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수필가/이승철

서민 대중이 부르는 민요를 찾아 영산 구계리로 가는 길이다.

석양 노을이 붉게 타는 고속 도로 위로 차는 신나게 달린다. 영화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산야의 풍경은 아름답다.  변덕 많은 여름 날씨는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 하드니 소나기가 한줄기 내린다. 불볕으로 달구어 놓았던 아스팔트는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비로 씻은 녹음 위로 솟아오르는 뭉게 구름은 목화송이처럼 탐스럽다. 동쪽 하늘가에 길게 뻗어 있는 쌍 무지개는 환상적이다. 변화 무상한 자연의 신비에 도취되어 먼 하늘가에 마음과 눈이 머물고 있었다.

어느 사이에 차는 영산 땅에 들어섰다. 사거리를 돌아 시내를 벗어났다. 여기서부터 구계리 까지는 비포장 도로다.

그녀의 운전 솜씨는 능숙하다. 굴곡진 도로를 곡예를 하듯 요철을 피하며 달린다.
 “창문을 열까요? 자연 바람이 더 시원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동감을 한 듯 창문을 내린다.  하늘 물로 씻어 놓은 산야는 싱그럽다. 그녀의 화장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온다.  “ 옥 원장님 오늘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우리의 앞길에 이런 행복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노력해 봅시다.” 한다. 방긋이 웃는 얼굴이 무지개 보다 더 아름다웠다. 조강지처와 사별한 나는 그녀와 재혼 관계로 교재 중이다. 무용 학원을 하는 그녀는 민속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서로 통했다. 

구계리는 영산의 동북쪽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다. 일출봉이 겹겹이 감싸고 있다. 마을 입구는 호리병 같이 좁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넓은 평지가 나온다. 둥근 평지 산록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고 중심지에 마을 회관을 비롯한 상점들과 농가 몇 집이 모여 있다.

일찍 도착한 일행들이 마을 회관에 민요 자랑 대회 행사 준비를 해 놓고 윗마을에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가고 없다. 문 앞 벽에 민박집  약도를 그려 놓았다. 들길을 걸어가는 희미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바쁜 거름으로 뒤쫓아갔다.

전통 기와집의 사랑채 마루에는 둥근 판 두개에 저녁 준비가 되어있다. 열무 김치를 비롯하여 채소로 만든 푸짐한 음식에 농주가 있어서 풋고추 안주에 두어 사발 마시고 나니 취기가 오른다. 고향집에 온 듯 포근하고 모심기 민요 한가락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큰 소리로 불러 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저녁 식사후 마을 회관에서 장기 자랑 할 때 부르기 위해서다.
 옥 여사도  기분이 좋은지 농주 한 사발을 비운다.  마음 푹 놓고 있는 모습이 시골의 맏며느리 같이 보인다.  “술맛이 어때요” “너무 좋아요 이런 재미로 농사를 짖는가 바요” 그녀는 시골이 좋은 양이다.

마을 회관에는 마을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열 이렛날 달이 가마봉 위로 치솟아 달빛은 교교(皎皎)하다. 은하의 물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어디선가 바람 한 자락이 버들 숲을 흔들고 있다. 개구리의 합창 소리는 앙증맞게 들린다. 농촌은 고된 일을 하면서 이런 재미로 사는가 보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오늘 같이 좋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처음 만난 시골 사람들은 고향 사람처럼 정이 갔다. 마을 사람들과 우리 일행은 참외와 수박을 나누어 먹으며 정담이 오고 갔고 막걸리 몇 잔에 취흥이 오르자 민요 가락이 절로 흘러나온다. 모두가 어울려 등실 등실 춤을 추면 합창도 하고 징 꽹과리에 흥이 무르익었다.
 구계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농요를 비롯한 타령 등 다양한 노래가 잘 전래되고 있었다. 특히 산에 올라 나무 할 때나 풀을 뜯고 할 때 부르는 어산영(於山詠)노래는 애절하다.

‘어떤  사람 팔자가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부귀 영화를 누리는데
  우리 농부 팔자가 나빠

지게 목발 뚜드린다’ 우후후 에에이 하며 길게 빼는 소리는 처량하고 애절하다. 농사 짖고 사는 사람들의 신세 타령 같기도 하다. 마음껏 소리내어 목청을 길게 뽑아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한을 달래는 이 노래는 민초들의 생활과 한을 풀어 주는 대표적인 노래다.

농요 중에서 모심기 노래는 서정적인 곡인 반면 보리타작을 하는 노래는 흥겹고 힘이 절로 솟아난다. 나는 모심기 노래를 불러 인기를 얻었고 그녀는 덩더꿍 춤을 추어 박수 갈채를 받았다.  

민요는 언어 문화의 기반을 이루어 온  민중의 노래다 이런 노래는 민족적  집단의 노래로 정신문화와 생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 흐름은 민족의 이동과 삶의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역사를 노래했고, 생활을 노래했고, 한을 노래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언제 어디서나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다.

그리고 민중의 생활 감정을 반영시킨 노래다. 곡에 따라 부르니 음악이요 가사가 있으니 문학이며 흥겨워 율동을 하니 무용이다. 민중 속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오래 동안 전해 오면서 다듬어지고 변형되어  우리의 생활 속에 서민의 감정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한 노래다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감상에 젖을 수 있다. 각박한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과 뜻 되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가슴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 한가락 부르면 만사 형통 하는 기분이다.

밤을 세우며 민요를 부르고 춤추며 놀았다. 여름밤은 짧았다. 아침 안개가 병풍처럼 둘려 쳐진 평화스런 마을을 뒤로하고 냇물 따라 호리병 같은 마을을 벗어났다.
 지난밤의 즐거운 추억이 뭉게 구름 처럼 피어오른다. 

거제타임라인  webmaster@gjtline.kr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