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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산책(296)이장명] '달 아래 옷을 벗으며'이장명)거제구조라출생/《문장21》시등단/외도보타니아전속사진사22년근무/전국하이쿠밴드장/눌산문예창작교실수료/블루힐펜션대표/거제문화원이사

     월요 아침 산책(296)
   달 아래 옷을 벗으며    

 







 


       이 장 명 

달빛 아래 옷을 벗으면
올도 무늬도 없는
태초의 광의(光衣)를 입으리

내 몸을 감싸는 한필(疋)의 빛은
하늘과 바다와 바람이 짠 찰랑이는 옷감
나는 누에 벌레처럼
비단에 싸인 가여린 생명

새벽이 나의 옷을 벗겨 가면
가죽이 벗겨지는 절명(切命)하는 짐승의 울음으로
하루를 부둥켜안으리라
그것은 세월의 태엽이 풀려나가는
느리지만 끝내 멈추어 버릴 기계의 비명 같은 것

그러나

가슴엔 아직 멈추지 않은 희망의 떨림이 있다
침묵한 어둠속 인화(印畵)되지 않은 나의 잔상(殘像)
결코 눈부신 색채로 말 하지 않으리
세상이 느리게 느리게 다가 온 것처럼
너에게 느리고도 잔잔한 느낌으로 다가 가리

달 아래 옷을 벗어 던진 것은
그대에게 전하는 애틋한 나의 시(詩)
온 몸을 감고 돌다 마지막 점이 된
내 핏줄의 붉은 문장(文章)

감상)  

눌산 윤일광 시인

​​​​휘영청 달이 밝은 밤. 시의 화자는 달빛 아래서 옷을 벗는다. 이 시의 중심주제가 되는 ‘옷을 벗는다’는 표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옷이란 인위의 상징이다. 사람은 옷이라는 껍질을 통해 자기를 드러낸다. 인간의 위선은 옷에서 비롯되었다. ‘올도 무늬도 없는 /태초의 광의(光衣’}를 새벽이 벗겨 가면 ‘가죽이 벗겨지는 절명(切命)하는 짐승의 울음’으로 ‘기계의 비명 같은 하루를 부둥켜안고’ 살아야 하는 비극적인 인간의 삶을 노출시킨다.

이장명 시인의 <달 아래 옷을 벗으며>를 어떤 시로 분류해야 하는가? 미국의 비평가 랜섬 (J. C. Ransom, 1988-1974)에 따르면 시는 크게 사물시와 관념시가 있다고 했다. 사물시의 대표적인 예로써 이미지즘의 시를 꼽았다. 그런데, 사물을 다루는 시와 관념을 다루는 시를 과연 나눌 수 있을까? 사실 시를 사물시냐 관념시냐로 구분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그래도 굳이 따져본다면 이 시는 관념시다. 관념시는 ‘대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관념을 서술하는 시’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의 많은 시들은 관념시라고 볼 수 있다. 현대시는 대상을 중심에 두는 게 아니라 드러내려는 관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달 아래 옷을 벗으며>는 그 소재가 달이기 때문에 사물시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달이 시의 대상이 아니고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의 매개체의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관념을 전적으로 배제한 사물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옷을 벗는다는 것은 순수한 자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 속의 화자가 ‘그대에게 전하는 애틋한 나의 시(詩)’가 되고, 그 시는 내 온 몸으로 쏟아내는 ‘핏줄의 붉은 문장(文章)’이라는 점에서 시인의 관념적 고뇌를 읽을 수 있다. (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 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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