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여인숙 <2>

  이녁은 간판 앞에서 변명하듯 말했다. 흘러들어 오는 객중에 행여 황해 사람 하나쯤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안부라도 물  오지 않을까, 하는 셈속도 미리 해두었는지 몰랐다.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노동처럼 힘들다. 아흔을 코앞에 두었건만 이녁을 기다리는 마음만 늙지도 않고 아직껏 예순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물그릇을 챙겨 들고 방문 밖을 나서니 아침은 이미 댓돌 위 고무신 속에도 거늑하다. 하얀 고무신, 먼지 앉으면 닦고 그렇게 닦기만 했던 이녁의 신발이다. 해주댁은 오늘도 그 신발 안에 발부터 넣어본다. 온기도 없는 신발은 해주댁 작은 발을 헐렁하게 맞아들인다. 석시삭은 댓돌 위에다 이녁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고 문설주를 잡는다. 몸을 겨우 세운 후 부엌으로 들어간다. 침침한 눈가에 잡힌 개수대 안에 그릇을 놓고 새시 대문을 밀어낸다.
“일찍도 일어 나셨네요.”
경운기 시동을 걸던 경수 아비가 모터에 머리를 수그린 채 말만 던져 보낸다. 건너편 경수 아비는 이녁이 떠난 후부터 해주댁을 보살펴 왔다. 아침저녁 기침 소리로 안부를 확인하고는 문단속이며 군불 지피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새벽부터 밭에 나가려나?”
“콩밭에요, 어제 베 두었던 거 싣고 오려고요. 방은 따숩던가요? 새벽에 한 번 지피기는 했는데. 요즘은 일교차가 여간 심해야지.”
“따뜻해서 이불꺼정 차버리고 잤다.”
“그래요? 그래도 이불은 꼭 덮고 주무세요. 감기 드시면 어쩌려고……. 그리고 경수 어멈이 미역국 끓인대요. 아침은 집에 와서 드시고요. 다녀올 게요.”
경수 아비가 요란한 경운기 소리를 남기고 조개골 농로를 향한다. 그 길 끝에는 긴 모래밭을 지닌 바다가 있다. 해주댁은 경운기 소리가 헤쳐 나가는 길을 멍히 바라본다. 경수 아비가 말하는 콩밭은 이녁이 거두던 곳이다. 밭일을 하다간 땀이 지겨우면 풍덩 몸을 던지던 바다를 앞에 두고 있다. 경운기 가는 길에서 눈을 떼 낸다. 등을 돌려 간판 앞을 다가간다. 가만 그 간판을 쓸어 만져본다.      
이 간판이 제법 일을 잘 해냈다. 기대와는 달리 적잖은 객들이 다녀갔다. 한철 고기잡이 어부며 가방 가득 책을 싸들고 온 고시생, 가출한 여학생, 그리고 바람 난 젊은 것들의 도피처가 되기도 했다. 저마다의 고달픈 사연을 끌어안고 들어와 시간을 앓아대는 그들에게 여인숙은 묵묵히 보듬어 주었다. 그들의 아픔에 함부로 간여하지 않았다. 마지막 도피처인 양 숨어 들어온 그 절박함을 허접스럽게 치부하지도 않았다. 남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이녁의 방법은 그냥 지켜봐 주는 것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든 이녁은 그들 편이었다. 앓을 만큼 앓고, 사랑할 만큼 사랑하고, 하고팠던 일을 열심히 하고나면 그들은 제 스스로 떠났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짐을 챙겨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며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시간이란 어느 약국의 처방보다 효험 있을 때가 많다. 이녁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시간을 마련해 주었고 시간은 어긋난 이 치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곤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방을 다녀갔던가. 따지고 보면 세상에 몹쓸 짓이라 손가락질할 일들은 없다. 그 가슴에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 
방은, 이 여인숙 세 개의 방은 사람보다 훨씬 나은 구실을 한 셈이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이름이 있다. 해결 하지 못한 채 제 의지로 걸어 나가지 못한 유일한 이름, 경조였다. 경조가 이곳을 찾아왔을 때는 겨울이 시작되려던 어스름 저녁이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섬에 들어왔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다른 객들처럼 문을 두드리거나, 주인을 찾는 격식도 앞세우지 않았다. 여인숙 간판 옆에 스물은 훌쩍 넘겼음직한 청년이 초췌한 얼굴로 떨며 서 있었다. 물론 가방 같은 것도 없었다. 여인숙을 찾을 목적으로 온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여인숙이란 간판을 만났고 지친 몸 잠시 누이고 싶은 절박함만 빈손에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온몸에 냉기를 둘러쓴 그 아이가 황해여인숙 간판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객의 연유는 묻지 않아도 그 행색이 일일이 대답하고 설명해 준다. 이녁은 얼른 그 청년을 구석진 방으로 안내했다. 숨을 곳이 필 요하다는 간절한 사연이 젊은이의 깊고 휑한 눈빛에 숨어 있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엉겨 있는 눈이었다. 
구석진 방은 뒷문과 가깝다. 다급할 적이면 우선은 그 문을 이용할 수 있다. 잠시 위기를 넘길 수도, 또 피할 수도 있는 비상구인 셈이다. 뒷문은 애솔을 내립떠보듯 키 큰 갈참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그 봉화산과 수월한 길을 터놓고 있는 셈이다. 야트막하면서 깊은 그 산은 곤란한 몸을 잠시 숨겨 줄 수도 있었다. 그 뒷방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유용할 참이었다.
경조는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 선 행색이었다. 주머니에 방값을 지닌 객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가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흉악범일지라도 이녁은 일단 숨겨주었을 것이다. 이녁의 여인숙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도피처이기도 했으니까.
경조는 한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위해 이녁은 손수 밥상을 들고 들락거렸다. 낚시로 건진 생선이며 문어, 소라 등 바닷것을 부지런히 먹였다. 구석진 방에서 불러내어 이녁과 한밥상에 앉게 된 것은 달포를 넘기고부터였다. 경조의 얼굴에 낯꽃이 피어나고 허천들린듯 퍼넣던 숟가락질 속도도 점 점 늘어지는가 싶더니 몸은 중실해졌다. 서너 달을 보낼 무렵 빙그레, 경조가 처음으로 입가에 웃음을 달아냈다. 그냥 싱긋, 무의식 짓둥이였을 터였다. 그러나 이녁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예사롭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는 경조가 제 웃음 꼬리에 소리도 매달아내는 싶었다. 그 소리 끝에다 쟁여 있던 불안을 덜어내는 중이었다. 그건 이녁에게 경조가 보낸 믿음의 신호 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당장 숙박료를 지불할 수 없다는 말도 당당하게 했다. 그럼 몸으로 때워야지, 이녁은 그런 경조에게 짓궂은 농담으로 답했다. 경조는 이녁의 진심을 쉬이 알아챘다.   
경조는 의외로 두름성이 좋았다. 이녁이 경조를 지키는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이녁은 경조의 보살핌을 받는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훌렁한 이녁의 옷가지를 걸치고 밤낚시를 간다든가, 재바른 걸음으로 새참을 나르는 거며, 제 알아서 두렁서리까지 척척 잘해 냈다. 경조와 함께 하면서 축복만 거늑한 이녁의 세월이 시작되는가 싶었다.
마을에는 남쪽에서 찾은 조카쯤으로 운을 떼 놓았다. 하루하루 일속을 익혔고 둘만이던 두레상에 수저 한 벌 더 놓는 것 또한 해주댁의 대단한 설렘이었다. 둘 보담 셋은 눈셈만으로 충분히 배 부른 숫자였다. 그 숟가락 세 개는 이녁과 해주 의 오늘이 어제 보담 더 의미 있고 내일을 기대하는 핑계처럼 길들어 갔다.  어쩌면 이녁은 두고 온 제 씻줄에 대한 애틋한 정이었을지 몰랐다. 해주댁 또한 몸에 실은 아이 둘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던 터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른 속맘으로 경조를 통한 대리만족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 행복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어느 하룻머리, 건장한 두 남자가 조용히 여인숙 문을 들어섰다. 집안 구석구석 줄뒤짐하는 위압적인 거동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경조의 신분을 확인하는가 싶었다. 경조는 애줄없이 그들 수 갑에 손을 내밀었다. 마치 무언극을 연출하는 배우만 같았다. 너무나 순간에 끝을 맺은 일이라 마지막 비상구인 뒷문을 쓸 여유조차 없었다. 이녁은 그걸 원통해 했다. 그 뒷문을 쓸 수 있었다면 잠시라도 그 아이를 애솔 빽빽한 봉화산이 숨겨줄 수 있었을 거라고…….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경조는 그렇게 끌려갔다. 저만치 돌림길 앞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지긋하게 이녁을 바라보았다. 가엾은 그 눈이 속눈물만 뒤떨구어 놓고는 우물가를 꺾어 사라졌다. 이녁도 막 숟갈을 잡던 참이었다. 생선 미역국에 맛을 들인 경조를 위해 새벽부터 후릿그물로 잡아온 농어였다. 국그릇에는 그 아이의 숟가락만 빠져 있었다. 멍히 앉았던 이녁은 번쩍 정신을 찾아낸 듯 밥상을 박차고 쫓아나갔다. 제 고무신이 벗겨져 개골창으로 빠진 줄도 몰랐다. 아이의 배가 떠난 부둣가에 멍히 앉은 이녁의 손은 밥상에서 들고 간 숟가락만 부르쥐고 있을 뿐이었다. 이녁의 삶은 경조라는 돌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애저녁, 간판 앞에 주춤거리던 그 아이를 집에 들였을 때, 또 두 손이 묶인 채 섬을 떠났을 때, 이녁의 삶은 그렇게 두 편으로 가르면 깔축없는 계산이 될 것이다.  
묵은 진티를 비로소 찾아낸 듯, 이녁은 섬에다 주먹벼락을 칠기 세였다. 웃동네 여수댁 마당에서 곡괭이를 휘두르며 맞대들었다. 그렇게 가슴속에 맺힌 것들이 많은 줄 몰랐다. 이녁은 경조를 고해바친 여수댁을 핑계로 세상 모두를 질타하려는 것 같았다. 아님 이 섬에서 쟁여두었던 상처를 죄다 쏟아내기 위해 트집바탈을 부리는지 몰랐다. 어찌 사람 좋은 이녁이라고 가슴에 맺힌 게 없을거나. 속으로 삼키고, 등뒤에다 감추고, 그랬던 모든 설움을 성 마른 사람처럼 게워내었다. 여수댁은 겁에 질려 옆집으로 숨고 말았다. 나중에 빌고 또 개 개빌었지만 이녁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용서할 맘은 애시에 없었다. 경조는 이녁 목숨 줄에 빌밋한 이름이었으니까. 그런 후, 이녁은 늦은 담배를 시작하면서 속니를 갈았다. 얼마나 애가 탔으면 입에다 불을 지펴 연기까지 게워 낼까, 해주댁은 이녁 옆에서 죄지은 사람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이녁의 그런 모습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포효였고 괴물의 절규였다. 그리고 그 원한은 날이 갈수록 덩치가 불어났다.
이녁은 경조를 통해 두고 온 제 아들을 보고 있었다. 용걸을 대신해 맘껏 아비 노릇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아이를 통해 짐작 밖에 못한 제 아들을 만들어 눈앞에 세워두고 있었다는 것을 어찌 모르랴.
그 아이를 몇 번 찾아갔지만 면회는 사절 당했다. 시국사범이라  무거운 죄인이었다. 그 아이 얼굴 한 번이라도 보면 한이 풀릴 것 같다고 했다. 그 맘도 이해하고 또 이해했다. 경조는 이녁의 아들 용걸이었으니까.  한참 후에야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경조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의붓아버지 집이었다. 이녁은 부리나케 인천을 향했다. 죽음을 앞두고 경조가 찾은 사람은 이녁이었던 것이다. 사경을 헤매던 경조가 이녁 손을 잡고 말했다고 했다. 제 짧은 삶에서 섬 생활이 가장 행복했었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었는 데……, 라고. 
이녁은 경조를 살리기 위해 용하다는 한의원을 다 찾아다녔다. 그러나 병원에서 단념한 경조의 숨을 돌아오게 할 의원은 어디에 도 없었다. 경조의 마지막 세상 동안 이녁은 인천의 어느 여인숙에서 장기 투숙까지 했다. 결국 그 아이의 유골만 안고 돌아왔다. 앙버티는 이녁의 두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가 미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충혈 된 두 눈 속엔 원이 이글이글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 것 같았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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