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계룡수필
[수필: 이양주] 그리움의 자리이양주-수필가/계룡수필회원/수필과비평작가회 회원/눌산문예교실 수료

                                                    그리움의 자리

                                                                                                           이 양 주

해가 지면 외롭단다. 달이 뜨면 그립단다. 어쩔 수 없는 외로움 그리움이란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단다. 아내인 내가 곁에 있어 덜어주고 채워 주긴 하지만 이 세상 올 때부터 가져온 것이라 어쩔 수 없단다. 섭섭해 하지 말란다. 이럴 땐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단다.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는 그가 고맙다. 그 맘을 알 것 같다. 나도 그와 비슷한 속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세상사람 모두 비슷한 외로움과 그리움을 지니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보름달이 허공에 홀로 떠 있다. 다 채웠지만, 다시 비워야 할 것을 아는 얼굴이다.  어쩌면 달도 그리움 때문에 뜨고 지는 게 아닐까. 달이 자꾸 부르는 것 같다.

시어른 두 분을 모셔놓은 공원묘지의 언덕을 오른다. 혼자라면 이 밤에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가 함께 있기에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은 훤하다. 공원묘지가 있는 같은 도시에 살 때, 주말에 특별한 계획이 없을 때는 소풍 겸 찾아와 수없이 걷던 길이다.

공원묘지는 아름다운 자연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외국의 추모공원은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문화공간으로 인식되어 있어 아이들이 단체로 또는 가족 단위로 소풍 겸 방문한다고 한다. 육체와 영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짚어보게 하는 교육의 장소로 삼는 게 아닌가 싶다.

공원묘지는 사시사철 화려한 꽃들로 그야말로 꽃동산을 이룬다. 고인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조화를 바치는 심경은 어떤 것일까. 나는 자주 드나들면서 그 꽃들도 시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 처음 주소를 둘 때 화려한 봉분과 장식물로 생전의 영광을 자랑하던 무덤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고 산 자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면서 잡초가 우거지고, 잊혀가는 서러운 자의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것을 보았다. 고인을 기억하고 찾는 걸음 수에 비례해서 꽃의 빛은 바래어 시들어 가고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묘지엔 여러 풍경이 있다. 가끔은 젊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한적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수많은 묘지 앞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확인하는 연인들이라면 순간적이 아닌 영원한 사랑을 함께 꿈꾸고 기약할 수 있는 사이일 것이다.

남편은 늦깎이로 결혼했다. 부모님이 떠나실 때 혼자여서 편히 눈을 감지 못하시게 한 불효를 했다고 생각하였는지, 남편은 결혼 초부터 이곳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산소에 오면 우리는 먼저 잡초를 뽑고 잔디를 고르고 심어놓은 두 그루 향나무를 전지한다. 남편은 부지런한 아버님께선 동네 골목 청소를 도맡아 하셨다며 산소 주변과 앞길을 정리한다. 생전에 따뜻한 밥 한 그릇 못 올려 드린 며느리인지라 두 분 산소 손질은 내가 나선다. 겹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남편은 떨어진 꽃잎들을 가득 담고 와 무덤에 꽃 이불을 덮어드렸다. 옛집 마당 가득 넘치던 치자 향을 옮겨 드리고 싶다며 치자나무를 심기도 했지만, 뿌리를 내리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산소 손질이 끝나면 향을 피우고 맑은 녹차를 고운 찻잔에 부어드린다. 남편은 두 분이 내 노래를 좋아하실 거라며 한 곡조 뽑으라고 한다. 

나는 산소에 오면 봉분의 곡선이 어머니의 젖가슴 같아서 쓸쓸하면서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하늘은 열려 있다. 구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바람이 다녀가나 자취 없다. 노래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허공에 소리를 놓는다. 듣고 계십니까.  

가까운 묘원에 누워 있는 먼저 간 친구의 묘를 남편은 찾기도 한다. 근처에 시인의 묘가 있어 내게는 또 다른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친구의 묘는 어머니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죽어서도 어머니와 함께 누워 있는 그가 부럽다. 남편이 친구랑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시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돌아선 하늘 아래 산도  들도 나무도 풀도 꿈결처럼 홀로서 가고 하염없는 설움 이끼에 묻고 가랑비 맞으며 말없이 서 있노라’ 던 시인의 심경을 함께 한다.

아까 저녁 앞장섰던 달이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아무도 쳐다보지도 말 걸어 주지도 않는 외로운 이에게 달은 유일한 위안일 수 있다. 어둠은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은 자, 남은 자와 사라진 자의 분별을 없앤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달이 은은한 빛으로 세상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달빛이 어둠 속에서 가르는 세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모든 것이 하나로 편안하게 녹아드는 느낌이다. 사방이 고요하다. 달빛을 받으며 누워 있는 자들에게서 평화로운 침묵이 흐른다. 우주의 침묵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언젠가는 우리도 이들과 같이 침묵하며 영원히 누우리라. 

남편이 가만히 내 손을 잡는다. 고맙고 미안하단다. 미안하다는 말에 마음이 머문다. 그가 내 그리움을 헤아리는 까닭이리라. 우리 어머니는 한 줌 재로 강물에 흘러가셨기에 보고 싶어도 찾아갈 곳 하나 없는 내 마음의 오래된 빈자리를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삶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찾아 그 의미를 물어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것에 본질이 있음을 찾아야 한다고. 아무 곳에도 흔적이 남지 않았기에 허망한 기대도 집착도 버릴 수 있었기에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답니다. 당신이 그리움을 확인하는 자리가 작은 평수의 이곳이라면 우리 어머니는 제 마음 가는 곳이면 어디든 계신답니다.

나도 남편의 손을 꼭 쥔다. 그리움이 맺어준 사이다. 그리움이 있어 서로를 꿈꾸고 사랑하며 삶을 아름답게 이어가게 되는 게 아닐까. 그리움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리고 이후로도 기억하는 자에 의해 계속될 것이다. 저 달은 우리가 가고도 더 오래도록 남아 수많은 그리움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약력]

* 한국문인협회 회원

*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 < 2014 젊은 수필 >로 선정

* 제 8호 인간문화재 이수자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정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