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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167」이덕재- '5월의 아침'▲이덕재/거제동부출생/동부초운영위원장/동부구천마을이장/2017현대시조등단/한국문협회원/거제시조문학회 회장/능곡시조교실수강/시조집'개똥벌레’

  「금요거제시조選-167」           
      5월의 아침 

 

 

 



 



      이  덕  재

   이슬에 함뿍 젖은
   신록의 아침 풍광

   그저 된 것 아니지만 
   둘러보니 모두 공것

   모태의 
   속살 이랄까
   마냥 나눠 주고 싶다.

◎자찬과 모략
보리 이삭이 익어가며 여름의 초입을 알리는 소만(小滿)이 지났다. 소만은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들어 햇빛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성장하여 작지만(小) 가득 찬다(滿)는 의미가 있다. 신록의 아름다움은 어쩌면 자연의 자기 자랑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대를 일러 ‘자기 PR 시대’란 말을 자주 듣는다. PR은 ‘홍보’를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자기를 홍보하고 자랑하는 것이 흠이 아니라 권장할 일이라고 한다. 변해도 많이 변한 세태에 아연할 따름이다. 과거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가 과도하게 자신을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부르면서 흉을 보았다. 

팔불출은 ‘남에게 내보이지(出) 말아야(不) 할 여덟 가지(八)를 내보이는 어리석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 여덟 가지란  ‘① 자기 자랑, ② 아내 자랑, ③ 자식 자랑, ④ 학벌 자랑, ⑤ 가문 자랑, ⑥ 재산 자랑, ⑦ 형제 자랑, ⑧ 친구 자랑’의 여덟 가지다. 과거에 남과의 대화에서 이런 여덟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드러내면서 자랑하는 사람을 ‘좀 덜떨어진 사람’이라고 간주했기에 이를 숙어화 하여 ‘팔불출’이라고 수근거렸다. 대화 중에 누군가가 팔불출 가운데 어느 하나를 내보일 경우, 이를 들은 상대방은 겉으로는 칭송하겠지만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하듯이 내심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우의 깊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팔불출의 일들을 가능한 한 내보이지 않으려 했다. 혹시 드러난다고 해도 낮추고 숨기고 물러서는 것이 예의였다. 참으로 섬세하고 사려 깊고 수준 높은 도덕의식이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인간 심리를 잘 표현한 말이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가 하면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한다. 사촌이란 그만큼 서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친한 사이일수록 잘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이 되니 더욱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그릇된 생리작용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연출되는지 알 수 없다. 노자, 장자와 함께 도가 3대 사상가로 알려진 列子가 정(鄭)나라에서 아주 가난하게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사람이 열자의 곤경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고 해서 그 사정을 고관(高官)에게 말했다. 관에서는 곧 수십 대의 마차에다 곡식을 실어다 주었다. 그런데 열자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당장 굶어 죽을 판국에 관에서 주는 곡식을 받지 않은 열자의 태도를 아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하도 기가 막혀서 그 이유를 따지고 덤벼들었다.
 열자는 이렇게 말했다.
 “관에서 누구의 말만 듣고 내가 굶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고 보내주니, 그렇게 남의 말을 잘 믿는다면, 만일 이 다음에 나에 대한 모략을 할 때도 그대로 믿고 투옥이라도 하면 그때 내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 큰일 날 게 아니요.” 열자의 말을 들은 아내는 비로소 열자의 훌륭한 생각에 감탄했다. 모략을 이기려면 남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려니와, 미덥지 않은 말이거든 그 반대로 해석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 들 속조차 검을소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위선을 비웃는 풍자시로 잘 알려진 이 시조는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이 된 이직(李稷, 1362-1431)의 작품이다. 이 시는 까마귀가 백로에게 하는 말로, 여기서 까마귀는 조선 건국에 참여한 신하를 백로는 고려를 지키는 신하를 말한다. 새 나라를 세워서 나라를 바르게 하려는 까마귀가 고려를 지키는 척하며 왕을 마음대로 하고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백로를 비판하는 말로 이해된다. 경계했던 자찬(自讚)이었건만 권장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내로남불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옳고 타인은 틀렸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아무리 단단한 모략이라고 하더라도 얼마 안 가서 정당하게 밝혀진다. 그러므로 모략은 그리 크게 겁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까칠한 성깔머리 세파에 모가 죽어
   詩 한 수도 힘에 겨워 입안 가득 나는 단내
   몽돌이 공 굴리듯이 이냥 저냥 살 일이다.
                拙詩. ‘何日’, 2/2.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 자찬은커녕 몽돌이 공 굴리듯이 이냥 저냥 살 일이다. 암 그렇고말고.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시인/게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오월의 아침〉은 짙어가는 녹음과 물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진 산야에서의 감흥을 단수로 읊은 농사꾼 이덕재 시인의 작품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본다.
“날만 새면 칭얼대는 개를 몰고 나가 아침을 맞는다. 불편함도 있지만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는 맛이 여간 아니다. 긴 겨울을 지나 봄꽃이 만발하더니 연둣빛 움이 그 자리를 채웠고 초록으로 변해간다. 올해 오월은 비가 잦았고 옅은 안개 낀 날도 많았다. 짙어가는 녹음과 물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진 산야는 어머니 품 같았다. 모태가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것으로 채우는 ‘아침의 행복’을 삶에 지친 이들과 나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비가 잦은 오월 어느날, 시인이 살고있는 거제시 동부면 구천리 나지막한 산록이었지 싶다. 칭얼대는 개를 몰고 나가 맞이한 식전 아침 / 이슬에 함뿍 젖은 신록의 아침 풍광 / 은 그야말로 한 폭의 산수화였다. 그것도 이슬에 함뿍 젖었으니…. ‘함뿍’은 물이나 빛, 분위기 따위에 아주 푹 젖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신록의 아침 풍광은 은혜요 축복이었으니 시인이 누리는 청복이 어떠한지 나는 알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의 진리 중 하나가 ‘공것은 없다.’라고 하지 않던가. 시인은 둘러보는 아침 풍광이 공것이라 하지만 곱게 쓴 심성에 대한 보답이라 믿고 싶다.
 
짙어가는 녹음과 물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진 어머니 품속 같은 산야, / 모태의 속살 이랄까 마냥 나눠 주고 싶다. / 천상 농사꾼 시인은 자신이 누리는 ‘아침의 행복’을 삶에 지친 이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오월의 아침〉 종장에서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인의 천성이었기 독자들은 ‘아침의 행복’을 함께 누리고 있으리라!
 ‘비록 국민소득이 만불을 넘어 섰다 할지라도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하루에 자작시든 명시든 간에 한편의 시를 읊지 않는다면 문화국민이 될 수 없다’는 선진국 석학의 지론이 귓전에 머문다. 오늘따라 흔연한 기분은 〈오월의 아침〉을 감상했기 때문이었다.시인께 고마움을 전한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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