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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36] '균형잡기'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균 형 잡 기
                                                          심 인 자

 

 리모컨을 찾는다. 습관적이다. 잠에서 깨자마자 나의 손은 머리맡을 더듬는 것으로 시작된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작동한다. 화면 밑의 자막을 재빨리 읽어나간다. 새로운 소식은 없는지. 혹여 밤사이 사건사고가 터지지는 않았는지. 날씨 등을 확인하고 나면 다시 리모컨에 눈길을 준다.
   ‘그래, 오늘도 잡는 거야.’
  느슨해진 근육에 힘을 가한다.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다. 유독 가운뎃손가락 이 뻣뻣하게 굳어 있어 느낌이 좋지 않다.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시선을 모은다. 조심스레 가운뎃손가락에 리모컨을 올려놓는다. 기우뚱거리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열 번 넘게 반복하고서야 겨우 손가락에 리모컨을 얹었다.
   단번에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기분이 최상이다. 그간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네댓 번이면 되었는데 오늘따라 흔들림이 심해 번번이 떨어지고 만다. 은근히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근육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서라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매일 아침 리모컨과 씨름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손등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러다 무심코 가운뎃손가락에 리모컨을 올리게 되었다. 얹자마자 떨어져버렸다. 될 때까지 해보겠다는 마음에 떨어지면 올리기를 반복했다. 쏠리는 반대쪽으로 미세할 만큼 옮겼는데 또 기운다. 마침내 균형이 잡히는 것 같더니 한 점 미동도 없이 멈췄다.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다. 성취감마저 든다.
   참 어려운 거구나. 여러 번의 반복과 집중이 아니고서는 단번에 해내기가 쉽지 않구나. 그 때부터 아침이면 수도하는 도인처럼 리모컨 균형 잡기에 몰입했다. 이 동작은 들깬 잠으로 멍해 있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집중력을 단련시키는 한 방법이 되었다. 처음에는 손가락만 움직였다. 그러다 차츰 마음으로 옮아갔다. 정신이 한 곳으로 모아지면서 리모컨은 묘기를 부리듯 치우침 없이 수평이 되었다.
   어떤 일에든 나름의 균형이 있다. 그것을 깨뜨리지 않으려 애쓴다. 균형 잡기는 리모컨에 눈을 모으기보다 손가락에 집중해야 함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기우는 반대쪽으로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한 쪽으로 기울까봐 당황하다보면 오히려 리모컨의 요동은 극에 달한다. 눈에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 아주 작은 움직임만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이쪽저쪽 다 낭패를 본다. 균형을 잡기는커녕 양쪽 다 오르락내리락하다 불시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한쪽은 올라가거나 그 자리에서 이탈하려하기 때문이다. 거르지 않고 매일 해오는 동작이지만, 어떤 날은 단번에 또 어떤 날은 수도 없이 손가락에서 미끄러진다.
   리모컨의 무게가 고루 실어져 있다면 그나마 균형 잡기는 수월할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리 봐도 똑같은데 한쪽이 조금 더 무겁다. 거의 엇비슷해서 세심하지 않으면 맞추기가 힘들다. 아마도 속에 든 부품의 무게 차이 때문이겠지. 채널이나 음량을 조절하는 부분보다 쓰임이 다양한 숫자 버턴 쪽이 조금 더 무겁다. 그래서 손가락 위치는 리모컨의 정중앙을 약간 비켜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젠 어느 정도 아이들의 속마음을 읽는다. 딴전부리며 교재를 저만치 밀어내는 아이에겐 수업시간 십 분을 줄여준다는 방법을 써야지. 무엇 때문인지 저 녀석은 오늘 화가 잔뜩 나 있구나. 요일 순서를 바꿔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는 수업을 해야겠다. 혼내기보단 은근 슬쩍 녀석의 장점을 칭찬하여 스스로 책을 펼치게 해야지. 아이들 개개인의 성격에 맞춰 간지럼을 태우기도 하고, 목소리를 바닥까지 깔고 말없이 가만히 있기도 한다.
   웬만하면 나의 방법이 들어맞아 평화로운 수업이 진행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겁 많고 마음 약해 눈망울이 커지는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다 낭패 본 일, 약간의 으름장이 필요한 녀석을 오히려 어르고 달래다 수업을 망치는 일도 있었다.
   아이들을 똑같은 기준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중심에서 약간 비껴갈지라도 균형에 맞도록 애써야 했는데 말이다. 때로는 한쪽으로 쏠릴 때가 있다. 안쓰러워 유독 정이 갈 때이다.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기운다. 미세한 요동이 인다.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려 집중한다. 다른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움직임이어야 한다. 안 그랬다간 낭패다.
   중심은 어떤 사물의 가운데자리를 찾는 것이다. 난 중심을 잡는 게 아니다. 한 가운데가 아닌 한쪽으로 치우쳤더라도 그에 맞는 균형을 잡고자 함이다. 리모컨 속에 든 여러 가지 부품들의 무게를 일일이 알지 못해 번번이 애를 먹듯 아이들도 그렇다. 속을 다 알았다고 하지만 아니다. 깊은 속은 꼭꼭 숨어 있어 나름 고민하고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야한다. 고만고만한 키에 얼굴도 비슷비슷해서 그 녀석이 그 녀석 같다. 그래서 아이들 전체가 아니라 개개인 하나하나에게 균형을 맞춰줘야 함이다.
   오늘도 치우침 없는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균형 잡기에 몰입한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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