에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심봉근씨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성포까지 와서, 나와 같이 통영가는 배를 타고 가서 통영에서 둔덕 하둔으로 가는 배를 탔다. 하둔에 내려서 막걸리 한잔으로 점심을 때우고 걸어서 폐왕성까지 갔다. 거림 마을 뒤 산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길가에는 돌 너더렁이 있었다. 그 돌밭을 기어오르면서 이 돌이 폐왕성을 축성 할 때 사용 했던 돌이라 생각하면서 성위로 올라갔다. 남쪽 성벽 일부가 무너져 있고, 성벽은 대체로 잘 남아 있었다. 성안에는 작은 우물이 있고, 그 옆으로 집터가 있었다. 조선시대 기와조각이 나딩굴고, 무너진 돌담이 있었다. 이곳이 현재의 우물지 였고, 집터로 추측 되는 곳에는 조선시대부터 가축을 기르던 곳으로 전해져 왔다.
 
서쪽으로 통영항과 견내량이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 진해만과 연결되어 있다. 동쪽 산방산 아래서부터 비옥한 전답에서 익어 가는 벼가 황금 들판을 이루고 있었다. 성위로 한 바퀴 돌면서 축성의 역사를 반추해 본다. 산 정상에 이렇게 거대한 성을 축성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으며, 이 돌은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을까? 성벽의 돌 하나 하나에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같이 좋은 장비로도 축성하기 어려운 성을 인력으로 짧은 기간에 축성하였다는 것은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엄청난 큰일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성을 싸면서 희생된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까? 신라와 고려. 조선에 이르기 까지 이 성벽이 거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방어성지로 돌담벽 이끼에서 옛날의 역사가 흐른다. 

그때 처음 본 성은 산 정상에 돌로 성벽이 쌓여져 퇴를 두른 모양이 신기해 보였다. 성곽의 돌은 어디서 가져 왔으며, 어떻게 운반하여 돌을 사각으로 다듬어 이가 딱 맞게 축성 하였을까? 성벽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울 때 이 성을 축성하면서 어디서 잠을 자고 그 많은 사람이 무엇으로 어떻게 먹고 일을 했을까? 그 당시 축성과정을 상상해 본다. 전해져 오는 말에 의하면 이 성을 축성하고 남은 돌이 성 아래 골짜기에 쌓여 있는 돌이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성을 축성 할 때 나라에서 여러 날 공을 드렸는데, 그날 밤에 하늘에서 마고(麻姑) 할미가 내려와서 가조도 북쪽 앞 바다에 있는 섬을 부수어 그 돌을 치마폭에 담아와서 하룻밤에 이 성을 축성하고 버린 돌이 성벽 남쪽 계곡에 쌓여 있는 돌 너 더렁 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불가사의한 일에는 언제나 기적 같은 전설이 있다. 

  이끼긴 돌담 성벽은 지난날의 숫한 역사를 증언한다. 이 성에 오를 때 마다 정중부의 발란에 쫓기어나 3년 동안 살다간 의종왕의 한스런 흔적들이 석양의 구름처럼 떠오른다. 1969년도 그 어려운 시대에 거제의 문화유산 자료조사를 하면서, 이 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문화재로 지정하여 복원을 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신라시대 축정된 성벽 위에 조선시대의 성벽이 쌓여져 있었다. 그 성벽이 조선시대 증축 된 것이라 하여 없애 버리고 신라시대의 성으로 축성 하였는데, 그 지역의 성벽은 그대로 두고,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 주장 했지만,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주장에 보존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쉬움이 많다. 성벽은 무너진 그대로 두고, 지난날의 역사를 조명하는 것이 지난날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복원 보수를 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 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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