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과 나

                                                                                                        이 정 순

거미라는 말 속에는 거미줄의 영상이 먼저 떠오른다. 아무렇게나 엉킨 것 같으면서도 그 줄은 포개지는 법 없이 질서 정연한 간격으로 독특한 문양을 이루고 있다. 천지 분간 모르는 날 벌레가 그 줄에 걸려들면 영락없이 빠져 나가지 못하는 구조다. 그들만이 만든 절묘한 함정에 스스로 자진해서 들어오도록 만들어 놓았다. 튼튼한 줄도 아니고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빈틈없는 구조가 아니다. 가는 줄이라 약할 법도 한데 외유내강의 강한 최면이다.

일이 묘하게 꼬여 밤잠을 설치고 고통 받다가 거미줄에 걸리는 날이 있다.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과 상관없이 아침이 밝아왔을 때 이 정직한 세상 이치로 알 수 없는 슬픔에 소리 내지 못하는 항변이 있다. 잡념들이 머리를 채우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도저히 저장되지 않는 고통의 시간을 견딘다. 그런 밤이면 나를 가두는 거미줄만 밤을 새워 치고 있었던 게다. 이상과 현실을 오르내리며 지나온 길이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잊어 가는 것이라는 글귀를 책에서 만나고도 그 말이 의지되지 않는다. 잘 사는 법은 배포를 갖는 것이라는 글귀 역시 나와는 무관했다.

이렇듯 산다는 게 수시로 나무처럼 외롭다. 쉬운 길만 길이 아니라는 건 안다. 어떤 돌파구를 찾다가 길을 제대로 잃고 나면 끝을 짐작할 수조차 없지 않던가. 정서적 무게 중심마저도 나쁜 목적에 흔들려 휘청거리다가 거미줄에 걸리고 만다. 걱정과 염려가 더러 멀어진 것 같다가도 나를 바짝 에워싸 버린다. 그런 날이면 빼도 박도 못하고 걸린다.

이럴 때면 나 스스로 외부와의 연결 고리를 차단하게 된다. 마주 앉은 사람과 눈길을 나누면서도 소통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물며 불빛 하나 의지하고 사각 공간에 정성을 쏟으며 이게 더 진실하다고 착각하는 게 과연 맞는가. 손가락으로 말하며 애정이나 책임감 없는 대화가 얼마든지 가능한 이 작은 세상에 우린 얼마나 많은 걸 의지하는 외로운 정서들인가. 거미줄에 걸리듯이 묘한 공간이 더 익숙해지며 모르는 사람끼리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자판기만 두드리는 거미줄 같은 세상이다. 

살아오면서 흔히 겪는 고통도 어떤 이에게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가 되어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하고 다 분출 시키지 못한 분노로 인하여 스스로 거미줄에 뛰어 드는 극단적인 선택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가늘디가는 거미줄이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굵은 동아줄로 변한다.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견디고 극복하는 자 만이 갖는 희열이란 귀하고도 고결하다. 스스로 성숙 시키지 못한 내 안의 통증을 되짚고 분석하며 거미줄로 뛰어 들기보다 미흡하나마 글을 쓰는 나도 귀한 존재로 남고 싶다. 속살을 보일 수 있는 것도 용기라고 다독이며 타인의 아픔에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 후에 오는 작은 성취욕은 미미하지만 행복하다. 잠시나마 순수한 기운을 받을 수 있고 나와의 타협도 할 수 있으니 만족한다. 문학의 길을 평생 걸어간다 할지라도 내 작은 깜냥으로 서투르긴 매 마찬가지다. 그러나 양심의 알리바이가 모여 내 작은 역사를 이룰 것이라 믿기에 나는 오늘도 서툰 글 작업을 멈출 수 없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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