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기성현지(岐城縣址) 긴급 발굴

 거제도는 삼한시대 변한 12개국 중의 하나였던 두로국(瀆盧國)의 왕도지였다. 677년 상군(裳郡)으로 개칭 하였고, 757년 신라 35대 경덕왕 때 비로소 거제군이라 하였다. 거제군에 3개의 현이 있었다. 아주지역에 아주현, 거제지역에 명진현, 남부지역에 송변현이 있었다. 그 삼현을 통치하던 치소인 거제군이 고현이다. 임진란 때도 고현에 거제현이 있었다. 그 후 983년 고려6대 성종2년에 기성현(岐城縣)이라 하였다. 기성현은 원종 12년 1271년 까지 288년간 둔덕에 치소(治所)를 두었다. 상고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거제도 치소(治所)를 보면 사등과 둔덕 고현 지역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기성현(岐城縣)은 둔덕 거림리에 치소를 두었다. 기성현은 288년간 둔덕에 있었으나 남방에 접해 있는 섬이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거제는 고려시대 151년간 왜구들이 종횡무진 하며 살았던 곳이다. 임진란 후 71년간 통치 부재의 섬이 되기도 했다. 기성현이 있었던 둔덕은 육지와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고, 거제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는 산방산이 동남으로 감 쌓고 우두봉이 북서로 감 쌓고 있다. 두개의 산이 감 쌓고 있는 골짜기는 작은 분지를 형성 하고 있다. 그리고 한려수도의 뱃길이 열려 있는 둔덕만은 통영시와 둔덕이 마주 하고 있다. 서해의 해로를 열어주는 중요한 항구의 관문 역할을 한다. 

산방산 아래로부터  둔덕만까지의 긴 들판은 비옥한 땅과 풍부한 물이 있다. 그리고 거제 쪽으로 간덕과 옥산들이 있으며 고개 너머로 옛 두로국의 왕도지로 알려져 오고 있는 사등의 언양 들이 있다. 농경 시대에는 넓고 비옥한 들이 있고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이 자연 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살 수 있었던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지형적으로 북쪽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따뜻한 양지쪽 고을이다. 육지의 끝 마을인 통영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진주 관영의 통제를 받기가 쉬웠던 곳이기도 했다. 농사지을 땅도 많고 바다에서 생산 되는 풍부한 수산물이 많았기 때문에 거제에서는 살기 좋았던 곳이다. 군사적으로도 요충지다. 사방이 산으로 높이 쌓여 있고 서쪽으로 둔덕만이 열려 있다. 항구는 한산도가 가로 막고 있다. 내해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왜구의 침입이 어렵던 곳이다. 그런 좋은 지형적인 여건 때문에 기성현이 둔덕에 있었다. 기성현이 있을 때는 통영과 고성 일부 까지도 통치하였다고 한다.

가. 긴급 발굴
1995년 겨울부터 둔덕면 거림리 일대에 농경지 정리를 한다는 말을 듣고, 문화재 위원인 동아대 이용현교수와 현장에 갔다. 마침 그때 기성현 동헌지(東軒址)를 도자로 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동헌의 주춧돌이 발견되었다. 경지 정리를 하면, 기성현지가 없어질 것 같았다. 급히 시청으로 돌아와서 긴급 발굴 보고서를 작성하여 조상도 시장의 승인을 받아, 그 지역은 당분간 공사를 중단케 하고, 동아대학 박물관과 발굴 계약을 하였다. 벼농사를 지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발굴을 한다면 모를 심지 못하여 농사를 못 짖게 된다면서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현지에 나가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긴급 발굴을 하겠다고 설득을 하고, 주민들의 협조를 요청 했지만, 짧은 기간에 어찌 발굴이 쉽게 끝나 겠느냐며, 극구 반대를 해서, 내가 주민대표에게 모를 심지 못하면 배상 하겠다는 각서를 써주고 긴급 발굴 허가를 받아서 발굴을 시작 했다.

1996년 4월 6일, 현장에서 둔덕출신 당시 거제시의회 김득수 의장이 개토제를 지내고, 발굴을 시작 하여, 5월 16일 까지, 거림리 274번지 일대를 40일간 동아대학 박물관에서 발굴을 하였다. 발굴 기간 내 비가오지 않고 날씨가 좋아서 무사히 잘 마무리 하였다. 모를 심기 전 까지 발굴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심봉근 동아대학 박물관장과 지도 교수들은 거림 마을 제문근씨집 사랑방 등 다른 집에서 잠을 자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발굴을 했다. 둔덕 지역의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김득수 의장도 현장에 자주 나와서 발굴에 많은 격려와 협조를 했다. 나는 40일간 매일 발굴현장에 출장을 나와서 발굴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협조를 하였다.

나. 발굴 유물
  동아대학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발굴 하고 있던 팀을 급히 이 지역으로 오게 하여 발굴을 했다. 천년이 넘도록 농사를 지어온 땅에서 뭣이 나올 것이란 기대는 첫날부터 무너졌다. 이미 유구가 파손 되고 없었기 때문이다. 삼사일은 헛탕을 쳤다. 조사단은 작업의 편리를 위해서 현지 지형을 고려하여 높은 북쪽에서 낮은 남쪽까지 단계별로 제1,2,3,지구로 나누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일부 잔존하고 있던 표토를 제거하고 지하에서 확인된 유구를 중심으로 다시 제 1지구는 S-F, 제2지구는 G-J 제3지구는 P-O로 구분해서 각각 유구별로 조사를 실시하는 순서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확인된 조사지역의 표토 층은 회청색을 띠는 30cm정도 두께의 경작 층이 있고 그 아래 흑갈색을 띠는 부식토층이 50cm 정도 깔려 있었는데, 유구는 주로 이 흑갈색 부식토층에서 발견 되었다. 그러나 앞에 기록한 것처럼 대부분의 조사대상 지역이 조사 전에 이미 경지 정리 작업으로 걷어 낸 상태 였으며, 도면상에 추즉 층을 구분해서 나타내는 것이 힘들었다. 물론 유구상태는 됫 날 중복된 유구배치와 경작지 개간 등 인위적으로 형질 변경이 이루어진 곳이 많아 원상파악이 어려웠다. 그 특징을 알아 볼 수 있는 지역의 유구와 이곳에서 수집된 유물들은 대부분 신라와 고려시대의 생활용품 들이다.

  발굴 육일쯤 지나서 거림리 신종락씨 논바닥에서 집터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 했다. 집터는 보통 집터 보다 다른 점이 있었다. 축대며  툇마루 터 까지도 완연하다. 그리고 집터 위에 복식으로 지은 흔적이 있었다. 그 집터 중앙 부분에서 고려시대의 토기가 발견 되었다. 이 토기는 무덤에 사용 한 것으로 보인다. 거제시 둔덕면 거림리 274번지 외 4필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고려시대의 청자 편린(靑磁 片鱗)과 와당편린(瓦當片鱗)들이다. 그 내용을 보면 황 녹색을 띤 사발 형 순청자(純靑磁)의 구연부(口緣部 )에는 연화문(蓮花文)이 양각 되어 있다. 색깔이 약간 황색을 띠는 것이 단점이지만 얇은 기벽(器壁)과 성형 기술법은 초기 청자의 특징을 가진 고급스런 것이다. 가로 3.9cm 세로4.1cm의 소형이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은 비취색을 띠는 사발형 청자(靑磁)로 구연부파편(口緣部破片)이다. 형태에 비해 두꺼운 편이나 표면의 유약이 곱게 발라져 있다. 이 청자도 고려초기의 청자로 보여 진다.

이 지역에서 고려시대 초기의 고급 서러운 청자 편린이 많이 출토 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이 고려시대 막강한 힘을 가진 관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기성현(岐城縣)이 있었던 지역으로 기성현이 들어 서기 이전에도 많은 토호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것으로도 보여 진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은 93점이다. 동아대학 박물관에 보관중이다.

다. 상사리 기와
  기성현지 발굴현장주변 전답 가에는 당시의 멧돌과, 돌학(硸) 기와편 등이 있었다. 그런 유물들이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었다. 발굴현장에서는 당시의 건물 형태와 주춧돌, 토기편, 분청사기편, 백자편, 다양한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그중에 문양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있었다. 그 문양은 상사리(裳四里)란 글이 양각되어 있었다. 상사리란 말은 677년 신라 문무왕 때 거제에 상군(裳君)이 설치되었을 때 마을지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와조각에 새겨진 글자가 옛 역사를 밝히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귀중한 보물을 얻은 것 같았다.

 일부 학자들은 기성현(岐城縣)이 거제도에는 없었고 강원도에 있었다는 등 거부 설을 주장해 오다가, 여기서 출토된 상사리(裳四里) 기와 편을 보고, 거제 둔덕 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동안 거제관내의 문화유적자료조사와 발굴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이 아주현지(鵝州縣址) 발굴에서 출토된 영락(瓔珞=옥구슬)과 기성현지에서 출토된 상사리(裳四里) 기와조각이다. 이 두 가지의 유물이 거제의 상고사를 정리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두 지역은 없어지던 문화유적진데, 내가 그때 그 지역을 가게 되어 가까스로 발굴을 하게 되었다.  

  기성현지를 발굴한 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땅에는 두꺼운 비닐을 깔아 유적지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고, 경지 정리를 서둘러 하고, 모를 심게 하였다. 내 일생에 가장 기쁨을 주었던 이 두 곳의 유적지 중에서, 아주현지는 주거지로변해 버렸고, 기성현지는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어서 고려시대의 기성현지를 복원 하여 의종왕의 피난처로 관광자원화 하는 것이 소원이다. 이런 의견을 수차래 내어 놓았으나 무산되었다. 기성현지는 고려 18대 의종 왕이 피신 와서 3년 동안 살다간 유적지다. 그때는 제2의 고려국이 거림리 기성현에 있었다. 이런 귀중한 유적지가 농경지사업으로 없어질 번 한 것을 어렵게 구해 냈다. 그때의 고충은 힘이 들고 어려웠지만, 상사리 기와편이 발견됨으로 힘들었던 일들은 기쁨으로 충만 되었다. 이곳을 지날 때 마다 그때 그 순간의 어려웠던 일을 잘 마무리 하고, 좋은 자료를 발굴한 기쁨이 들판의 곡식처럼 수확을 얻은 기쁨이다.

라. 둔덕은 고려18대 의종 왕이 피난 온 곳 

 상장군 정중부 등의 무신들이 경인년(庚寅年)에 난을 일으켰다. 이 난을 경인난이라 한다. 고려가 안정됨에 따라 무관(武官)을 천대하고 문신(文臣)을 존경하는 경향이 날로 더하여 무관들의 불평이 컸다. 문신들은 매일 술을 먹고 시를 읊으며 화평재(和平齋)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데 무관들은 호위를 하면서 무시를 당했다. 무관의 불평이 높아지자 이를 눈치 챈 의종왕이 무관들을 달래기 위해 장군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상을 주며 위로했다. 이 자리에 문신(文臣) 한뢰(韓駱)가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때렸다. 의종왕은 무모한 짓을 보고도 한뢰를 나무라지 않았다. 무신들은 문신들의 방자한 행동에 분노했다. 왕이 보현원(普賢院)에서 수박희(手搏戱) 놀이를 하며 즐기고 있을 때, 상장군 정중부(鄭仲夫)는 이고(李高), 이의방(李義方) 등을 불러 문신들을 모조리 죽이게하였다. 그리고 의종왕은 목숨만 살려 왕궁에서 쫓아냈다. 의종왕은 말을 타고 살길을 찾아 개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거제도 섬으로 도망을 왔다. 왕이 기성현으로 도망을 오자 그 가족과 부하들도 뒤따라 거제, 둔덕으로 와서 작은 고려국을 만들었다.

마. 의종 왕이 복위 하던 중 경주에서 살해  
  명종 3년(1173) 8월에 김보당(金甫當)이 녹사(錄事) 장순석(張純錫) 등을 거제도에 보내어 의종왕을 모시고와서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기 위해 경주로 가던 중, 정중부가 이 사실을 알고 이의민을 보내어 왕을 살해 하도록 했다. 이의민은 의종왕을 곤륜사에서 만나서, 왕에게 술 석 잔을 권하고, 의종왕을 칼로 살해 하여 경주 북쪽에 있는 곤륜사 연못위에 시체를 던져 버렸다. 그때 연못에서 오색 연기가 올라가면서 천둥번개가 쳤다고 한다. 그날이 명종 3년 10월 경신일이다. 왕의 나이가 47세 재위 25년이고 거제로 도망 와서 숨어 산 것이 3년이었다. 

박춘광 기자  gjtlin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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