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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223」윤미정 '납시는 봄'▲윤미정 : 2020년현대시조등단/능곡시조교실수강/거제시조문학회사무국장/2009년경남자원봉사체험수기일반부 최우수상/제2회 금요시조문학상 수상

「금요거제시조選 - 223」
    납시는 봄

 

 

 

 

     윤 미 정
  노오란 생강꽃이
  뾰족뾰족 밀고 나와

  죽었던 나무에서
  가지가 살아났다

  아직은
  눈발 날리는 2월
  문을 열고 납시는 봄
.

◎축록(逐鹿)•2
 자두나무가 해거리를 했다. 해마다 장마 소식과 함께 가지가 휘도록 달린 자두가 익어갔는데 올해는 몇 개 달리지 않았다. 자두 해거리를 어찌 아는지 비쭉새가 얼씬도 않는다.
 비쭉새란 놈은 참 맹랑하다. 겨울이면 먹을 게 없어서인지 멀구슬 열매까지 거덜 내곤 했다. 그러다 자두가 익을라치면 떼거리로 몰려와 자두를 쪼아 나무 아래를 낙과로 도배를 한다. 이때는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확금자불견인(攫金者不見人)’은 《열자(列子) 〈설부(說符)〉》에 나온다. 제(齊)나라 사람 중에 금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열자가 아침 일찍 의관을 갖추고 금을 파는 곳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손에 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손으로 낚아채 빼앗았다. 관리가 그를 체포하여 포박하며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손에 쥐고 있는 금을 빼앗았는가?” 하니 “금을 낚아챌 때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금에 눈이 뒤집혀 위험이 다가오는 것조차 알알아 채지 못했다. 이는 자두에 눈이 멀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비쭉새와 다를 바 없다.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은 중국 전한(前漢) 때 황족이자 회남왕(淮南王)인 ‘유안' (劉安, B.C. 179 ~ B.C. 122)이 방방곡곡의 ‘빈객’(賓客)과 ‘방술가’(方術家)를 모아서 편찬한 전 21권짜리 일종의 백과사전 격인 <회남자(淮南子)>의 ‘설림훈 편‘(設林訓 篇)’에 있다. 사냥하기 위해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는 눈앞의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어 도리를 저버리는 것을 두고 말함이다. 또 설림훈에는 ‘축록자불고토(逐鹿者不顧兎)’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으로,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축록자불견산과 축록자불고토에서 ‘축록’만 보기로 한다.

 옛날에는 제위나 정권을 흔히 사슴에 비유했다. 그래서 제위(帝位)나 정권 따위를 얻으려고 다투는 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축록(逐鹿)’ 또는 ‘중원축록(中原逐鹿)’이라고도 한다.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한신에게 강권한 괴통(蒯通)이련만 한신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위험을 느낀 괴통은 숨어들었다. 여후(呂后)로부터 한신(韓信)의 최후 말을 들은 한고조 유방은 괴통을 잡아들이라고 명했다.
 괴통이 붙잡혀 오자 유방이 말했다.
 “네가 회음후를 모반하게 했느냐?”
 “그렇습니다. 신이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 못난 놈이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 더벅머리 아이놈이 신의 계책을 썼다면 폐하께서 어떻게 한신을 죽일 수 있었겠습니까.” 이에 대노한 유방이 소리쳤다.
 “삶아 죽여라.” 
 괴통이 말했다. “삶아 죽임을 당하기는 너무 억울합니다.”  유방이 말했다. “네가 한신을 모반하게 했는데 어째서 억울하다는 것이냐?” 괴통이 대답했다.  “진(秦)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법도가 해이해져 산동(山東)에 대란이 일어나자 이성(異姓) 제후들이 다 같이 일어나고 영웅들이 운집했습니다. 진나라가 사슴을 잃자, 천하 사람들이 다 이를 쫓고 있었으니(秦失其鹿 天下共逐之), 재주가 높고 발 빠른 사람이 먼저 얻게 마련이었습니다. 도척(盜跖)의 개가 요(堯)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개는 그 주인이 아니면 짖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신은 한신만 알았지, 폐하는 알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천하에는 무기를 날카롭게 해서 폐하가 하신 일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 수없이 많았습니다만, 그들은 능력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다 삶아 죽일 수 있겠습니까?”

   仙人橋 나린 물이 紫霞洞에 흐르니
   半千年 王業이 물소리뿐이로다
   아히아 故國興亡을 물어 무삼 하리오
.

 『靑丘永言』(洪民本)에 있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시이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공신이었는데 역적으로 몰렸다가 다시 개혁 정치가로 재조명받고 있다. /선인교 나린 물이 자하동에 흐르니/ 선인교도 자하동도 송도인데 선인교 나린 물이 자하동에 말없이 흘러가니, 오백 년 왕업, 고려 오백 년 왕조가 물소리에 잠겼을 뿐이구나. 세상 사람들아, 인간사가 다 허망한 것이거늘/ 오백 년 왕업이 물소리뿐이로다./

 괴통의 말을 듣고 역시 비범한 인물인 유방은 괴통을 풀어주었다. 역사상 이름을 남긴 인물들은 이처럼 멋있는 데가 많았다. 주변에 뉴스를 외면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슴을 잡은 사람, 놓친 사람들로 해서 눈살이 찌푸려지기 때문이리라. 해 질 녘에 진동하는 풍란꽃의 감향을 맡고자 심호흡을 하여 본다. 조금은 살 것 같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시인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납시는 봄>은 아직은 눈발 휘날리는 2월인데, 죽었던 나무 가지에서 뾰족뾰족 밀고 나오는 생강나무꽃에서 느낀 생명의 외경을 단수로 읊은 윤미정 시인의 작품이다.

 생강나무는 꽃과 잎, 줄기에서 생강 냄새가 나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실제로 생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잎이 돋기 전에 노란 꽃을 피우는데 자생식물 중 봄에 가장 일찍 핀다고 하여 ‘봄의 전령사’라고 불린다. 같은 시기에 피는 산수유꽃과 비슷해서 헷갈리기 쉽다. 생강나무는 오래전부터 잎이나 껍질을 약으로 썼다는데 냄새가 특이하여 향수로 만들기도 한단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알싸하고 향이 나는 노란 동백꽃’은 실제 동백이 아니라 생강나무를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다. 강원도에서는 이 나무를 ‘동백’, ‘동박’으로 부르는데, 내륙지역에서 구하기 힘든 비싸고 귀한 동백기름 대신 생강나무 씨앗에서 기름을 추출해 사용하면서 동백기름이라고 부르던 것이 이렇게 된 것이다.

 역마살이 있는 시인이 노오란 생강나무 꽃이 피는 산에 올랐던 모양이다. /노오란 생강꽃이 뾰족뾰족 밀고 나왔/ 단다.
 가지 끝에 달린 생강나무 꽃을 두고 ‘뾰족뾰족 밀고 나왔다’는 표현이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겨울 동안 메말라 마치 죽은 듯한 나무였다. 뾰족뾰족 밀고 나온 꽃송이로 해서 가지가 살아났다. 생명의 봄은 생강나무 꽃에서 기지개를 켰다. 이쯤에서 이방응의 <제화매(題畵梅)>를 감상해 봄직도 하다,

    揮毫落紙墨痕新(휘호낙지묵흔신)
    幾點梅花最可人(기점매화최가인)
    願借天風吹得遠(원차천풍취득원)
    家家門巷盡成春(가가문항진성춘)
    이방응(李方膺), 제화매(題畵梅)

    종이 위에 붓 휘두르니 먹색 산뜻한데
    매화 몇 점 그려 놓으니 참으로 즐겁구나
    하늬바람 빌어 멀리멀리 날려서
    집집마다 거리마다 활짝 봄되게 하고 파라.

 청나라 이방응은 평생 매화를 사랑하였고 또 매화를 잘 그렸다. 매화에 대한 사랑과 활달한 화풍이 잘 나타나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시이다. / 아직은 눈발 날리는 2월/ 이련만, 누가 볼세라 살며시 문을 열고 봄이 납시고 있다. ‘납시다’는 ‘나가시거나 나오시다’이다. ‘납시는 봄’이란 결구가 봄을 기다리는 희원이 묻어나기에 佳句가 되었다. 그래서 ‘납시는 봄’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기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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