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는 밭 애두름의 늙은 호두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쉴참이면 풍덩 뛰어들어 물똥을 튀기며 땀을 식히던 조개골 바다를 앞에 둔 나무였다. 경조의 호두나무이기도 했다. 경조는 그 호두나무 그늘을 좋아했다. 오죽 했으면 이녁이 경조나무라고 이름 했을까. 
“이 호두나무를 심은 건 주희 아씨가 처음 아이를 몸에 싣기 시작했을 때였어. 아이 한 놈 키우는데 들어갈 비용을 마련해 줄 나무였어. 이제 이 나무는 경조한테 줄게.”
이녁은 해주 댁을 말할 적이면 꼭 이름에다 아씨란 말을 붙여 썼다. 이렇게 늙은 아씨 봤어, 하고 해주 댁이 말타박을 해도 이녁의 말버릇은 변하지 않았다. 

아름드리나무를 빙 둘러보던 경조의 입이 함박만큼 벌어졌다. 친구이듯, 아들이듯 맘을 바치던 경조였다. 해주 댁은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이녁은 잠시라도 경조가 제 눈을 벗어나면 그 나무 밑을 찾아갔다. 일더위에 익은 흙을 피해 경조는 그늘 바닥에 퍼질러 누워 있곤 했다. 두 팔을 베고 비스듬히 내려앉은 하늘에 하염없이 눈을 주거나, 지그시 감은 눈으로 뭔가에 골몰하는가 싶었다. 이녁은 옆옆이 경조의 그림자 구실을 했다. 경조와 똑같은 모양새로 눕거나 앉거나, 그렇게 따라 하곤 했다. 

어느 날 이녁이 널찍한 평상을 만들었다. 맨땅보다 나을 거야. 이녁은 이것 또한 경조 거라 말했다. 경조 부자네. 해주 댁도 한 말 거들면 경조는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운 웃음으로 고마워했다. 아담한 몸을 평상에다 부려놓고 경조는 제 나무 그늘을 맘껏 누렸다. 이녁이 뭍으로 나가는 날에는 가끔 책이름을 적어주거나, 아니면 마른 커피 봉지도 주문했다. 커피 맛을 알게 된 것도 경조 때문이었다.

구석진 경조의 방에는 책 몇 권과 찌꺼기만 말라붙은 커피 잔, 이녁이 부지런히 사다 입힌 옷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주인 없는 옷들은 허깨비입성처럼 허수룩했다. 이녁은 경조가 쓰던 모든 것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경조를 묻고서도 돌아올 아이처럼 기다렸다. 경조는 호두나무 밑에서 영원한 잠을 청했고 그래서 돌아올 수 없음에도……. 
이녁은 경조의 나무 밑에서 살다시피 했다. 가끔은 그 아래서 한뎃잠을 자기도 했다. 바닷일에서 돌아오거나 들일을 놓는 잠깐의 일참 때면 그 나무 밑을 찾았다. 평상에 올라 그 아이처럼 다리를 쭉 뻗어 비스듬한 하늘을 쳐다본다든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
아 나뭇가지로 뭔가를 쓰던 경조를 흉내해곤 했다. 

해주댁은 경조가 땅바닥에 쭈그려 앉으면 힐끔힐끔 넘겨보았다. 뭘 쓰는 겔까, 썼다간 지우고 어떤 날엔 미처 지울 틈도 없이 이녁의 부름에 쫓아가고 난 후면 해주 댁은 얼른 그 아이가 두고 간 비밀을 훔쳐 보곤 했다. 흙속에 그려놓은 희미한 글자는 언제나 같았다. 이연우. 얼마나 그리운 이름이었으면 땅바닥에 새기고 또 새길까. 경조는 잠시 잊었던 그리움을 일깨우던 모양이었다. 이제 그 그늘 밑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이녁이었다. 눈에 밟혀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아이 경조일까, 먼발치기의 그를 바라보았
다. 그러나 이녁의 글자는 훔쳐볼 수 없었다. 두려움이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이녁 그리움의 정체 앞에서는 눈과 귀, 가슴까지 다 틀어막고 싶었다. 

해주에 두고 온 그의 아내 복순일지도, 아니면 그녀 젖가슴을 옹골지게 빨던 용걸이일지도 모르는 이녁의 그리움. 복순이 젖가슴에서 용걸이를 떼 내어 둥개질하던 이녁의 뒷모
습이 아련한 기억으로 떠올랐다. 이녁 가슴에 숨겨 두었을 행복이란 그림이었다. 이녁이 숨겨둔 모든 건 해주 댁 비밀한, 가슴 구석을 할퀴며 달아나는 상흔이었다. 이녁이 변하기 시작한 건 경조의 유골을 수습하여 손수 땅에 묻은 후부터였다.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녁의 모습은 아니었다. 입고프지도 않는지 말 한마 디 없이 종일을 보냈고, 앙버티는 그 속내평을 짐작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었다. 허깨비였다. 먼 바다에서 기센 바람이라도 불어온다면 이녁 몸뚱이도 그 바람에 날려 멀리멀리 날아 갈 것만 같이 허수했다.

멀리멀리, 해주 댁은 제가 끌어온 그 말 앞에 움찔 놀란 가슴이 되고 만다. 멀리멀리, 마음속 그 거리쯤에 존재하는 이녁의 그리움이 있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다. 이녁의 멀리멀리 그곳에 있을 복순이, 한 번도 남을 미워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그녀의 선량한 눈빛이 떠올랐다. 복순이의 등에 붙은 밀알진 용걸의 눈도 그러했으리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쯤의 생각에 미치면 해주 댁은 남의 인생을 도둑질해 제 것으로 만들었다는 미안함, 그녀의 삶은 복순이에게 진 빚이었다. 이녁은 한번이라도 헤아려나 보았을까, 복순이에게 늘 채무자로 살아가고 있는 해주 댁 맘을.이녁은 본시 옹진 사람이었다. 해주 부잣집 중서 씨와 이녁  아버지 성국 씨는 각별한 사이였다. 성국 씨는 늘 야심한 밤을 틈타 숨어들었다간 그 밤에 다시 만주로 떠나곤 했다. 성국 씨가 객지에서 상을 당하자 중서 씨는 이녁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때 나이 일곱 살이었고 이녁이 온 다음 해에 해주 댁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녁은 해주 댁 어린 날의 살가운 오빠였다. 이녁 또래인 친 오빠보다 해주 댁은 이녁을 더 잘 따랐다. 그 등에 업혀 잠이 들거나 그의 무릎에 앉아 밥을 먹거나, 그렇게 어린 날을 보냈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권했지만 이녁은 극구 사양하며 제 분수를  지키려 했다. 중서 씨 댁 그 많은 토지와 일꾼들을 관리했고 눈에 거슬리는 일 없는 이녁에 대한 신임은 두터웠다. 이웃한 착한 복순이와 연을 맺어 논 몇 마지기와 함께 살림을 내보냈다. 그랬어도 이녁은 제 집 거두듯이 중서 댁 살림에 소홀함이 없었다. 
해방이 되고 난 몇 해 후 지주의 몰락을 예견한 중서 씨는 서울에 유학중인 오라비에게 해주 댁을 보내기 위해 이녁을 불렀다. 이녁의 식솔까지 함께 가기 위한 배를 마련했다. 그러나 복순이는 용걸과 함께 기다리겠다고 했다. 결국 이녁은 해주 댁을 데려다주
고 돌아온다는 계획으로 바꾸었다. 

발동선을 마련하고 이녁은 기계 다루는 법도 열심히 배웠다. 중서 씨는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을 그 배에 실었다. 서울에는 올케와 공부 중인 오빠가 해주 댁을 기다릴 참이었다. 그리고 마땅한 날을 받아 남쪽으로 향했다.  항해가 순조로웠다면 해주 댁을 남쪽에 풀어놓고 이녁은 돌아가야만 했다. 돌아가 중서 씨 곁에서 복순이와 용걸을 위한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건 맘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다. 표류하던 배는 이 
섬을 만났고 귀향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되돌아오고 말았다. 해안은 점점 삼엄해지고 또 사변까지 만났다.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본 후 해주 댁은 그를 두고 서울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감히, 네가 주제꼴도 잊었느냐……. 피붙이처럼 지냈지만 오빠의 노한 목소리가 이녁을 후려칠 건 분명했다. 이녁은 서울을 재촉했지만 해주댁은 이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어디 맘

줄만한 일가붙이도 없는 이녁이었다. 볼음도에 주저앉은 이유가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살았다. 아씨의 지아비가 되었고 아씨는 이녁의 지어미가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지난 일은 함구했다. 돌아갈 수 없는 것들에 부질없이 악지부리지 말자, 무언의 약속이었다.  애옥살림을 면천할 수 있었던 건 해주에서 제법 실어온 돈거리 
때문이었다. 물론 서울로 가야할 것들이었지만 그걸로 땅을 사고 집을 짓고 타고 온 배도 있었으니 그만하면 섬 살림으로 넉넉했다. 경조를 묻은 후 동네 사람들은 이녁이 정신 줄을 놓았다며 병원을 들먹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벌떡 일어나 어구를 손보기 시작했다. 물 위에서 필요한 생활 도구를 챙기고 배를 띄울 준비를 서둘렀다. 먼 길 떠났던 정신을 이제 찾아냈구나, 해주 댁은 안심하며 이녁의 거동을 거들었다. 

제 정신을 추스르는 게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었다. 그 아침, 날도 참 좋았다. 어떻게 햇살이 맑은지 노릇한 은행잎이 빛발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발동선 소리가 허허바다로 향해 점점 멀어져 갔다. 그렇게 떠난 이녁은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이나 모질었으면 험한 날 험구나 하련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녁이 약조한 사흘이 지나고, 그 사흘이 열 번도 더 달아나고……. 쉴 줄도 모르는 날은 자꾸만 흘러만 갔다. 이녁 없는 세월, 해주 댁은 조침조침 기다림 속에서만 살아왔다. 이녁 떠난 후 한 번도 통잠으로 밤을 새운 적이 없었다. 이녁의 뱃소리가 들려오는 환영에 시달리곤 했다. 이녁은 지금 몇 살로 살아가고 있을까, 두매한짝을 다 펴서 헤아려보다간 그 숫자에 깜짝 놀라고 만다. 

이녁의 고무신을 들고 해주 댁은 수돗가에 주저앉는다. 낡삭은 신발은 가뭄 끝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그 실낱같은 선 사이로 세월의 묵은 때가 주저앉아만 있다. 닦아봐야 헛다리품인 줄만 알면서 이녁이 돌아올 거라는 믿음, 그것 때문에 하 많은 세월을 버티
어 왔다. 기다림도 늙어 기력을 잃었지만 해주 댁은 거시시한 눈 속에 맞은바래기로 앉은 바다를 버리지 못한다. 황해여인숙 간판 앞으로 객이 들어오듯이 이녁 또한 그 객처럼 새시 대문을 밀고 들어올 것이라 믿기에. 씻가신 이녁 신발을 댓돌 위에 올려놓고 그 옆에다 해주 댁은 제 고무신 두 짝을 바투 붙여 놓는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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