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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金曜巨濟時調選]
「금요거제시조選-217」윤미정 '흑진주'▲윤미정 : 2020년현대시조등단/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사무국장/2009년경남자원봉사체험수기일반부 최우수상/제2회 금요시조문학상 수상

「금요거제시조選-217」
      흑진주

 

 

 

 

   
     윤 미 정

바람은 부는 대로
물결은 이는 대로

뒹굴고 또 뒹굴어
알알이 보석됐네

윤나는 흑진주 한 알
약지에다 얹는다.


사랑의 언약 같은
약지에 얹은 진주

볼수록 빠져들어
귀문이 열리는데

좌르륵 웃음소리는
신명 나는 협주곡.

◎주인
진달래에 밀려있던 철쭉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찌나 검붉고 화려한지 주변을 압도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서인지 가족 나들이를 하는 방문객이 늘어났다. 작업복 차림에다 일에 매달린 나를 보고 안스런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매달리는 일은 무거운 돌을 다루는 일이라서 더욱 그러하지 싶다. 또 어떤 이는 ‘즐겨하는 일이라 고단한 줄 모르시지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은 중국 불교 임제종(臨濟宗)의 개조 의현스님의 법어(法語)를 수록한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인이 되고 그 자리에서 진실하라는 뜻이다. 나는 내 삶의 터전에 주인이다. 주인은 일을 즐긴다. 아니, 주인이기에 일을 즐긴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밤을 세워 가며 일에 몰두하자 부왕의 건강이 걱정된 태자가 아뢰었다. “아바마마, 옥체를 보전하면서 일을 하옵소서” 세종대왕이 말했다. “태자야, 내 걱정은 마라. 나는 일을 즐기고 있느니라.” 나는 남들이 말하는 여생을 살고 있다. 팔순이 눈앞이니 맞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런대로 열심히 산 것 같다. 오랜 시간 돈 때문에 신산을 겪으면서 말이다. 신산을 견뎌 온 힘은 나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었다. 나 자신의 변화는 곧 일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 결과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는 성공회 한 주교의 묘비에 적혀있다는 다음 글을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가 젊고 아름다워 상상력의 한계가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시야를 약간 좁혀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만약 나 자신을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마침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런지….  

   염원을 포갠 돌이
   하늘 향해 줄을 섰다

   가늠 못 할 기운들이
   전신에 흘러넘쳐

   어느새 불끈 쥔 주먹
   팔다리가 저려온다.


   금강산 그 총석정
   예서 너를 보는구나

   돌 끝에 넘친 정한
   기도보다 가멸차다

   일천 점 포개진 염원
   해일 되어 밀고 온다.
  拙詩 ‘입석(立石) 앞에서’, 전문

 입석을 제작하면서 가늠 못 할 기운을 느끼곤 했다산골에 살다 보니 계절의 변화를 제때 느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계절이 변하는 게 아니고 순환이었다. 정연한 질서 속의 순환이었다. 새순이 몰라보게 자라 하늘을 가린 팽나무를 쳐다본다. 스무 평 남짓한 땅의 주인은 팽나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람한 둥치며 우산을 편 것 같은 당당한 모양새는 주인이 되고 남음이 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사는 터전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각자의 삶의 터전이 있다. 나도 내 삶의 터전에 주인 임에 틀림없다. 주인이기에 일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철쭉은 피어난 곳의 주인이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능곡이성보시조시인계간현대시조발행인

《감상》
시조 작품 <흑진주>는 까야만 몽돌 하나를 약지에다 올려놓고 그 감흥을 2수 연작으로 읊은 윤미정 시인의 작품이다. 일찌기 조지훈 선생은 「돌의 美學」이란 수상의 글 모두(冒頭)에서 이렇게 말했다. 돌의 맛 - 그것도 낙목한천의 이끼 마를 수석(瘦石)의 묘경을 모르고서는 동양의 진수를 얻었달 수가 없다. 옛사람들이 마당 귀에 작은 바위를 옮겨다 놓고 물을 주어 이끼를 앉히는 거라든가, 흰 화선지 위에 붓을 들어 아주 생략되고 추상된 기골이 늠연(凜然)한 한 덩어리의 물체를 그려 놓고 이름하여 석수도(石壽圖)라고 바라보고 좋아하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흐뭇해진다. 무미한 속에서 최상의 味를 맛보고 숙연부동한 가운데서 뇌성벽력을 듣기도 하고 눈 감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마음이 모두 이 돌의 미학에 통해 있기 때문이다.

 조지훈 선생이 말한 수석(瘦石)은 어떤 돌일까. 돌이 물살에 씻기는 것을 두고 수마(水磨) 된다고 한다. 물살이 오랜 세월 동안 석질이 약한 부위를 씻어내고 급기야 강질의 부위만 남게 된다. 이를테면 군살이 모두 빠졌으니 야윌 수밖에. 야윈돌 즉 수석(瘦石)이 되는 것이다. 몽돌은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한 돌이다. 대체로 몽돌이 되는 돌은 연질(軟質)과 강질(剛質)이 섞여 있지 아니하고 균일하기에 수마가 되어도 굴곡이 생기지 않고 모만 깎이어 두리뭉실한 몽돌이 된다. 몽돌은 수석(瘦石)이 아니기에 조지훈 선생이 말한 ‘돌의 멋’과는 다른 멋을 지니고 있다. 시인은 흑진주가 된 작은 몽돌에서 그 멋을 즐기고 있다.

 갯가에 흘러온 돌은 / 바람은 부는 대로 물결은 이는 대로 / 쉼 없이 뒹굴고 또 뒹굴어 알알이 흑진주가 되었다. 그중 가장 윤이 나는 흑진주 한 알을 / 약지에다 얹었다./약지에다 슬그머니 얹은 흑진주는 사랑의 언약 같았다. 모르긴 하나, 시인은 결혼반지로 흑진주를 받았지 싶다. 그리곤 행복감에 젖어 들은 나머지 / 볼수록 빠져들어 귀문이 열린다./들리는 / 좌르륵 웃음소리는 / 협주곡이었으니 어찌 신명 나지 않으리. 역마살을 가진 시인이 어느 사이에 거제 학동흑진주몽돌해변을 거닌다. 그리곤 사랑의 언약 같은 까아만 몽돌을 약지에 얹었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젖었으리라. - 능곡시조교실 제공

 

거제타임라인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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