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62]
    '아버지의 봄'  

     김   용  호  

 벚꽃을 바라보며 피는 것가 지는 것가
 차에 타신 아버지 무심한 듯 물어 본다
 모처럼 나들이시라 약간은 들뜨신 듯.

 길가의 벚꽃들은 핀지가 꽤 되어서
 지는 깁니다 아버지 담담하게 나도 대답
 어허야 한마디 하시고 뒷말은 없으셨다.
 
 낙화하는 꽃들과 이제 막 피는 꽃들
 그렇게 연분홍은 차창으로 스쳐가고
 흥겨운 민요가락에 또 한 봄 지고 있다.

 ◎ 어떤 세상사
봄비 치고는 요란하다. 조금 오다 그치겠거니 했는데 3일 달아 내리는 양이 장마 같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지금 날씨까지 이러니 행여 하늘의 노여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안할 걱정을 하게 된다. 언제 상황의 반전이 될련지 마음을 다잡고 지켜 볼 일이다.

중국 어느 시골의 가난한 여자가 수 년 동안 푼푼이 모은 돈으로 채소 씨앗을 사왔다. 그 씨앗은 신품종으로 농가 소득을 높인다는 권장품이었고 가격도 꽤 비쌌다. 기대 속에 정성을 다하여 씨앗을 심었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싹이 돋지 않고 그나마 나온 싹도 채소가 아니라 잡초라서 부푼 기대를 져버렸다. 씨앗은 가짜였다. 분통이 터진 여자는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어 맹독성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죽지 않았다. 마신 농약마저 가짜였던 것이다.

풍란석부작을 비롯하여 돌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다 보니 쓸만한 바닷돌을 구하면 굴 껍질이 문제였다. 굴 껍질 제거에는 염산이 딱이다. 그런데 염산을 구하기가 어렵다. 약국에서 파는 염산은 농도가 약하여 턱도 없다. 공업용 염산이어야 하는데 시골이라 염산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철물점에 주문을 해도 위험 물질이라 운반에 문제가 있다며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근근히 한 말들이 염산을 구할 수 있었는데 원액에 가깝다며 비싼 값을 치루었다.

작업도중 이중으로 된 뚜껑을 열고 한 말들이 염산통을 들었다 놓은 순간 좁은 입구로 솟구친 염산액이 왼쪽 눈을 덮쳤다. 화들짝 놀라 아리는 눈을 감싸 쥐고 십여 미터 앞에 놓은 수반으로 달려갔다. 마침 수반엔 물이 담겨 있었다. 수반에 담긴 물은 제법 오래 담겨있어서 깨끗하지 않았으나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허겁지겁 눈을 씻었다. 실명을 걱정했는데 심하게 아리던 눈의 통증이 차츰 멎으면서 괜찮아졌다.염산은 물에 섞여도 노르스름한 색깔이 변치 않는다. 원액에 가깝다던 그 염산, 철물점 주인이 염산 원액에다 물을 몇 배나 탔는지 농도가 묽어진 탓에 실명을 면했다.전정가위를 자주 사용하는 나는 가위에 대한 불만이 많은 편이다. 새 가위를 얼마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이내 무뎌져 또 새 것을 사야하기 때문이었다.

 가위로 나뭇가지를 자르는 도중 여의치 않아 힘을 주었는데, 가지를 잡은 왼쪽 손가락에 통증이 왔다. 아뿔싸, 나뭇가지를 자른다는 것이 그만 손가락을 자른 것이다. 얼른 손가락을 보니 피가 나지 않았다. 무딘 가위 덕분에 손가락이 멀쩡했다. 나는 종종 염산이며 가위를 떠올리면 고소를 짓는다.
 
뒤척이다 새벽잠이 들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빚쟁이에 시달리다보니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은지 오래다. 망설이다 행여 급한 일인가하여 받고 보니 2479 무쏘 차주냐고 묻는다. 주차 중 차를 긁었다기에 지하 주차장으로 가 보니 1톤 화물차 옆에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부부와 젊은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내 차 무쏘의 뒷 범퍼 부분에 두어 뼘 정도의 긁힌 자국이 하얗게 나 있었다. 뺑소니를 해도 모를 터인데 일부러 전화한 것이 고맙기도 했고 긁힌 부분 말고도 몇 군데 상처가 있기에 괜찮다고 안심을 시키고 돌아섰다. 남의 차를 긁고 쩔쩔매었던 옛날 생각이 났다.
 
        밟으면 잘 나가는 그 이름은 똥차였다
        겉치레는 시간에 뜯겨 내실마저 집어 삼키고
        차가 곧 인생의 등급 허리 꺽어 인사한다.

        앗샘부리 새차의 꿈 흐름한 땟물로 남아
        전신에 스며든 상처 버리면 고물이 된다
        눈뜨고 당하는 수모 이 몰골의 이 행색.
                 -졸시, ‘고물차’, 전문

 다음날 이었다. 전날 차 때문에 전화했던 그 젊은이로부터 전화가 결려왔다. 순간 모르는 번호라 또 망설이다 받고 보니 댁에 계신가 하고 물었다. 왜냐니까 어제 고마움에 과일을 한 상자 준비 했단다. 그냥 넘어 갈 법도 하련만 경우 바른 젊은이 같았다. 그가 가지고 온 참외를 먹으며 이글을 쓴다.세상이 요지경이라지만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이 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발행인

望百을 갓 넘긴 아버지와 육십을 제법 넘긴 아들의 봄나들이 한 때를 3수 연작으로 읊은 시조 작품이 〈아버지의 봄〉이다.

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노트〉를 옮겨본다.
   아버님 모시고 나들이길 생겼다. 
  구십을 넘기신 아버지와 육십을 제법 넘긴 아들.
  봄날의 차창에는 낙화와 이제 피어나는 꽃들로
  화사하게 교차한다.
  민요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나
  흥겨운 민요가락이 차안에 울려 퍼지고 봄날은 간다.
  나도 아버지처럼 이렇게 무던하게 늙어가기를 소망 한다

 차를 타고 아버지와 함께한 봄나들이, 벚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 피는 것가 지는 것가 /하고 무심한 듯 물어 보신다. / 모처럼 나들이시라 약간은 들뜨신 듯 / 하다. 길가의 벚꽃들은 핀지가 오래되어서 / 지는 깁니다 아버지  /하고 / 담담하게 나도 대답 / 했다. 그랬더니 / 어허야 한 마디 하시고 뒷말은 없으셨다. / ‘어허야’ 속엔 낙화의 아쉬움이, 무상함에 대한 감회가 배여 있지 싶다. 차창엔 / 낙화 하는 꽃들과 이제 막 피는 꽃들 /로 해서 연분홍이 스쳐간다. 카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 흥겨운 민요가락에 또한 봄이 지고 있다. / ‘봄이 지고 있다’는 표현이 가고 있다는 표현 보다 서글픔의 농도가 짙어 보인다.차에 오르고 민요가락에 또한 봄이 지고 있는 시간까지는 고작 두어 시간이지 싶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오래 붙잡아 두려는 시인의 마음이 읽혀지기에 〈아버지의 봄〉은  無常의 봄이다.

 시인의 春府丈은 蘭亭 金榮銀선생이시다. 1930년생이니 작년이 望百이다. 34년간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다 1988년에 정년으로 퇴직 하셨다. 선생은 서예에서 혜서와 행서는 일가를 이루었고 세필은 명필로 이름나 있다. 蘭亭선생을 아는 사람은 그를 두고 선비라 입을 모은다. 받은 아호인 蘭亭에 선생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난정은 난초 밭에 지은 정자다.

 누구 염장 지르려고 이런 시조를 선보이는가 하고 시인께 따지고 싶었다. 先親께선 50년 전에 별세 하셨기에 부러워서 였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다섯 가지 福을 오복이라 하는데 그중 네 번째 복이 유호덕(攸好德)이다.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을 말한다. 蘭亭선생은 유호덕이 많은 분이 아닌가 한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이란 말이 있다.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즉 홀아비, 과부, 고아, 늙어서 자식 없는 사람들이다.외롭고 쓸쓸함을 말하는 고독(孤獨)이다. 실제 뜻은 외로울 ‘孤’는 부모 없는 어린아이, 홀로 ‘獨’은 자식 없는 늙은이를 말한다. 또 적을 ‘寡’는 홀어미란 뜻이 있고, 홀아비를 뜻한 ‘鰥’과 합쳐 쓴 ‘환과고독’은 의지 할 데 없는 처지의 사람을 함께 이르는 말이 됐다.

외로이 홀로 됐을 때 돌봐주는 가까운 가족이 없는 것 만큼 더 큰 불행은 없다.외로운 처지의 사람을 이렇게 분류한 사람은 孟子다. 제선왕(齊宣王)이 왕도정치가 어떤 것인지 맹자에게 의견을 구하자 “늙고 아내 없는 이를 홀아비(鰥)라 하고, 늙고 지아비가 없는 이를 과부(寡)라 하고, 늙었지만 부양해 줄 자식이 없는 외로운 사람(獨), 어린데 보살펴 줄 부모가 없는 이를 고아(孤兒)라 합니다. 이들 네 분류의 사람들은 천하에서 가장 곤궁하여 호소할 데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먼저 구출하는 것이 왕도 정치입니다.”라고 답했다. 시조 작품 〈아버지의 봄〉을 감상하면서 올곧은 삶은 복을 누리어 ‘환과고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꼈다.

 蘭亭선생의 백수를 기원 드리며 선생의 회고록 (여든일곱 살 때인 2016년 발행) 중 〈머릿말〉 말미를 옮겨 본다. 세상의 뉴스들은 항상 시끄럽다. 이제 텔레비전을 끄고, 천변에
  있는 독봉산 웰빙공원으로 운동 나갈 시간이다. 나의 자가용인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호주머니엔 비닐봉지와 사탕이 들어 있다. 비 오지 않는 날은 거의 공원 뒤의 솔밭에 가서 혼자 노래를 부른다. 주로 민요다. 기분전환과 가슴의 폐활량 운동을 겸하는 셈이다. 간혹 휴지들이 보이면 가져간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져오기도 하고, 혹시 나에게 인사하는 어린 아이가 있으면 사탕을 준다. 그런 어린이의 어머니에게 아이를 참 잘 가르쳤다는 인사까지 건넨다. 사소한 나의 일상이며, 이렇게 나의 생은 마무리 되는가 싶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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