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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225」김현길 '된장 서방 마치기'

「금요거제시조選-225」 

     된장 서방 마치기

 

 

 

 

 


  김현길
   집사람
   전화가 왔다.
   된장 서방 마치려고
   쉬는 날 내려갈 테니
   꼼짝 말고 있으란다
   야외 솥
   간장을 데리면서
   힐끔힐끔 쳐다본다.
   
   양은 다라
   앞에 놓고
   시누올케 둘이 앉아
   새 된장 구 된장을
   주물럭대고 있었다
   괜스레
   서방 마친단 말에
   가슴만 찔끔했다.

 * 새 된장과 구 된장을 섞어서 합치는 것을 ‘서방 마친다’고 한다.

▲김현길
     1956년 거제 둔덕 출생
     진주교대 대학원 졸
     2005년 시사문단 시 등단
     2013년 수필시대 수필 등단
     2014년 현대시조 시조 등단
     한국문협회원. 경남문협회원. 국제펜클럽회원. 
     거제시조문학회 직전회장 
     시집 : 「홍포예찬」 「두고 온 정원」 「나의 전생은 책사」
     시조집 : 「육순의 마마보이」 「봄날의 뒤란」
     수필집 : 「비에 젖은 편지」
     장편소설 : 「임 그리워 우니다니」

《감상》
 

능곡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된장 서방 마치기>는 아내와 여동생 즉 시누 올케가 묵은 된장과 새 된장을 주물러 합치는 광경을 2수 연작으로 읊은 김현길 시인의 작품이다.

 詩題의 ‘된장 서방 마치기’가 생소하여 시인께 물었더니 거제 둔덕 지방에서 지금껏 쓰는 말이라고 한다.
 궁한 나머지 시인의 아내는 평택으로 돈 벌러 갔겠다. 이는 시인이 몇 차례나 말했으니 아는 사람이 꽤 되지 싶다. 아내를 돈 벌러 타처로 내몬 지아비 심정이 어떠한지는 말해서 무엇하랴.
 상황을 볼라치면 안쓰럽기 그지없으나 시인 내외간에는 어떤 행복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김소운 선생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을 들먹이고 싶어졌다.
 밥 한 공기, 간장 한 종지뿐인 밥상이 왕후장상의 성찬이 되는 행복을 부자들은 결코 맛볼 수 없다.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는 중년의 여인이 사과 장수 남편을 회상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인이 아직 젊었을 때, 사업 실패를 거듭하던 남편이 사과 장사를 또 시작했다. 서울에서 사과를 싣고 춘천으로 가서 넘기고 오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 번은 춘천으로 떠난 남편이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보통 이틀째에는 틀림없이 돌아오던 남편이었다.
 닷새째 되는 날, 아내는 춘천으로 떠났다. 그런데 여관이라는 여관은 다 뒤졌어도 남편을 찾을 수 없었다. 낙담한 여인은 혹시나 하며 정거장에 둘러봤다. 그랬더니 남편은 매표소 앞의 줄 속에 서 있었다.
 늦은 사연은 이러했다. 트럭에 사과를 실은 남편은 춘천 가는 길에 몇 사람을 태웠다. 그런데 그들이 깔고 앉는 바람에 사과가 상해서 제값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남편은 친구 집에서 자며 시장 한 구석에서 사과를 팔았다. 8.15 직후라 전보도 제 구실을 못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편은 아내의 손을 꽉 쥐었다. 세 시간 넘게 오는 동안 남편은 한 번도 그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편이 6.25 전란 통에 죽고, 여인 혼자 어린 자녀들을 키웠다. 여인은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커서 대학엘 다니고 있으니, 그이에게 조금은 면목이 선 것도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춘천서 서울까지 제 손을 놓지 않았던 그이의 손길,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말없이 아내의 손을 쥔 남편의 손길은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맞잡은 손안에는 가난한 날의 행복이 가득 들어 있었으니 말이 많을 수 밖에. 김소운 선생은 그것을 가난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프리미엄이라고 말했다.
 가난하다고 어둡기만 한 것도 아니고, 부를 얻었다고 해서 인생이 빛나는 것도 아니다. 가난은 불편한 것 일뿐 불행은 아니라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인의 가난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된장 서방 마치려고 쉬는 날 내려갈 테니 꼼짝 말고 있으라고 평택에 있는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아내가 야외 솥에 간장을 데리면서 힐끔힐끔 쳐다 본단다. 무심코 보는 아내의 눈길이언만.

 시누와 올케가 양은 다라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아 새 된장 묵은 된장을 주물럭대고 있었다. 된장 서방 마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 괜스레 서방 마친단 말에 가슴만 찔끔했다.// 힐끔힐끔 쳐다본다 // 가슴만 찔끔했다 /는 첫 수와 둘째 수 종장 결구에 입가에 미소가 절로 인다. 무언가 찔리는 데가 있는 모양이라서 말이다.

 <가난한 날의 행복>, 가난하다고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란 것을 <된장 서방 마치기>에서 느꼈다. 그 느낌은 장맛비 속에 잠깐 비치는 햇살 같았다.

◎도라지

 장마의 시작과 함께 능소화가 꽃을 피웠다. 꽃은 저마다 아름답지만 꽃에 붙어 있는 전설은 하나같이 슬프다.
 비극미(悲劇美)라는 말이 있다. 슬프고 애달픈 데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꽃 중에서도 도라지꽃은 사람들에게 아련한 슬픔을 자아내도록 꽃 색깔이 연보랏빛이거나 흰빛이다.
 가녀린 도라지꽃을 둘러싼 전설은 많지만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다음 전설은 비련에 가슴이 저린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리따운 낭자가 살고 있었는데 대갓집 외동딸이었다. 곱기로 소문이 나 혼담이 줄을 이었지만, 상대가 낭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솔깃한 소문이 들려왔다. 마을 뒷산에 있는 절의 탑을 돌며 빌면 어떤 소원도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달빛이 휘황한 어느 날 밤, 낭자는 몰래 집을 나와 절에 올랐다.
 그리곤 간절한 마음으로 대웅전 앞의 탑을 돌기 시작했다.  
 얼마나 돌았을까. 낭자는 그만 현기증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때 마침 대웅전으로 향하던 젊은 비구승이 낭자를 발견하고는 선방으로 옮겨다 뉘었다. 얼마 뒤 깨어난 낭자는 곁에 앉아 있는 젊은 비구승을 보고는 가슴이 콩콩 뛰었다.
 “저분은 부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닐까. 그토록 찾던 낭군님이 지금 내 곁에 앉아 있구나!”
 하지만 낭자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비구승은 새벽 법고 소리가 울리자 무심히 방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온 낭자는 날이 갈수록 연모의 정이 더했다. 행여 비구승이 탁발하려 오지 않나 하염없이 기다렸으나 스님을 만날 길은 묘연했다.
 그리움에 지친 낭자는 몸져누워 시름시름 앓았다. 부모는 정성을 다했으나 백약이 무효했다. 마지막 소원이나 들어주자 싶어 소원을 물었더니 낭자는 뒷산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게 해달라고 청했다. 불공을 드리자, 기적이 일어났다. 하루하루 불공을 드릴 때마다 화색이 돌아 마침내 달덩이 같은 옛날 모습을 되찾았다.
 인근 마을에 영험하신 부처님 은혜로 대갓집 외동딸의 불치병이 치유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뒤로 낭자는 언제든지 절에 갈 수 있었고, 그때마다 먼발치에서나마 비구승을 보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비구승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기 결재가 끝나자,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다른 절로 떠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지만, 스님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자 낭자의 얼굴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낭자는 더 이상 절을 찾지 않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거나 바스락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몰래 집을 빠져나온 낭자는 절 근처에 당도한 뒤 허겁지겁 낙엽을 긁어모았다. 부싯돌 빛이 반짝 어둠을 쪼갰다. 잠시 뒤 낭자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사찰로 옮겨붙었다. 잠자던 스님들이 뛰쳐나와 허둥거리는 사이 벌건 화염은 날름날름 법당과 선방을 삼켰다. 
 숨어서 지켜보던 낭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두문불출을 결심한 학승이라 해도 불이 나면 뛰어나오겠지 싶었다. 
 그리움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느니 차라리 임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 자결하리라 했었다. 그러나 비구승의 방문은 꼼짝도 않은 채 그대로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내가 그이를 죽게 만들었구나!”
 망연자실한 낭자는 자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불길 속에 몸을 던졌다. 이를 본 주지 스님이 황급히 낭자를 건졌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낭자는 안간힘을 다해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용서를 빈 뒤 숨을 거뒀다. 주지 스님은 시신을 고이 묻어 주었다.
 세월이 흘러 대사가 된 비구승이 젊은 시절 머물렀던 옛 절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사찰을 새롭게 지은 것을 보고 주지 스님에게 연유를 물었다가 모든 것을 알게 됐다. 낭자의 무덤 앞에서 넋을 위로하던 대사는 화장을 해서 모든 죄업을 불살라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일꾼을 불러 묘를 파고 관을 꺼냈다가 깜짝 놀랐다. 낭자의 시신이 이제 막 묻힌 것처럼 조금도 상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전 되어있는 게 아닌가. 대사의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시신 위에 떨어지자, 낭자의 굳은 얼굴이 서서히 펴지더니 평온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낭자를 화장한 대사는 뽀얀 재를 바랑에 넣고 다니며 발길 닿는 곳곳에 뿌려 주었다. 이듬해 봄, 재가 뿌려진 곳마다 작은 싹이 돋아났다. 새싹은 자라서 하기 결재가 끝나는 즈음인 7월이 되자, 가늘고 긴 줄기 위에 연보랏빛 꽃과 흰 꽃을 피워냈다. 낭자의 넋이 깃든 그 꽃을 사람들은 도라지꽃이라 불렀다.
 도라지꽃의 전설이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낭자의 비극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라지타령은 한국 전통민요 중 하나로 주로 경기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대표적인 민요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골에 백도라지 
   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에 스리 살살 다 넘는다.

 도라지타령의 가사는 단순하면서도 정겨운 내용을 담고 있어 도라지를 캐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설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 모양이다.
 도라지 전설은 비극미를 보여주고 있지만 도라지타령은 정겨운 내용에다 외설적이기도 하다 하니 세상사는 묘하다고 할 수밖에.
                                     (이후 다음 주에 계속)

 ―능곡 시조 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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