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현재까지 15명…협력사 직원이 87%
조선업계 산재, 사망자 90% '하청 근로자'
'위험까지 떠넘기는' 하청구조…정부, '원청 책임 강화' 나서

올해 5월 1일 노동절날 삼성중공업거제조선소에서 크레인이 무너지는 사고로 6명이 숨지는 등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데 이어, 지난 20일 STX조선해양의 창원 현장에서도 4명이 사망하는 폭발사고가 발생하면서 조선소의 안전관리 대책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22일 조선비즈 등이 이를 보도했다..

2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작년까지 조선업체에서는 총 97명, 연평균 24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올해 들어서도 조선업체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은 7월 말까지 11명에서 이번 STX조선해양 사고로 총 15명으로 늘었다.

특히 사망자 대부분이 협력업체 직원들이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조선업체에서 산재로 사망한 직원은 총 112명으로 이 중 83%인 93명이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삼성중공업과 STX조선해양 현장에서 사망한 10명도 모두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위험한 작업은 협력업체 몫”
조선업은 업종 특성상 하도급 거래가 많이 이뤄진다. 일감이 고정적이지 않고 업황에 따라 들쑥날쑥 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모든 직원을 직접 채용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배를 만드는 과정에 용접, 특수 도장(塗裝) 등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많은 것도 한 이유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6월말 기준 사내 직원은 약 1만5000명인데, 협력업체 직원은 1만8000명이다. 삼성중공업은 협력업체 직원이 2만5000명으로 직영 1만1500명 보다 배 이상 많고 대우조선해양도 협력업체 직원이 2만명으로 직영 인력 약 1만300명 보다 많다.

STX폭발사고 현장

업계 관계자들은 원청 업체가 위험한 일을 협력업체에 맡기고 안전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 협력업체 직원이 많이 다친다고 보고 있다. 작년 9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 9월 초까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형 3사에서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는 총 37명이었으며 협력업체 직원 비율은 78% 인 29명 이었다.

대형 조선사의 협력업체 모임인 ‘조선 5사 사내협력사연합회’의 김수복 회장은 “직영 직원들은 가공, 절단 등 비교적 간단한 작업만 하고 용접 등 위험한 작업은 모두 협력업체가 하다 보니 주로 협력사 직원들이 다친다”며 “원청 업체가 예산을 빠듯하게 주니 기술 숙련자를 못 쓰고 안전 교육이 제대로 안 된 최저임금 근로자만 데려다 쓸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정부, 엄중 처벌한다지만…재발 막을 수 있을까
정부는 STX조선해양의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파악해 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전날 사고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안전 점검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도색과 용접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는지 등에 대해 조사해 법과 원칙에 따라 책임자를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부는 또 중대산업재해 시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조속히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중대 산업재해 예방 대책’에 따르면 협력업체 근로자가 안전 조치 미비로 산재 사망 사고를 당하면 원청업체도 협력업체와 마찬가지로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백신원 한경대 토목안전환경공학과 교수는 현 시스템으로는 사고 재발을 막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설사나 조선사 작업 현장에선 현장 관리자 밑에 안전관리자가 있어 안전 관리가 부실해도 공사를 중단시키기 어려운 구조”라며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독립된 안전 관리 회사를 만들고 안전 업무는 외부 회사에 일임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STX조선해양은 이번 사고로 현장 작업이 전면 중단돼 그리스 선박 회사 ‘아드리아키’에 지체 배상금을 물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에 사고가 난 선박은 7만4000톤급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으로 인도 예정일은 10월말이었다. 현재 공정은 90%지만 사고 원인이 밝혀지고 재발 방지 조치까지 마련돼야 현장 작업을 재개할 수 있다. 인도 예정일까지 선박을 건네지 못하면 뱃값, 용선료 등을 고려해 하루 단위로 지체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사고 직후 경찰과 소방서가 현장을 찾았는데 사고 원인을 아직 못 찾고 있다”며 “사고 원인이 밝혀져야 작업을 재개할 수 있는데, 언제쯤일지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사고가 발생했던 삼성중공업의 경우 사고 발생 약 2주 후에야 작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STX폭발사고 현장

올해 들어서만 크레인·지게차 등 사고로 수십명 사상자
20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37분께 STX조선해양 조선소에서는 건조 중인 7만4천t급 화물운반선 내 탱크가 폭발해 이 탱크 안에서 도장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 4명이 숨졌다.

현대중공업에서도 지난 3~4월 지게차, 굴착기, 사다리차 작업대 등에 작업자가 치이거나 끼이는 사고로 원청 근로자 2명과 협력업체 근로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한국노총·민주노총으로부터 지난해 근로자 11명이 사망한 '최악의 산재 기업'으로 선정된 터라, 이 사고 이후 부랴부랴 창사 이래 처음 '전면 작업 중단' 상태에서 안전 점검까지 벌였다.

대우조선해양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9월 23일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선박 엔진룸 도장 작업 중이던 사내 하청업체 소속 50대 근로자가 H빔과 천장 크레인에 끼여 숨졌고, 같은 달 21일에는 선급 감독관이 10여ｍ 높이의 시추선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그보다 앞선 2015년에는 화재 사고도 잇따랐습니다. 8월 24일 옥포조선소 2도크에서 건조 중인 LPG 운반선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 협력업체 근로자 2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11월 10일에도 화재로 협력업체 소속 50대 여성 직원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사를 겪었다.

'위험까지 떠넘기는' 하청구조…정부, '원청 책임 강화' 나서
이처럼 빈발한 조선업계 인명사고의 피해자는 대부분 협력업체 근로자들이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조선업·건설업의 산재 사망자 중 하청업체 소속 비율은 다른 업종가 비교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촤근 3년간 산재 사망자 중 하청업체 근로자 비중은 건설업종이 98.1%, 300인 이상 조선업종이 88%에 이르렀다. 이들 업종에서 사고로 숨진 10명 중 9명은 하청업체 근로자인 셈이다.

노동계가 조선업 산업재해 책임의 상당 부분이 안전 의무까지 협력업체에 떠넘기는 원청 업체들에 있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대선 후보 자격으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부상자를 만난 자리에서 "사고원인을 규명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업무를 하청 업체에 떠넘겨서 정규직보다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높은 현실을 바로 잡겠다"고 약속했다.

공약대로 고용노동부 등 정부는 지난 17일 하청 업체에 일감을 주는 원청·발주처의 근로자 안전 의무와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산재 예방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 시 안전조치가 미흡했던 사실이 드러나면 원청 업체에도 하청업체(협력업체)와 똑같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게 된다.

원청에 대한 처벌 수위가 기존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보다 크게 높아지는 것이다. 유해·위험성이 높은 14가지 작업은 아예 도급 자체가 전면 금지되고, 불산·황산·질산·염산 등을 다루는 작업은 원청 업체가 안전조치를 확실하게 마련했을 경우에만 도급이 허용된다.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은 안전성 확보와 관련, 근로자의 의견을 수렴한 뒤에야 작업 재개를 결정할 수 있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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