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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승철] 황칠(黃漆) 나무를 발견하던 날이승철:시인/수필가/향토사학자

봄부터 가뭄이 계속되었다. 5월은 이상 기온 현상으로 37도의 더운 날씨 이변이 일어났다. 이런 때에 문화재 전문위원이신 김 삼식  교수가 섬에서 자생하는 자연 생태계 조사차 거제에 왔다. 김 교수와는 공직에 있을 때  문화재 업무 관계로 오래 전부터 교분을 갖고 있었다. 

첫날은 계룡산과 구천 계곡, 자연 휴양림을 둘러보고 우리 집 객실(桂月堂)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사랑방 같은 객실이 여관 보다 정감이 간다며 지난 이야기와 해금강 답사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아침 일찍 집사람이 준비해 준 도시락과 음료수, 물, 과실 등을 배낭에 넣고 해금강 선착장에 도착했다. 해돋이 관광을 나갔던 사람들이 유람선에서 내린다. 오늘 아침의 일출은 너무 좋았다며 기뻐한다.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유람선 선장이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리다 못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보니 감기 몸살로 꼼짝을 못한다고 한다. 아무 대책도 없이 약속을 어겨 모처럼 세운 계획이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간은 흐른다. 다음에 오자며 돌아가자는 김 교수 보기가 민망했다. 해금강은 배가 없이는 갈 수 없다. 낚시선 이라도 있으면 이용하려고 하였으나 물 때 따라 태공들이 타고 나가고 빈배는 없다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고 관광회사 김 총무가 유람선으로 해금강 섬에 건네다 준다.

갈곶리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해금강은 1971년 명승2호로 지정된 바위섬이다. 동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물위에 솟아 있고 온갖 모양을 한 바위들은 만물상 같다. 서쪽은 바위산 중허리부터 푸른 숲이 우거져 있다. 우리가 오를 곳이 이곳이다. 해발 123m의 낮은 섬이기 때문에 싶게 보고 달려들었다가 낭패를 당할 뻔했다. 바위로 된 섬은 경사가 급하고 험하다. 어느 곳으로 오르는 것이 가장 쉬울까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길은 없고  모두가 절벽이다. 몇 해전까지는 이 섬에 서너번 답사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어렵게 생각하지를 않았다. 어쩐지 자신이 없다. 그것은 아마 나이 탓인 듯 하다. 김 교수가 앞장서서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장갑도 준비 못했기 때문에 맨손으로 거친 바위를 잡고 올라야 했다.

손끝이 피가 난다. 한 손 놓치던지 발을 잘못 디디면 용궁 행이거나 바윗돌에 부딪혀 박살이 난다. 실수는 죽음이다. 중간 지점에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하고 바윗돌에 매달려 공포에 떨고 있었다. 안전 장비도 없이 무모하게 섬을 오른 다는 것이 잘못 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때는 늦었다. 등에 짊어진 도시락과 물병, 카메라가 천근 같이 무겁게 느껴진다. 손을 놓으면 죽는다.  입이 바싹바싹 탄다. 안간힘을 다하여 아찔아찔한 순간을 넘기면서 바위틈을 기어오르니 숲이 나온다. 여기서는 나무를 잡고 오를 수 있다.

숲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산 같으면 123m는 단숨에 올라갈 거리인데 여기는 급경사에 바위 위에 가랑잎이 덮여 있어서 잘못 하다가는 천길 낭떠러지로 미끄럼틀 타고 내리는 꼴이 된다. 나무를 잡고 잠깐 쉬었다. 여기서부터 내가 지고 왔던 배낭을 김 교수가 멨다. 한 모금의 시원한 물맛에 힘이 솟는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위는 숲 속에서도 한증막 같았다. 카메라가 온통 땀에 젖어 촬영이 어려울 정도다. 

어두운 숲 속을 비집고 다니면서 이 섬에서 자생하고 있는 특이한 수종을 찾고 있었다. 해금강에서 자생한 삼지닥나무, 층층나무, 모람나무 등 잡목 군총이 하늘을 뒤덮었다. 8부 능선쯤 올라갔을 때  앞서가던 김 교수가 황칠 나무를 발견했다며 좋아한다. 직경이 20cm 정도 되어 보인다. 이 정도 자라는데   70년은 걸린다고 한다. 희귀한 나무를 보는 순간 조금 전의 고생은 간 곳 없고 기운이 절로 솟아난다. 주위에  그와 같은 작은 나무가 몇 그루 보인다. 사진을 찍고 정상 쪽으로 오르니 성목(成木)이 10여 그루 있고 주위는 어린 나무들이 수없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섬에 수백 그루의 황칠 나무가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얼마 전에 방송에서 전남의 어느 무인도에 몇 그루가 있다는 것을 본적이 있다.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많은 량이 분포하고 있어서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자생하는 곳으로 생각된다. 오늘의 답사는 의외로 많은 성과를 올렸다. 황칠 나무와 삼지닥나무의 자생지란 데서  천연적인 숲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칠 나무는 두릅과에 속하는 상록 활엽 교목으로 키는 6-7m정도 자라고 줄기는 황백색으로 반더러 하다. 잎은 세 갈래 또는 다섯 갈래로 깊이 째져 있고 여름에 꽃이 피어 10월에 까맣게 열매를 맺는다. 나무 껍질에서 나오는 액을 채취하여 도료로 사용한다. 색이 황금색과 같이 아름답고 윤이 난다. 예전에는 일반 가정에서는 사용하지 못한다.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귀중한 황칠 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옻칠 나무는 낙엽 교목으로 키가 작고 줄기는 붉은 색이다. 껍질에서 채취한 액을 옻칠이라 하는데 색이 검다. 오래가면 검붉은 색이 나온다. 나무그릇을 비롯하여 장식품과 오래 보관을 필요로 하는 물건에 사용하는 도료다. 또한 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성질은 따뜻하고 맵다. 어혈을 풀어 주고 속알이병 등에 사용되고 있다. 독이 있어서 나무 가까이 가도 옻이 오른다. 반면 황칠 나무는 독성이 많지 않다. 빛깔이 황금색 같이 아름답다. 이 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남의 해안도서 지방과 경남의 해안 지방에서 가끔볼 수 있는 희귀목 이다. 옻칠은 쇠라면 황칠은 황금으로 비유할 정도다.

석유에서 질 좋은 도료가 나오지만 천연적이 황칠과 같은 도료는 없다. 이 나무가 많이 발견됨으로 해서 왕실에서 독점 사용했던 귀한 황칠을 사용할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갖는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황칠로 만들어진 옷장을 만들어 사랑하는 님의 방에 두고 싶다.

무더운 여름날 여러 곳의 산과 섬을 조사하느라 몸살 감기로 한달간 고생을 했다. 그 고생만큼 결과는 좋았다. 황칠 나무를 비롯하여 섬에서 자생하는 특이한 수종을 발견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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