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이승철 거제찬가
[이승철:거제찬가] '둔덕 고려촌(屯德高麗村)'이승철:거제향토사연구가/시인/수필가/소설가/사진작가/ 전 거제시 문화재담당공무원

 고려의종의 限이 서린 청마의 고향  '둔덕 고려촌(屯德高麗村)'

고려18대 의종 왕이 무신(武臣) 정중부의 반란에 폐위(廢位)가 되어 둔덕으로 피신 왔다. 둔덕면 거림리는 983년에 기성현(岐城縣)이 설치되어 거제 전역을 통치(通治)하였다. 1996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거림리 기성현지를 발굴조사 하였다. 그때 그곳에서 당시의 현청(縣廳)이 있었던 현지(縣址)에서 주추돌과 토기편과 와편(瓦片) 등이 발견되었다. 
고려 18대 의종왕(1170)이 거제도로 피신을 하여 목숨을 구한 곳이 둔덕이다. 상장군 정중부 등의 무신들이 경인년(庚寅年)에 난을 일으켰다. 이 난을 경인난이라 한다. 고려가 안정됨에 따라 무관(武官)을 천대하고 문신(文臣)을 존경하는 경향이 날로 더하여 무관들의 불평이 컸다. 문신들은 매일 술을 먹고 시를 읊으며 화평재(和平齋)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데 무관들은 호위를 하면서 무시를 당했다. 무관의 불평이 높아지자 이를 눈치 챈 의종 왕이 무관들을 달래기 위해 장군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상을 주며 위로했다. 이 자리에 문신(文臣) 한뢰(韓駱)가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때렸다. 의종왕은 무모한 짓을 보고도 한뢰를 나무라지 않았다. 무신들은 문신들의 방자한 행동에 분노했다. 왕이 보현원(普賢院)에서 수박희(手搏戱) 놀이를 하며 즐기고 있을 때 정중부(鄭仲夫)는 이고(李高), 이의방(李義方) 등을 불러 문신들을 모조리 죽이게 하였다. 그리고 의종왕은 목숨만 살려 왕궁에서 쫓아냈다. 의종왕은 말을 타고 살길을 찾아 거제로 도망을 왔다. 왕이 기성현으로 도망을 오자 그 가족과 부하들도 뒤따라 거제, 둔덕으로 와서 작은 고려국을 만들었다.

명종 3년(1173)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金甫當)이 주모가 되어 정중부 일파를 죽이려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이의문에게 죽었고, 녹사(錄事) 장순석(張純錫) 등은 거제도에 와서 의종왕을 모시고 복위시키고자 경주로 해서 올라가던 중 정중부 일파가 먼저 알고, 이의민이 경주 곤륜사에서 의종왕에게 술 석잔을 권하고 의종왕을 살해하여 연못에 빠트렸다. 그때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구름이 끼고 천둥번개가 치면서 의종 왕이 살해된 연못에서 붉은 연기가 솟아오르면서 물이 부글부글 끓었다고 한다. 의종왕이 3년 동안 살다간 둔덕에는 그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다. 농막의 남쪽에는 대비장(大妃庄)을 설치하여 안주시킨 안치봉(安置峰)이 있으며 하둔리 접경에는 자주방(自主防)과 여관(麗關)을 두었다. 여관은 고려 사람이 와서 살았던 관문이란 뜻이다. 그곳 산록에는 방어성지가 있다. 또 산록에는 망허를 두어 감시케 하였다. 둔덕천 건너 방하리 남쪽에는 고려 시종무관 및 귀족계급의 사해(死骸)를 매장한 고려 무덤이 있어 유품의 출토가 종종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는 많은 고분의 흔적이 있다. 

그 당시 나루터가 있던 곳은 술역(水驛) 이라 하고, 군마를 키우던 곳은 마장(馬場), 농사를 짓던 곳은 농막(農幕), 과수원을 하던 곳은 시목(枾木), 기성관 앞에는 옥터가 있었고 옥동(玉洞)은 큰 죄인을 가두던 옥터다. 상둔은 나라에서 권농관을 두어 농사를 짓던 농토가 있던 곳이다. 둔전(屯田)이라 하여 윗 둔전, 아래 둔전이라 한다. 견내량은 전하가 건넜다고 전하도(殿下渡)라 부르다가 견하도라 하다가 견내량이 되었다. 공주가 우물을 길렀던 공주 샘, 신선 마고 할매가 의종왕의 복위를 빌었던 마고 덩걸과 제신암, 빈정승의 무덤이 있는 빈정승 묘 등 곳곳에 의종왕과 관련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의종왕이 피신 와서 3년 동안 살면서 작은 고려국을 연상케 하였던 둔덕의 유적지가 정밀하게 발굴 조사되어 비운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고려촌을 만들어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춘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2023-05-26 11:44:15

    고려촌은 고려동이라하여 함안에 있지요.

    조선건국을 ㅏㄴ대하여 마을을 걸어 잠그고 고려동이라하여 자급자족을 하였던곳,

    작은 고려라함이 옳은줄 아룁니다

    고려동은 아직도 존ㄷ재합니다   삭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