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31」 

평택에서 마누라의 SOS
                     - 댕댕이 샴푸

김  현  길

꼭두 새벽부터 핸드폰이 울었다

여보! 어제 내가 사고를 쳤어요 이제 하다하다 댕댕이 샴푸를 당근으로 받았지 뭐예요 노안으로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싼 맛에 그만. 어째 샴푸가 왜 그렇게 싸다 했더니 글쎄 10kg 6박슨데 횡재했다고 좋아 했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병을 자세히 보니 도그가 그려져 있잖아요 흑흑 나 어떡하면 좋아요 앞으로 우리 가족은 댕댕이 샴푸만 써야 해요 다행히 미젠데 인터넷에 쳐보니까 사람이 써도 별 상관이 없대요 당신 목욕할 때 다른거 쓰지 마요 꼭 이것 써야해요 알았죠? 설쇠러 집에 내려갈 때 한 차 싣고 갈게요

마누라 통 큰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김현길
     1956년 거제 둔덕 출생
     진주교대 대학원 졸
     2005년 시사문단 시 등단
     2013년 수필시대 수필 등단
     2014년 현대시조 시조 등단
     한국문협회원. 경남문협회원. 국제펜클럽회원. 
     거제시조문학회 직전회장 
     시집 : 「홍포예찬」 「두고 온 정원」 「나의 전생은 책사」
     시조집 : 「육순의 마마보이」 「봄날의 뒤란」
     수필집 : 「비에 젖은 편지」
     장편소설 : 「임 그리워 우니다니」

《감상》
 

능곡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평택에서 마누라의 SOS>는 ‘댕댕이 샴푸’라는 부제가 붙은 사설시조다. 요즘 많이들 이용하는 ‘당근’에서 싼 맛에 댕댕이 샴푸를 왕창사고는 당황한 나머지 꼭두 새벽에 남편에게 전화한 상황을 익살스럽게 사설시조로 읊은 김현길 시인의 작품이다.

사설시조는 단시조와 마찬가지로 3장의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초장의 길이는 단시조와 같거나 두음절 이상 늘어날 수도 있다. 대부분은 중장의 길이가 길다. 중장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게 된다. 종장은 중장을 길게 끌어온 관계로 간결한 마무리를 보여야 한다. 단시조의 종장과 같이 3.5.4.3의 음수율 배열이 보통이지만 이 역시 기본 가락보다 넘칠 수 있다. 

사설시조가 갖는 특권은 다양한 융통성이다. 그러나 모든 문장의 길이가 늘어날 때는 반드시 각 장이 담당하고 있는 필연적인 범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설시조라고 해서 지나친 장문이 된다면 이 또한 시조문학의 기본 취지와 멀어지면서 자유시로 오해되기 쉬운 것이다.
김현길 시인은 시조에 대한 양식론적 확장이라는 그의 일관적 노력을 실현해 가고 있다.

/ 꼭두 새벽부터 핸드폰이 울렸다/ 로 초장을 열고는 여보! 어제 내가 친 사고 얘기부터 그 댕댕이 샴푸를 설쇠러 집에 내려 갈 때 한 차 싣고 갈게요/의 중장 전개가 물 흐르듯하여 독자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리곤 / 마누라 통 큰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역시 시인답다.폭염에 비지땀을 흘리는 독자에게 시원한 냉수 한 잔을 건네는 것 같아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댕댕이 샴푸! 댕댕이 샴푸!!!!!

◎잘되면 내 탓•1

내일이 말복이다. 올해 더위는 예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더웠다. 많은 종류의 더위 중 최상급인 ‘찜통더위’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이 찜통더위도 한 열흘 정도 견디면 되지 싶다.
 폭염 속에 치루어진 파리올림픽도 폐막 되었다. 우리 선수들의 메달 소식은 시원한 소나기 같았는데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의 대한 배드민턴협회를 겨냥하고 쏟아낸 작심 발언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도 있고, 잘되면 자기 덕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도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사람에겐 누구에나 장단점이 있으며 또한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풍토는 중요한 인간사이련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여 시끄럽다.

서로 등지고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는 ‘진가(陳家)의 결혼식’이라는 중국 우화가 있다.진가에서 결혼 잔치를 앞두고 가축 한 마리를 잡아야 했다. 그래서 마침 살 오른 거위를 잡고자 불러다 놓고 그 뜻을 전했더니….
“나는 알을 낳습니다. 알을 낳지 못하는 수탉이 있지 않습니까?” 하였다. 맞는 말인지라 거위를 보내고 수탉을 불렀다.
“이래 보여도 저는 비록 알을 낳지는 않지만 매일 아침을 전하는 신성한 의무를 어김없이 해내고 있습니다. 먹고만 노는 양이 있지 않습니까?”
또 수탉을 보내고 양을 불렀다.
“그 추운 겨울을 나는 것은 나의 털 덕분인 것을 잊고 계십니까? 개야말로 아무것도 주는 것이 없잖습니까?”라고 개에게 미룬다. 개가 불려 와서는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구, 저(羊)를 늑대로부터 지켜주는 것이 누구인데! 말은 많이 먹는 만큼 득이 없습니다.”

말은 또 어떤가. 말대로 할 말이 있었다.
“당신은 멀리 갈 수 있는 것이 누구 덕택입니까. 같은 등이라고 해서 나의 등은 소등과는 다릅니다.”
그러자 소는
“나 없으면 누가 밭을 갑니까. 먹고 놀기만 해서 살만 찌는 돼지가 적격입니다.”
돼지는
“땅만 갈면 다인가요? 땅을 걸우는 걸 생각 못하십니까.”
이렇게 따로따로 불러다가 나름대로의 주장을 듣고 보니 어느 짐승도 잡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화가 치민 진(陳)주인은 가축 모두를 불러놓고 그렇다면 너희 모두를 잡아버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하인으로 하여금 칼을 갈게 했다.

]이에 다급해진 짐승들은 긴급 가축 회의를 갖고 진지하게 대화를 했다. 거위가 일어나서 
 “주인을 늦잠 자게 해서는 안 되기에 수탉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자신이 잡혀 죽겠다고 자원했다.

수탉도 자신의 직책을 겸손히 하고 양의 존재를 평가하는 식으로 번갈아 돼지에 이르기까지 희생을 자원하였다.이 가축 회의를 지켜보던 진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잔치를 벌이지 않겠다 하고 돌아섰다.

어느 짐승도 희생당하지 않게 된 것이다.
위의 ‘진가의 우화’는 각기 제 나름의 명분이나 논리를 주장만 한다면 파국을 면치 못한다는 것과 위기일수록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에 임하여 상대방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모두 살아날 수 있다는 교훈을 오늘의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잘되면 내 덕이고 못되면 남 탓이라

 글 잘못 쓰면 필묵 탓이고, 양식이 떨어지면 며느리 
 큰 손 탓이라, 과식하고 배 아프면 사촌이 논을 산   탓이고, 일이 잘못되면 산소 탓이고, 못살면 조상    탓이라 않던 가베

아서라 그만 좀 하자 내 탓 네 탓 그놈의 탓.
                        -拙詩, ‘내 탓 네 탓’, 전문

조선조 숙종 때 청나라에 갔던 김창업(金昌業)의 연행일기(燕行日記)에 보면 중국 땅에서 안씨(顔氏) 하면 아무리 천직에 있더라도 일단 인격을 갖춘 분으로 존대하는 관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안씨가훈(顔氏家訓)」은 당나라의 유명한 서예가 안진경(顏眞卿)의 5대 조인 안지추(顏之推)가 후손을 위해 지은 것으로 이를 성실히 지키는 것이 가풍이요, 가통이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잘된 일은 반드시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못된 일은 반드시 내 탓으로 돌리라”는 대목이 있다.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사에 이르기까지 남을 탓하지 말고 내 탓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세상이 변하고 달라지리라 믿는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능곡 시조 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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