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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곽호자] '무심타령'곽호자;수필가/계룡수필회원

                         무심 타령

                                                                  곽 호 자  

교차로에 섰다.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늘어난다. 손 전화를 들여다보거나 앞만 보고 서있거나 마주보고 소곤대거나 그들 속에 나도 섰다. 신호가 바뀐다. 사람들이 우르르 길을 건넌다. 강아지 한 마리가 태연하게도 무리 속에 끼워 있다. 허둥거리지도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차도를 벗어난다. 묘한 조화다. 어디선가 바람에 날려 온 마른 나뭇잎이 아스팔트 위로 구른다. 홀연히 날아든 큰 잎 하나가 구르는가 싶더니 차바퀴에 이내 뭉개져 버린다. 낙엽은 쓰레기가 되고 사람들은 무심히 밟고 지나간다.
  작년에  단풍이 든 벚꽃나무의 낙엽을 몇 장 모아 본적이 있다. 주황 노랑의 색깔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우수수 지는 낙엽 터널에서 나의 무심함을 일깨웠다. 나이와 상관없는 소녀감성은 가장 예쁜 낙엽을 골라 책갈피에 끼워 두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서는 잊어버렸다. 올해 책장 정리를 하던 중에 무언가 떨어졌다. 그것은 작년 이맘때의 단풍잎이었다. 細絲의 결처럼 아름다웠다. 그게 뭐라고 한 잎은 벽에 붙이고 나머지는 캠퍼스 용지에 옮겼다. 가을을 모셔두고 싶어서다.
  감성은 순간적이라 할 수 있다. 바삐 움직여야하는 교차로는 활기차다. 신호등의 지시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다들 바빠서 허둥대는데 짓뭉개진 마른 잎 존재는 하찮아도 한참은 하찮다. 중국 발 미세먼지와도 같은 낙엽의 末路. 그러나 잎을 밀어낸 떨켜를 보면서, 땅위에 구르는 낙엽을 보면서 무심하지 못하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연민이나 애증 허무 심지어 슬픔까지 끼어든다. 한 낱 마른 잎에 무심을 주문한다. 사는 동안 난해한 의미를 버리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 누군가 속삭인다. 그래 무심이다. 
  살면서 변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변한 마음을 이해도 해보고 원망도 하고 결국에는 체념을 한다. 누군가 그리하듯 나 역시 수없이 변한다. 하루 열두 번도 변하는 마음이다. 사연은 따로 두고 사람인 이상 흉잡힐 일을 하기 마련인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다. 실수이던 실언이던 돈독하던 사이이면 마음을 옹그릴 필요가 없을 성 싶다. 마음이 닫히면 그만무심을 받아 드리고 만다.
  사거리 교차로는 잡념 할 겨를이 없다. 유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만 무심을 가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심한 척’ 우울함을 덮으려고 애쓴다만 나는 뭔가 이 무슨 꼴인가. 구르는 나뭇잎에 유심하고 책갈피에 낙엽 말리는 이 유심함은 또 무엇인가. 무심을 불러들인다.
   인생은 찰나다. 방방 뛰기만 했지 무엇 하나 잡은 게 없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망상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안일한 생각은 아니다. 평범한 것이 가장 안전한 삶이라고 겁쟁이가 되어 이탈을 겁냈다. 현모양처라는 사명감으로 노년을 맞았다. 그런 와중에도 가정이란 울타리는 지진처럼 흔들리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오는 소소한 위기였다 해도. 궁핍하면 궁핍한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사람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젊을 때의 숫기로 사는 것보다 조금은 뻔뻔하게 상대를 넘볼 줄도 알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요령이었다. 삶의 행간에 끼어드는 비애와 기쁨은 나를 거듭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요령부득이한 난간에서 성격의 변화도 도움이 되었다. 내 성격은 한마디로 줏대가 없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가 나를 닮았는지 내가 갈대를 닮았는지. 넘치는 유심, 지나친 유심, 불필요한 유심사이로 무심하게 세월은 쓰윽 스쳐가고 있다.
  사람의 물결이 이는 교차로에 찬바람이 분다. 동서남북으로 흩어지는 사람과 사람들 가을인 듯 겨울인 듯 나는 다시 소녀가 되고 만다. 나의 늙음에 유심한들 뭣하며 무심한들 뭣하랴. 나이 칠십 중반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만사 회복력 없는 나이에 감성까지 마를 수 없지 않은가. 지금에 와서 무심한 척 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유심한 척도 도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무상 심상이 내 것이다. 개업한 점포 앞에  홍보차가 서 있다. 아가씨들이 요란한 음악에 몸을 흔든다. 푸른 신호가 바뀔 동안 모두가 그리로 눈이 쏠린다. 또 오지랖 넓은 나의 유심이 무심을 밀어내는 순간이다. 찬바람이 부는데 .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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