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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金曜巨濟時調選]
「금요거제시조選-165」김현길- '봄날의 뒤란 '▲김현길:둔덕출생/진주교대대학원졸/시인.수필가.시조시인/문협.및국제펜클럽회원/ 거제시조문학회전회장/시집「홍포예찬」외 시조집/수필집/장편소설

  「금요거제시조選-165」           
      봄날의 뒤란 

 

 







    김  현  길

    산밑에 
    집 지으니
    집 뒤가 정원이다
    봄 되면 휘파람새
    스기나무에 새끼 치고
    딱새는 
    박새 쫓아 희롱하고
    청승 떠는 산비둘기.

    야옹이
    졸고 있는
    장독간 울타리에 
    봄볕이 나비를 불러
    아지랑이를 피울 때 쯤
    숨어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장꿩 놈이 홰를 친다.

시인프로필
1956년 거제 둔덕 출생/진주교대 대학원 졸/2005년 시사문단 시 등단/2013년 수필시대 수필 등단/2014년 현대시조 시조 등단/한국문협회원. 경남문협회원. 국제펜클럽회원/거제시조문학회 직전회장 /시집 : 「홍포예찬」 「두고 온 정원」 「나의 전생은 책사」/시조집 : 「육순의 마마보이」/수필집 : 「비에젖은 편지」/장편소설 : 「임 그리워 우니다니」

◎ 엎질러진 물(覆水)
 5월은 가정의 달인데 왠지 썰렁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노인분들을 많이 뵈었지만 이제는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마스크로 가려졌던 얼굴이 제 모습을 찾았으나 하나같이 수심에 잠겨있다. 살기가 힘들어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의 관계도 알게 모르게 소원해지고 있다. 좋았던 사이도 시간이 지나면 나빠지기도 하고 서먹하던 사이가 좋아지기도 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일로 하여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었을 때 거제 사람들은 “녹디 깡태기처럼 틀어졌다”고 말한다.  ‘녹디 깡태기’는 곧 녹두의 껍데기를 말함인데 콩 껍데기와는 달리 녹두 껍데기는 벗겨지자 마자 또르르 말린다. 한번 말린 녹두 껍데기는 아무리 물에 불려도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억지로 펼라치면 전부 바스라진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녹디 깡태기처럼 틀어졌다.’이다. 이와 비슷한 말이 ‘엎어진 물’이다. 엎어진 물은 복수(覆水)이다.
 
중국 漢나라 武帝 때에 주매신(朱買臣)이란 사람이 있었다. 집이 가난하여 나이 사십이 넘도록 나무를 베어다 팔아서 겨우 호구(糊口)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글 읽기를 좋아하여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때나 나무를 팔려 다닐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나무를 베다 쉴 때면 반드시 책을 펴들고 읽고, 나무를 팔려 저자에 나가면서도 등에는 나무지게를 지고 손에는 책을 펴들고 읽으며 다녔다. 그 하는 모양이 미친 사람도 같고 웃습기도 하여 수십 명의 어린애들이 그를 둘러싸고 따라다니며 웃고 조롱을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주매신의 아내가 밖에 나갔다가 우연히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에 얼굴을 가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이 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노발대발 퍼부어 댔다. “여보! 글쎄 나무를 팔려면 나무나 팔지 책은 왜 가지고 다니며 길거리에서 읽소? 그 뭇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웃고 조롱하는 것이 창피하지도 않소?” 주매신은 별안간의 항의에 한참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허-거-참, 나무는 나무고 글은 글인데 나무하고 글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요? 나무는 나무대로 팔아서 연명을 하고 글은 글대로 읽어서 功名을 이루려는 것인데 나무를 판다고 글 읽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소?”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어이가 없었다. “여보, 누가 글을 읽지 말랬소? 글을 읽어도 읽을 때와 자리가 있지 않소? 나무 팔 때는 나무를 팔고 글을 읽으려면 집에 돌아와 읽으면 좋지 않소. 그게 무슨 꼴이요. 어린애들의 놀림감이 되어 가지고…. 난 창피해서 못 살겠소.” “창피할 것이 무엇이란 말이요. 아이는 아이고 나는 나지.”  “글쎄 그만 두어요 제발!” 이날은 이만하고 말았다. 그러나 주매신은 이튿날도 역시 나무를 팔며 글을 읽고 다녔다. 아내는 이상 더 참을 수 없다 하고 남편에게 이혼을 청했다. “난 창피해서 당신의 아내 노릇은 못 하겠소. 오늘부터 당신은 당신 일을 하고 나는 나 갈 곳으로 가겠소.”
 “여보, 마누라 그게 무슨 말이요? 이것이 다 장래에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 조금만 참으오.” “잘 살아요? 장래 부귀공명을 할 사람이 사십이 넘도록 나무지게를 지고 다닌단 말이요? 속 좀 차리시오.” “허허 옛날 강태공 같은 사람은 80에 영달을 하지 않았소. 내 나이 지금 마흔넷이니 이로부터 7년만 더 고생하면 나도 출세를 할 것이요. 용한 사주쟁이가 그렇게 말합디다.” “눈깔이 빠진 사주쟁이가 있던가 보우. 당신이 출세를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온다는 말이나 같은 말이요. 강태공 같은 이는 뱃속에 지닌 것이나 있어, 때를 기다렸지만 당신이 강태공을 본받아요? 강태공이 되어 가지고 잘 사슈. 나는 가겠소.” “그리 말고 참아요. 칠 년이라야 잠깐 동안 아니요.” “칠년 동안 참다가는 그동안 나는 무엇이 되겠소. 나는 가오.” “정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오마는 다시 얻어가는 남편이 나만큼만 했으면 다행일 거요.” “세상에 못 생기기로 당신만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요?” 아내는 봇짐을 싸가지고 표연히 나가버렸다. 
 
그 후 주매신은 과연 오십에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이 터져 일약 회계태수(會稽太守)가 되어 부임을 하게 되었다. 이때 회계에서는 새로운 태수를 맞이하고자 온 고을 안을 소제하고 길을 닦기에 분주했다. 주매신의 전처 남편도 길 닦는데 인부로 나와 일을 했다. 그 아내가 점심밥을 가지고 나왔다. 그때 마침 태수의 행차가 있어 한쪽으로 비켜섰건만 태수는 어느 겨를에 옛날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태수는 수레를 멈추고 그의 옛 아내를 수레 뒤에다 싣고 부중으로 들어갔다. 옛 아내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벌벌 떨다가 부중에 들어가 서로 얼굴을 대하고 보니 태수는 별사람이 아니라, 옛 남편이 아닌가? 아내는 부끄럽고 후회가 나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태수는 새로운 남편을 불러보니 흉악한 일개 노동자였다.  태수는 옛 아내에게 코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사람이 옛사람만 못하구려!” 아내는 울고 사죄하며 다시 부부가 되기를 애원하니 태수는 하인을 불러 물 한 동이를 떠오라 하여 옛 부인에게 말하기를 “이 물을 땅에다 쏟았다가 다시 주어 담아서 그것이 한 동이가 되면 우리는 다시 부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엎지른 물이 다시 담아질 리가 없으니 옛 아내는 할 말이 없었다. 태수는 다시 말하기를, “부부가 한번 갈리면 엎지른 물과 같아서 다시는 합할 수 없는 것이니 그런 생각을 버려라. 내 옛날 결발(結髮)의 정을 생각해서 이 부중 후원에 조그마한 공지(空地)와 집 한 채를 줄 것이니 거기서 새사람과 농사나 짓고 살라.” 하니 옛 부인은 부끄러움에 후원에 나가 목을 매어 죽으매 태수는 후히 장사지내 주었다. 여기서 복수불반불(覆水不返不)이란 말이 나왔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매사에 조심하고 볼 일이다.

 나도 살다 보니 녹디 깡태기처럼 틀어진 일이 두어 차례 있었다. 그 틀어짐은 현재 진행형이다.

   내 슬픈 날 떠오르는 얼굴 하나 있었다
   회한의 눈물은 흘러 볼이 다 젖었다
   자학도 은총이라는 말씀 새겨 듣는다.

   온화한 미소 뒤에 도사린 그 음모들
   눈 뜨고 헛디디는 오판의 뜀박질 속
   목젖이 아리는 울분 울컥울컥 토해낸다.

   식은 재를 헤집고 불씨 하나 찾아본다
   진작에 꺼진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행여나 부는 입바람 입만 삐죽 부끄럽다.
            拙詩. ‘근황•3’, 전문

 남은 날은 욕을 적게 들으리라 다짐한다.물을 엎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봄날의 뒤란>은 봄볕이 따사로운 날, 뒤란의 정경을 2수 연작으로 읊은 김현길 시인의 작품이다. '뒤란‘은 집 뒤의 울타리를 친 안인데 산 밑에 집을 지었으니 울타리를 칠 것도 없이 뒷산이 전부 뒤란이고 정원이란다. 봄이 되자 휘파람새가 스기나무 숲에서 새끼를 치고 있다. 거기다 딱새와 박새가 노닐고 이따금 씩 산비둘기가 청승을 떨고 있다. 휘파람새며 딱새, 박새는 거제에서 흔하게 관찰된다. 휘파람새는 여름새이나 딱새와 박새는 텃새다. 산비둘기의 그 구성진 울음소리는 듣는 이마다 청승맞다고 한다.

 따사론 봄볕에 게으른 야옹이는 조금 데워진 장독 뚜껑 위에서 졸고 있다.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왔다. 그 날갯짓이 아지랑이를 피우고 있다. 장끼란 놈은 숨어서 지낸다. 풀숲에 납작 엎드려 숨죽이고 산다. 그 장끼란 놈이 홰를 치면서 솟아올랐다.시인은 봄날 뒤란의 정경을 잘도 그려내고 있다.

 <봄날의 뒤란>을 감상하다. 李鎬雨 선생의 「午」가 생각났다.
              
         쩌응 터질 듯 팽창한
         대낮 고비의 靜寂

         읽던 책을 덮고
         무거운 눈을 드니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데선가 낮 닭소리.

 ”닭이 홰를 친다’는 말을 두고 새벽에 닭이 ‘꼬끼오’하고 우는 소리라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홰를 친다’는 것은 새나 닭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자신의 몸통을 치는 것을 말한다. 홰를 치는 것은 새들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봄날의 고요로움은 장꿩 놈이 홰를 쳐 그만 깨어졌다 파적(破敵)이었다. 이런 표현을 두고 정완영(鄭椀永) 선생은 위의 시조 「午」의 종장 ‘어디선가 낮 닭소리’를 두고 “바늘못 하나로 나비나 잠자리의 등을 찔러 꼼짝없이 표본실의 함 속에 꽂아 놓듯이, 시인에겐 은바늘 한 개만 가지고도 숨통을 찔러 지구의 자전까지를 멎게 하는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설파하셨다. 이때의 은바늘은 바로 的中語를 말함이다.

 시인이 이 「금요거제시조」에 발표한 작품들은 대부분 암울한 심사를 읊은 것이었는데 모처럼 밝은 작품을 선보여 감상자가 편안하였다. 아픔을 다스리다 보면 필시 상처가 아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딱딱하다고 여겨지는 시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행 바꿈이란 혁신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투철한 작가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장꿩 놈이 홰를 친다. / ‘장끼’보다는 ‘장꿩’이 한결 맛깔스럽게 느껴진다. 쉽게 읽혀지는 <봄날의 뒤란>, 그러나 산고가 어떠하였는지는 나는 안다.  <능곡 시조교실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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