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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거제시조選-220」이덕재   '일터는 쉼터'▲이덕재/거제동부출생/동부초운영위원장/동부구천마을이장/2017현대시조등단/한국문협회원/거제시조문학회 회장/능곡시조교실수강/시조집'개똥벌레’

    「금요거제시조選 - 220」

       일터는 쉼터

 

 

 

 

 

 

        이 덕 재

   땀 훔치다 빠져드는
   오월의 새소리와

   코끝을 간질이는
   찔레꽃 하얀 향에

   일터는 쉼터 같아라
   물소리도 정겹다.


◎대못
못은 쇠나 나무 따위로 만든 가늘고 끝이 뾰족한 물건을 말한다. 못 중에 대못은 대문짝이나 서까래 등에 쓰이는 굵고 긴 못이다. 나는 작품을 제작하면서 대못을 쓰기도 한다. 석부장용 입석을 제작함에 있어 돌과 돌을 연결할 때 해머 드릴로 뚫고는 철심을 박는데, 이때 철심을 고착시키는 캐미칼 앵커의 주재와 경화재를 희석시킬 때 대못을 쓴다. 또한 원경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 큰 스치로폼을 톱으로 다듬어서 원구형을 만들고는 보온 덮개를 씌운다. 그런 후에 착생 식물을 올린다. 착생 식물의 가장자리에 대못을 1㎝ 정도 남기고 박은 후 나일론 실로 지그재그로 엮어 고정시키고 마무리로 남은 못 부분을 박아 마무리한다. ‘못을 박다’는 ‘다른 사람에게 원통한 생각을 마음속 깊이 맺히게 하거나, 어떠한 사실을 꼭집어 분명하게 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못을 박다’를 더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 ‘대못을 박다’이다. ‘대못을 박다’는 듣기만 해도 섬뜩하건만 어느 때부터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인이 ‘못 박힌 나무’를 카톡으로 보내왔기에 감동적이라서 옮겨 본다.
남편이 미울 때마다 아내는 나무에 못을 하나씩 박았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외도를 할 때에는 아주 굵은 대못을 쾅쾅쾅 소리 나게 때려 박기도 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고 욕설을 하거나 화나는 행동을 할 때에도 크고 작은 못들을 하나씩 박았고, 그렇게 못은 하나씩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을 못 박힌 나무 아래로 불렀다. 그리곤 나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봐요! 이 못은 당신이 잘못할 때마다 내가 하나씩 박은 못이에요. 이제는 더 이상 못 박을 곳이 없네요. 어찌하면 좋을까요.” 나무에는 크고 작은 못이 빼곡히 박혀있었다. 남편은 이를 보고는 말 문이 막혔다. 그날 밤 남편은 아내 몰래 나무를 끌어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 후 남편은 차츰차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을 다시 나무 있는 곳으로 불렀다.
“이것 좀 봐요. 당신이 내게 고마울 때마다 못을 하나씩 뺏더니 이제는 못이 전부 없어졌네요.”
그러나 아내의 말을 듣고 난 남편은 
 “여보, 그런데 아직 멀었소. 그 못을 모두 뺐다 할지라도 못이 박혀있던 못 자국은 지금도 선명하게 그대로 남아있지 않소. 당신의 상처받은 마음 자국도 그대로 인걸요.”
 그 말에 아내는 남편을 꼬옥 부둥켜안고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위의글은 2014년 “다음 카페”에서 네티즌들이 뽑은 최우수 작품이라고 한다.

   땔감으로 부려 놓은 폐자재 서까래에
   뒤틀린 대못 하나 불편하게 박혀 있다   
   녹 슬은 시간에 기대어
   항변도 변명도 않고.

   대들보 깊숙이 박혀 안착하지 못한죄로 
   땔감에 휩쓸리어 노숙으로 뒤척이다
   수습할 시신도 없이
   잿불 속에 파묻힐까.
             
   꼿꼿함을 잃은 순간 못은 못이 아니라서
   뒤집기 한판은커녕 명함도 못 내밀고
   내쳐져 한 대로 내몰린 
   무의탁의 저 은유.
          이경옥. ‘무의탁 못’, 전문

 못은 어딘가에 단단히 박혀있어야 제 몫을 한다. 폐자재 서까래에 뒤틀린 대못이라니, 마침내 잿불 속에 파묻힐 일만 남았다. 그런 운명에 처한 것이 불편하게 박힌 대못뿐이리오. 가슴에 못이 박히어, 그것도 대못이 박히어 절절히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도 많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함부로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대못으로 케미칼 앵커를 희석하다 말고 손에 쥔 대못을 내려다보았다. 행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대못을 박지는 않았는지 하는 두려움 속에서 말이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곡이성보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일터는 쉼터>는 농사꾼인 시인이 땀 흘리며 일하다 새소리와 찔레꽃 향기에 취한 나머지 일터가 쉼터 같다고 너스레(?)를 떠는 이덕재 시인의 작품이다.
찰스 램(Cherles Lamb, 1775~1834)은 영국의 저명한 수필가로 <엘리아의 수필>은 그의 신변 관찰을 멋진 유머와 페이소스(pathos)를 섞어가며 훌륭하게 문장화한 것으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램은 한때 회사에서 월급 쟁이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직장에 매여 자유로이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었으므로 하루 빨리 직장을 그만 두게 되기를 바랐다. 세월이 흘러 램이 바라던 날이 왔으니 드디어 정년퇴직이 되어 밤에만 쓰던 글을 낮에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축하 합니다. 이제부터는 작품이 더욱 빛나리라 기대합니다.”
램의 소망을 잘 알고 있던 여사무원이 램을 축하하자 램이 말했다. “햇빛 아래에서 쓴 글이 별빛 아래에서 쓴 글보다 빛나는 것은 당연 하겠지.”
그러나 그로부터 3년 뒤에 램은 퇴직인사를 주고 받은 여사무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하는 일 없이 한가한 것이, 일이 너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 보다 얼마나 못 견딜 노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소. 할 일 없이 빈둥대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오. 아가씨는 내 말을 가슴에 잘 새겨두시오. 지금 아가씨가 얼마나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지를 알아 바쁜 가운데 나날이 행복하시길 바라겠소.” 
과정으로서의 삶이 있고, 결과로서의 삶이 있다. 대게 노력은 과정이 되고, 성공은 결과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 사람의 경우에만 그렇다. ‘성공으로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인생으로 성공한 사람’의 경우 그는 삶의 과정자체를, 일 자체를 즐긴다. 노력 그 자체가 즐거운, 과정 자체가 행복한, 그런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아름다운 삶은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데서 가능해 진다. 매 순간을 소중하게, 작은 일이라도 정성껏, 이런 마음을 기르면 매일매일이, 매 순간순간이 즐겁고 행복해지기 마련이다.

일에 빠져 땀 훔치다 오월의 새소리를 들었다. 그 새소리는 모르긴 하나 ‘호오오 익’하는 팔색조 소리였지 싶다. 그때였다. 코끝을 간질이는 향기, 그것은 하이얀 찔레꽃 향기였다. 시인에겐 일터가 쉼터 같았으니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도 정겨울 수 밖에. 樂之者, 시인은 진정 樂之者였다. 그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오늘따라 5월 하늘이 너무 맑고 정겹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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