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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 박찬정]'기억 여행'박찬정:∙서울 출생/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계룡수필문학회 회원/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2016. 1.>

                            기억 여행
                                                     
                                                                  박 찬 정

*

우산 하나 챙겨 넣는다는 걸 깜빡 잊었다. 마침 도쿄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부터 비가 온다. 며느리가 출근하면서 새 우산을 하나 내주었다. 현관 우산꽂이에 비닐우산 하나가 꽂혀 있는 걸 보았지만 며느리가 마음 써준 성의가 대견해서 챙겨준 우산을 들고 나섰다. 누구나 신접살림 때는 다 그렇듯 며느리의 살림도 허름한 것이 없다. 그러니 며느리의 물건을 빌려 쓰는 것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혹시 바람에 우산살을 부러뜨릴까 걱정, 전차에 두고 내릴까도 신경이 쓰였다. 내가 전차를 타려고 홈에 들어섰을 때는 전차가 막 떠난 후라서 프랫홈은 텅 비어 있었다. 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의자 등받이에 걸린 우산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유명패션 메이커의 우산이다. 근처에 사람이 없으니 누군가 걸어놓은 채 잊고 간 것 같다. 들고 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값 비싼 우산이라 욕심내는 것은 아니다. 며느리 우산을 빌려 쓴 것이 신경 쓰이는 탓이라고 애써 합리화한다. 흑심을 털어내려고 다른 의자로 옮겨 앉았어도 저만치 의자에 걸린 우산에 자꾸 눈길이 간다. 굳이 손에서 놓지 않아도 될 작은 우산을 왜 걸어 두었을까? 어쩌면 우산의 주인은 잊고 간 것이 아니라 잊으려고 걸어두고 간 게 아닐까? 우산에 얽힌 인연을 마음에서 놓아 버리려고 일부러 걸어두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젊은 날의 나처럼.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다. 초여름 비가 오는 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멀지않은 친구의 직장으로 찾아갔다. 우리는 각자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든 우산을 보더니 그 사람이 사준 것 아니냐며 친구는 단박에 색다른 우산임을 알아차렸다. 겹으로 된 우산의 안쪽은 하늘색 천이고 바깥쪽은 두꺼운 비닐에 흰색 문양이 프린트 된 보기 드문 우산이다. 점심을 먹으며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면 중등 임용고사를 보겠다는 포부를 이야기 했고, 나는 휴학을 의논해 볼 계획이었으나 차마 꺼내지 못 했다. 헤어질 때, 내 우산을 친구에게 건네주며 바꾸자고 했다. 친구는 펄쩍 뛰었지만 나는 그녀의 검정우산을 빼앗아 쓰고 빗길을 뛰었다.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은 것처럼 친구도 우산을 바꾸어 간 이유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자신의 사물함 구석에 세워두었으니 언제든 찾아가라고 했다. 결혼 적령기다. 주위의 친구들은 반려를 정했거나 탐색중이다. 하지만 그녀나 나는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저녁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느라 늘 허둥댔다. 남보다 먼저 책상 위를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일어서야 하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장학금을 받아 학비 부담을 덜자는 다짐은 짓누르는 무게만 보탰다. 세상을 다 끌어안을 것 같은 포부와 젊음이 있는 나이지만 직장과 학교에 묶인 이중생활은 늘 피곤하고 버거웠다. 무엇을 위하여, 어디로 향해 달리는 길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볼만큼 떠밀려 가고 있었다.
다른 데에 눈 돌릴 여유가 있을 리 없는데 비가 오면 우산을 사서 건네주고, 추우면 목도리를 사주며 내 주위를 빙빙 도는 사람이 있었다. 친구들이 ‘연인인가’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싶은데 의자를 내주며 손짓을 하니 마음이 끌렸다 직장과 학교, 맨몸으로 맞는 빗줄기를 피해 우산 속으로 들어서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거리를 좁혀왔다. 나는 엉거주춤 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친구가 펼쳐 보인 포부는 포기하려는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우산을 억지로 떠맡긴 이유가 되었다. 거리를 두고 신중하게 생각 하기로 했다. 우산은 그녀의 사물함에서 우기(雨期)를 보냈고, 내 주위를 빙빙 돌던 그 사람의 모습도 차차 안 보였다. 슬그머니 다가왔던 것처럼 말없이 돌아서 멀어져갔다. 그 후 우산은 어찌되었는지 기억에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스스로 갈등을 다스리는 방법은 거리 두고 시간 벌기다. 빨리 결정하고 신속히 행동에 옮기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보면 답답한 해결 방법이다. 그렇지만 저만치 거리를 두고 비켜서서 내 마음의 기울기를 신중히 가늠해 보는 것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 방법이
라고 생각한다. 전차 플랫홈 의자에 걸렸던 누군가의 우산이 삼십여 년 전 나의 기억 속 우산을 불러 왔다. 이십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전차는 아카바네역으로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 우산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 시간 거슬러 올라가 기억 속을 헤맨 줄 모르는 빗물은 여전히 차창에 사선을 긋는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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