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칠 임

계란 굽는 여자(14)

시를 배우고 돌아가는 밤길
부스럭 거리며 그녀가 내민
계란 열 알

울렁울렁 휘돌며
하나의 무엇으로도 자리 잡지 못한 나날들
껍질로 둘러 싸여진
바다의 슬픈 소용돌이였다

그릇에 물을 붓고 계란을 담근다
이글거리며 끓어서 휘감는 압력의 일곱 시간
버틴다-
버틴다-

마침내
미의 타원형
다갈색의 윤기 있고 섹시한 너
껍질 안에서 완성 되었다

두려움을 벗긴다
거미줄처럼 달라붙은
버릇 같은 조각들
벗어나면 네가 더 잘 보이는 거야

알몸이 된 계란에서
느껴지는 충만함
너의 노란 심장이 촉촉하게 녹아
내 안으로 들어온다.

눌산 윤일광 교수

감상)
시인이 늦은 시간 시를 공부하고 돌아가는 길에 같이 가던 그녀가 전해준 계란을 압력밥솥으로 일곱 시간 굽으며 쓴 시다. 계란 속을 ‘껍질로 싸여 있는 바다의 슬픈 소용돌이’라는 표현은 새롭다. 시인은 언제나 평범한 오브제 속에서 새로운 시어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행간의 의미를 통해 시인의 목소리를 숨겨 놓게 된다. 정작 이 시에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은 두려움을 벗기고 나면 더 잘 보이는 알몸의 그대, 우리는 계란의 껍질 같은 두터운 막을 치고 살아가고 있음에 대한 자신에 대한 항거다. 그래서 숨이 막히도록 ‘나’를 가두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가 시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눌산 윤일광 시창작교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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