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진상조사라도 해야할 것 이니냐?물음에 "리스트 신빙성 없다"

사익을 위해 권력자에게 금품을 비밀리에 주는 일이나 직권을 이용해 편의를 봐달라는 뜻으로 주는 부정한 금품이 뇌물(賂物)이다. 공정한 경쟁을 제한할 수 밖에 없는 ‘뇌물’은 반(反)자본주의 성격이 짙어 공직자들은 작은 권력도 이권으로 생각해 제 손으론 못 놓는다는 속성을 지닌다. 자유경쟁을 제한할 수 밖에 없눈 ‘뇌물’은 올바른 행동을 막아 관행으로 자리잡을 땐 그 조직은 서서히 병들어 간다. 극복하는 방법은 제도개선과 함께 ‘인간다움의 정신이 회복해돼야만 하나 지금 거제시에는 그 어떤 징후도 없으니 기찰 노릇이다.  

 지고지순한 계율로 이루어졌다는 성서엔 재판관이나 관리가 뇌물을 취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뇌물을 받음으로써 정의를 굽어지게 한 지배자들은 비난 받았다. 그러나 누대에 걸친 역사 속에서 '뇌물은 출세의 방법이요, 대적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묘책'으로 생각되었다

 연이어 터지는 거제시 공무원 비리사건을 접할 때마다 공무원은 물론이고 市의 공적 업무가 시민을 실망시킨다. 실망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공무원 비리사건에 대해 빙산의 일각만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인식까지 폭이 넓어지고 면역성이 생긴다. 다행히 안걸리면 그만인 일들은 없을까. 좋지 못한 이 타성은 같은 솟밥을 먹게 되는 많은 선량한 공무원들을 좌절케 했고 때론 의식화 시키기도 한다.

 공무원의 사기와 공직기강을 바로하기 위해서는 검·경의 발본색원 의지와 엄정한 법 집행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또 자체 감찰기능도 중요한 몫이다. 기강해이나 도덕성 상실은 결국 전체가 파멸해, 국가는 온존하기 어렵고 도태되기 일수 였다. 패망 베트남이나 로마제국과 같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거제시청 공무원 수뢰사건은 수뢰의 규모를 떠나 30여 명의 공무원이 관련 혐의가 있고 관행처럼 범죄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또 수단의 교묘함이 놀랍다. 검찰의 1차 발표에도 '온갖 비리의 백화점'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자정능력으로 공직내부에서 개선을 찾기 위해 불거진 것이 아니고, 사업체 내부 갈등으로 그 전모가 알려져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수사 단초가 됐다.  국민권익위에 제보한 당사자가 회삿돈 횡령으로 고소당해 수감되어 있다고 해서 그의 고발성 리스트를 신뢰도 운운하며 외면해선 안되는데 거제시는 이를 애써 외면하는 형국이다. 자체 진상조사 필요성도 없다니까.

 수뢰 금액이 적게 적시됐다는 점과 30여 명의 연루 의혹자 중 불과 3명만 처벌 받은 것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때는 제대로 조사됐을까 의구심도 생기나 속사정은 알 수가 없다. 제보자는 지난해 1차 조사를 받고 난 후 2차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요청에 따라 세밀하게 수뢰 사실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30여 명의 연루자가 적어도 1백만 원 이상 수뢰했고, 일부는 룸살롱 등에서 접대를 받았으며 계약 성사 보상성 회식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수뢰 행위가 수의계약을 따려고 대를 이어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최종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수의계약 관련 관행은 이번 사건에서 뿐만 아니다. 골프접대 및 외제차 구입대금 대납이며 해외여행비 제공 등 대담해져 가는데 별일 아니라며 간과한다면 거제시는 정말 희망이 없다. 청렴은 교육장이나 공문에서만 필요할 뿐.

뇌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매우 개인적 차원에서 접근한다. 즉 뇌물을 받고 일을 불공정하게 처리한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므로 그 사람을 감옥에 집어 넣으면 해결된다는 식이다.그런데 실제로 처벌받는 사례가 언론에 계속 보도되는데도 왜 그런 사건이 연속될까? 왜 위험을 무릅쓰고 뇌물을 주고받는 것일까? 뇌물이 필요한 이유는 담당 공무원이나 업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담당자가 바뀌면 전임자와는 딴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나 예전엔 관공서에 서류 하나 떼는데도 차별이 있었다.  '뭔가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늦게 와도 서류 발급이 가능해도 일반인들은 애간장을 태웠다. 그러니 '억울하면 출세'하든지, 아니면 어떻게든 '담당자와 친해야' 일이 잘 진행되었다. 담당자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자주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하고, 그때 빈손으로 가기 어려우니 선물을 주거나, 명절 선물은 물론이고 나중에 급한 현안엔 현금도 주었다. 이처럼 뇌물이 오가는 사회 풍토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데 이것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하면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원인은 바로 법이 법대로 집행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법대로 된다면 누가 굳이 담당자와 친해지려 하겠는가? 법에 정해진 대로 준비해 가기만 한다면,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뇌물'이라는 단어는 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 법이 잘못되었거나 애매해 제대로 집행되지 않기 때문에 주고받은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일수록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법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그래서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은 사법국가(司法國家)의 특성을 나타낸다. 자기의 권리, 나아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리가 향상되어야겠지만, 넓게 보면 우리사회가 법치로 바로 서야한다. 구린게 없는 행정을 지나치게 고집해 융통성조차 막아선 안돼지만 법을 초월한 반대급부나 치부수단은 금물이어야 한다.

권력이나 폭력은 ‘악마적 속성’을 갖기 마련이다. “권력과 그 수단으로서의 폭력에 몸담은 사람은 ‘악마적 힘’과 결탁한다”고 막스베버가 지적했다. 권력에 중독되면 사람까지 바뀐다고 한다. 권력에 취하면 뇌의 특정 뉴런이 활성화되지 않는 등 뇌가 변하고 그 결과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호르몬이 변화한다는 뇌과학의 연구 결과도 있다.  잇따르는 불상사에 대해 “고름을 다 짜내야지만 상처에 반창고만 붙여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데만 열중"해선 안된다.

조선시대에도 각종 뇌물은 있었다.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뇌물에 관한 사건은 일벌백계로 다스렸다. 뇌물사건에 연루되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관리 등용의 길이 막혔다. 세종때 명승 황희도 영의정일 때 뇌물사건 투서가 들어오자 비록 무고였어도 사직을 청했을 정도였고, 역시 세종때의 대사헌 윤형은 임금에게 올린 글에서 ‘악한 것은 장오(贓汚)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장오란 뇌물을 포함해 관리가 백성들의 것을 가로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뇌물은 근절되지 않았다. 사헌부 등의 감찰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뇌물이 오갔고, 조선 후기에는 관직 매매까지 가능해지면서 더욱 성행했다. 암행어사들도 수령들의 비리에 중앙관료와의 결탁, 뇌물에 대한 것을 조사했지만, 실제로 중앙고위관료와 연루된 경우 밝힌다 하더라도 고발이 쉽지 않았다.

과다한 뇌물의 유혹이 빠지다 보면 실력에 기반을 둔 공정한 경쟁은 없어지고 연쇄 고리만 잔존한다. 상대가 뇌물을 주면 자신은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 결국 모두 뇌물을 주는 현상이 발생한다.

정부가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으로 ▲함께하는 청렴 ▲깨끗한 공직사회 ▲투명한 경영환경 ▲실천하는 청렴 등 4대 전략분야 50개 과제를 담았지만 이런 구호는 공문에서나 교육장에서 필요한 것일 뿐 삶의 현장에서 외면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선거가 앞닥아 왔다. 광역단체장을 비롯 시장, 시.도의원들이 제 각각 시민을 위한 봉사를 외치니까 진정 새술 새부대에 담는 거제시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쌓인 미세먼지까지 깨끗하게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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