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35」

      순비기 언덕

김용호

그립다 말도 못해
   바닥만 움켜쥐고

   숨 쉬고 비우기를
   천만 배 절 하듯이

   보라꽃 
   피어오른다
   갑사댕기 누이처럼.  

▲김용호
     -거제 일운면 출생. 경상대학교 대학원 졸업
     -한국문협, 거제문협, 거제수필, 거제시조, 
      거제시문학, 청마기념사업회, 거제향교회원
     -전국 시조가사 공모전 일반부 최우수상 수상.
     -현대시조 등단(2020년)
     -시집 「갯민숭 달팽이」, 「계룡산 억새능선」, 시조집 「선운사 꽃무릇」
     -저서 「풀어보고 엮어보는 거제 방언 사투리」, 「재미나게 풀어보는 거제방언 거제말」, 「재밌는 거제도 사투리」
     -능곡시조교실 수강
     -거제시조문학회 편집장

《감상》 

능곡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순비기 언덕〉은 순비기가 무리지어 핀 언덕에서의 감흥을 단수로 읊은 김용호 시인의 작품이다.

순비기는 마편초과에 속하는데 중부 이남의 해안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다. 모래에 깊숙이 뿌리 내리는 특이한 식물인데 염분이 있어야 잘 자라는 염생식물이기도 하다. 낙엽수로 잎은 대생(對生)하게 자란다. 순비기 나무는 위로 자라는 것보다 옆으로 포복하는 길을 선택 하였기에 20~80cm 정도 자라는 작은 나무 키이며 조경이나 허브 향수로 사용되어 작은 나무인데도 쓸 곳이 많은 다재다능한 식물이다.

순비기의 이름 유래로는 제주도 방언이 들어가 있는데, 숨비라는 말은 해녀가 숨을 비우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인데 해녀들이 자주 겪는 잠수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여 숨비나무에서 순비기나무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잎은 달걀 모양이며 뾰족한 곳이 없고 둥글다. 잎자루도 10cm정도 한다. 잎에서는 특유의 향기가 나기 때문에 향수나 방향제로도 이용된다.

]꽃은 여름에 보라색으로 피는데 땡볕에 순비기꽃 촬영객도 많다고 한다. 열매는 약재로도 사용하는데 두통 완화에 효능이 있다.우리나라 바닷가 모래밭 가장자리를 덮어 모래의 유실 방지에 일등공신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한다.

바다를 사랑한 꽃이었는가, 그래서 꽃의 색깔이 바다색이었나보다. / 그립다 말도 못 해 / 혓바닥만 쏘옥 내밀고 안타깝고 아쉬움은 모래 / 바닥만 움켜쥐고 / 있다. 한 톨 모래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움켜쥐고 있다.

숨비기, / 숨 쉬고 비우기를 천만 배 절하듯이 / 오늘도 제주 바닷가에는 숨 쉬고 비우기를 천만 배 절하듯 하는 해녀들이 우리를 반길 것이다. 그 강인함, 그 끈질긴 생명력이 오늘의 제주가 있게 했다.

7월, 폭염속에 / 보라꽃 피어오른다 갑사댕기 누이처럼 / 바다를 향그린 숨비기 꽃이 혀를 쏘옥 내밀고 있다. 순비기꽃이 얼마나 곱고 아름다웠으면 갑사댕기 누이라 했으랴. 그중 강인한 꽃은 10월까지 피리라고 한다.
나도 내년 7월이면 순비기 언덕을 가보리라 다짐한다.

◎ 사사로운 생각 버리기
 올여름 찜통더위는 열대야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록을 갱신한 모양이다. 지난날 여름밤엔 귀신 얘기도 많았다.
 어디에서나 공포가 있는 곳에는 귀신이 있고, 원한이 있는 곳에는 원혼이 있다고 한다.
 으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악운으로 여겨지는 것을 징크스라 말한다.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중세 유럽에서 고양이는 불길하다고 하여 마녀처럼 취급했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기 전날,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봤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는 꿈을 두려워 했다. 시저가 암살당하기 전날 밤, 그의 아내 캘퍼니아는 하룻밤에 두 번이나 시저가 암살당하는 흉몽을 꿨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다리 건너는 것을 병적으로 꺼렸다. 500여 개의 다리를 놓아 ‘북부의 베니스’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황제였지만, 평생을 의심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은 건물을 출입할 때 언제나 오른발부터 먼저 들여놓았다. 풍자시 ‘런던’을 쓰기도 한 그는 ‘런던에 싫증난 자는 인생에 싫증난 자다’라고 말할 정도로 런던을 사랑했지만, 런던 시내를 걸어 다니는 존슨의 발걸음은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황제와 시인의 발목을 잡았다. 이 모두가 징크스가 불러온 금기들이다. 기껏해야 미신이라고 할 징크스에 불과하지만, 역사의 인물에서 보듯이 징크스에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배중사영(杯中蛇影)이란 말이 있다. 술잔에 비친 뱀 그림자라는 뜻인데,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진다.
 진(晉)나라에 악광(樂廣)이라는 사람이 하남(河南)의 태수로 있을 때였다. 자주 술자리를 하던 친구가 발길을 끊어 악광이 찾아가 까닭을 물었더니, 그가 좋지 않은 안색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번에 자네와 술을 마시는데 술잔 속에 뱀이 보이더라고, 꺼림직했지만 자네가 무안해할까봐 그냥 마셨는데, 그 후부터 몸이 안 좋아 졌다네.” ‘이상한’일이라고 생각한 악광은 그 친구와 술을 마셨던 방에 가보았다. 그런데 그 방의 벽에는 뱀의 그림이 그려진 큼지막한 활이 하나 걸려 있었다. 뱀의 정체를 깨달은 악광은 친구를 다시 그 자리로 불러 술을 마셨다. 악광이 잔에 술을 붓고 친구에게 물었다.
 “잔 속에 또 뭐가 보이는가.”
 친구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저번처럼 뱀이 보이는군.”
 그러자 악광은 껄껄 웃으며 벽의 활을 가리켰다.
 “그 뱀은 바로 저기 걸린 활의 그림자라네.”
 그 순간 친구는 얼굴이 환해지며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귀신이나 두려움도 술잔에 비친 뱀과 같은 것이다. 뱀이라고 생각하며 마시면 마음속에 뱀이 들어와 실제로 병이 난다. 반면에 그림자에 불과한 것을 알면 아무리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다. 
 술잔에 비친 뱀 그림자를 마시고 병에 걸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폴레옹이 무서워한 검은 고양이도 기실 뱀 그림자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징크스에 갇히고, 스스로 만든 귀신에 놀란다. 하지만 귀신이 어른거리면 놀라지 말고 그 마음을 비워버리면 그만이다.

   竹影掃階塵不動  (죽영소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水流任急境常靜 (수류임급경상정) 
   花落雖頻意自閑 (화락수빈의자한) 

   대나무 그림자 계단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결 일지 않네
   강물이 급히 흘러도 강둑은 고용하고
   꽃잎이 덧없이 날려도 마음 여유롭네.

 송나라 때 임제종 야부도천 스님의 선시(禪詩)다.
 사람이 항상 외부적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런 마음을 갖고 사물을 대하고 접한다면 우리의 심신은 안정을 찾고 자유로울 것이다.
 9월이 중순으로 접어드는데 폭염경보는 계속 내리고 있다. 이상한 세상이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능곡시조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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