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눈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 것도 담아내지 못하는 그 눈이 점자의 안색을 편안하게 꾸며 주었다. 내가 기억하던 점자는 흔적도 없었다. 나는 가만 침대 앞으로 가 몸을 구부렸다.
“홍점자.”
어렸을 적 그녀를 흉내 내어 보았다. 점자는 내 이름 앞에다 유달리 홍가 성을 붙여 부르는 걸 즐겼다. 우리는 홍가 성씨의 사촌이다, 꿈에도 그걸 잊지말라는, 점자의 엄중한 경고였을 것이었다. 두 번째 불렀을 때도 눈 속은 기척 없이 멍했다.
“나 홍수호야.”
나를 알려주는 방법도 별 효과가 없었다.  “홍점자, 나 홍수호야. 알아보겠니?”
두 말을 한데 묶어도 보았다. 빤히 바라만 볼 뿐 역시 말귀는 막혀 있었다. 세 번째 방문했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무의미하게 움직이는 점자의 동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말을 잃어버린 그녀에게서 캐낼 수 있는 비밀을 어쩌면 그 눈 속에 숨겨둔 건 아닐까, 물론 폰돌이, 그 이름까지도. 폰돌이.
이젠 잊어도 괜찮을 세월에 살고 있는 나였다. 그런데 점자와 마주치면 왜 그 이름이 먼저 떠오를까. 점자와 내가 함께 만들어 둔 지난 날의 주인공, 아무리 밀어 내려 해도 몸집 큰 짐승처럼 턱 버티고 앉아 꿈쩍도 안 하던 이름, 폰돌이었다. 그녀의 멍한 눈앞 에다 폰돌이를 집어넣었다. 그냥 버릇처럼 네댓 번을 거푸 외쳤을 뿐이었다. 아 그런데 어쩌면 좋아! 갑자기 점자의 동공이 경직되는가 싶었다. 의심에 찬 그녀의 눈 빛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 홍수호야. 알겠어? 폰돌이 알아?” “읔!”
차라리 괴성이었다. 마치 불편한 짐승이 내지르는 소리처럼 점 자는 몸까지 부르르 떨어댔다. 분명 점자는 몇 개의 의식을 남겨 두었고, 그것들 모두가 그 눈 속에 숨어 있다는 게 분명했다. 그걸 끄집어내기 위해 나는 수없 이 폰돌이만 외쳐댔다. 내 몸 속엔 어느새 야비하고, 음흉한 핏줄 이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유년의 그 꿈대로 점자를 벗어났다. 나는 점자를 멀리에 두려고 애를 썼다. 다른 공간에서 내 삶을 꾸려가 면서 비로소 가능했다. 가끔 친척의 장례나, 예식장에서 어김없이 부딪히곤 했지만 나는 일부러 데면데면 대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자리에서 그녀를 슬쩍슬쩍 훔쳐보곤 했다. 

그러나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남편은 달랐다. 혼자 사는, 그것도 허튼계집처럼 암 냄 새를 풍기고 다니는 점자에게 남편의 눈빛이 곤두서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폰돌이 보고 싶지?”
가만가만 그녀의 눈이 젖는 것 같았다. 틀림없었다. 점자의 의식은 폰돌이와 함께 그 눈 속에 숨어 있 었던 게.폰돌이는 어릴 적 우리의 우상이었다. 물론 우리라는 건 점자와 나, 둘을 말한다. 얼토당토않게 적의부터 갖게 된 시원도 아마 폰 돌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폰돌이는 큰댁, 정확하게 말하면 점자네 꼴머슴이었다. 그의 성 씨가 김인지 박인지, 아니면 희귀성 중 어느 하나인지, 나는 지금 도 모른다. 그가 할아버지 손에 잡혀 오던 때는 장독간 옆 돌배나 무 밑 그늘이 무르익던 여름날이었다. 무릎이 닿을까, 말까한 삼 베 잠방이 아래 큼직한 군화가 생뚱맞았다. 터무니없이 큰 군화 때문이었을까, 폰돌이 발은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고아원에서 온 폰돌이, 그는 둘자네 뚝머슴 곤칠이와는 많이 달랐다. 다북눈썹 밑에 자리한 눈, 마치 슬픔이 고여 생성된 호수처럼 깊고 검은 눈 동자는 애잔하게 출렁이곤 했다.
보리누름이 시작되려던 초여름이었다. 그가 쇠코잠방이 차림으로 논두렁에 앉아 보리피리를 만들고 있었다. 불덩이처럼 서산마 루에 걸려있던 해는 제 앉은 자리에다 슬며서 노을을 깔던 중이었 다. 그 노을을 다 쓸어안고 앉은 폰돌이가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 가……. 애조를 실은 그의 피리 소리가 저물녘 들판에 가만가만 스며들었다. 그 먼 고향 땅에 두고 왔을 많은 이름들, 역광으로 앉 은 그의 등에는 애별(愛別)의 아픔이 그림자처럼 돋아났다. 나는 멀찌감치 숨어서 그의 슬픈 등 때문에 숨을 죽여 울었다.
그의 등장은 발악스러운 점자와의 싸움에 충동질을 해댔다. 점 자가 나를 해한다는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제삿날이나, 할아버지 생신날이면 우리는 아랫방 폰돌이 방에 서 만화책을 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겨울밤은 별스럽게 길었다. 오줌이 마려워 눈을 떴지만 마당을 가로질러 갈 뒷간이 아득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점자와 폰돌이었다. 그 둘은 마주보고 누워 서로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너그 뭐 하는데?’
‘니는 이때꺼정 안자고 뭐 하노?’
나는 그게 뭐 하는 행위인지는 어렴풋이 알았다. 그렇지만 신경 질적인 점자 고함 소리에 마렵던 오줌까지 잊고 돌아서 누웠다. 열두 살 점자는 나를 앞질러 그렇게 혼자 폰돌이를 차지해갔다. “홍점자, 너 울아버지 주머니 뒤져 오라 했던 거 생각 나?” 해묵은 내 투정에 점자는 눈만 멀뚱거렸다.
“그때 말이다, 정호가 물에 빠졌을 때 말이다, 어쩌면 내게 홀랑 다 둘러 씌웠니? 솔직히 말해 봐라. 정호는 니가 물에 빠뜨린 거나 마찬가지잖아.”
“읔.”
대답이 퍽 씩씩하기도 했다. “홍점자, 그때 어쩌면 그렇게 뻔뻔스럽게 시치미를 뗐냐? 앙큼 한 것 같으니라고.” 느낌이었을까, 내 말에 점자가 매섭게 째려보는 것 같았다. 그 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잠시 시선을 피하고 싶은 거다, 라는 건 주 제 넘는 내 짐작이었을 게다.
“폰돌이!”
점자 앞에다 그 이름을 또 들이밀었다. 점자는 그 말에만 무섭 게 반응했다. 잠시 내 말을 흘려듣는다 싶으면 나는 약이 올랐다. 그럴 때마다 폰돌이, 하고 소리쳐 다시 내 앞으로 불러들였다. “너그들 둘이서 도망갔을 때 말이다, 나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못된 것들, 철도 안 들은 것들이 엉덩이에 뿔만 나서는 …….”
“읔.”
내 심문에 그녀가 또 큰소리로 대답했다. 대뜸 내지르는 고함에 옆자리 할머니들이 다 돌아보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아무것도 아 니라는 눈신호를 보냈다. 점자의 눈가에 붉은 핏발이 돋는 것 같 았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가을이었던 것 같다. 그 가을날 아침 문득 그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없어진 건 두 사람 뿐이었다. 그런 데 세상이 온통 다 비워버린 듯한 적막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절골 길을 혼자 걸으며 나무은 내 눈물로 단풍 옷을 입는다, 생각했다. 그 나무들 사이로 빠져나온 하늘도 내 상심으로 푸르디푸 르게 젖어버린 거라, 믿었다. 연기처럼 증발한 두 사람, 이쪽저쪽 열모로 훑어보아도 허허벌판뿐이었다. 지선암 마당의 은행나무 잎은 폰돌이가 없는데도 떨어지고 쌓이고, 저들끼리 여린 바람에도 몸을 들썩이곤 했다.
“폰돌이랑 도망갔을 때 말이다…….”
내가 설정해 둔 점자의 비밀은 많았다. 폰돌이와의 야반도주, 그리고 그녀의 이름, 점자가 지시하는 점, 추궁하고픈 건 그뿐 아 니었다.오래전부터 점자의 몸 어디 내밀한 곳에 점이 있다는 건 알고 있 었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에 그려져 있는지 본 적은 없었다.온종 일 빠져 지내던 여름날 바다에서도 점자는 팬티와 셔츠로 해수욕복 흉내를 냈다.
물론 우리 또래는 발가벗고도 부끄러움을 모르 는, 넘치지 않는 정신을 간수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점자는 달랐다. 젖몸이 넉넉했고, 달거리를 먼저 시작했 고, 검지 두 개를 나란히 세워 M이라는 약자를 만들어 보이며 그게 달거리의 약칭이라며 어깨를 으쓱이곤 했다. 물론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 없이 고개만 끄떡였을 뿐이었다. 그녀가 굳이 몸을 가리고 물에 빠져드는 건 조숙한 몸에 대한 부끄러움일 거라 며, 별스런 의심 없이 넘겼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목간 날에도 그랬다. 큰댁에 걸린 목간통에 물을 채우는 일은 늘 점자와 내 몫이었다. 도깨비 소굴로 소문난 밤이면 무섬증에 오금 저리던 갈대숲, 여름날이면 희다 못해 푸릿 한 하늘 수박꽃이 레이스 자락처럼 늘어져 내린 춘자네 울타리, 그것들을 지나야만 고수버들을 세워 둔 한데우물이 얼굴을 내밀 었다. 점자와 나는 양동이를 이고 한나절쯤 그 길을 왔다갔다, 하 며 물을 길어 날랐다. 물이 데워지면 할아버지가 먼저 몸을 담그 고, 서열대로라면 점자와 나는 함께 목간통에 빠져들어야 했다. 그러나 점자는 언제나 제 엄마의 목간에 꼽사리로 끼어들곤 했다. 그래서 점자의 몸에 그려진 점 같은 건 볼 기회도 없이 세월만 달 아났다.
“폰돌이랑 난질갔을 때 말이다, 너그들 삼년 동안 어디서 뭘 하고 지냈니?”
그 점은 잠시 밀쳐 두기로 했다. 점자가 쉬이 반응하는 폰돌이 와의 사건을 앞세웠다. 가슴속의 묵은 앙금들이 소리로 변해 불쑥 불쑥 감정을 실어 날랐다.
그들이 사라진 지 3년, 끌려온 점자는 곧바로 부산 고모네로 보내졌다. 부산은 점자가 몸을 숨기는데도, 허화(虛華) 끼 넘치는 그 녀를 받쳐주는 데 안성맞춤한 곳인 듯싶었다. 점자의 행색은 나날 이 달라져 갔다. 사람들의 의혹과 경멸에 보복이라도 하려는 듯 요란한 차림에다 뜬금없는 뜯개말 일색이었다.
마흔을 훨씬 넘긴 어느 늦가을이었다. 혼자 살던 점자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던 마흔은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였 다. 아들 우현이 대입 준비에 코피를 쏟아대더니 삼수 중에 자원 입대했다. 그리고 지뢰사고를 당했고, 두 다리를 잃은 아이는 결국 제 목숨을 제가 버렸다. 외방자식인 아이와 피 한 방울 섞지 못했지만 내 마음 모두를 바쳐 키웠다. 그 아이가 떠난 후 남편과 난 뭔 경쟁이라도 시작할 셈인지 제 몫으로 남은 고통을 쓸어안고 상대를 향해 튼실한 빗장을 질러두고 있었다. 절망적인 내 마흔의 시대와 달리 점자는 당당하고 화려한 싱글 시대에 바야흐로 막을 내리는 중이었다. 홀로 40을 살아오면서 만만찮았던 남성 편력, 그 분방한 삶을 어떻게 무자르듯 버릴 수 있을까, 그녀는 주위의 우려에 오금을 박듯, 결국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결혼식장, 신랑 은 식장을 가득 메운 그 많은 호기심들 앞에 절뚝절뚝, 다리를 절 며 등장했다.  그녀의 등을 긁어 줄 남자는 봉충다리였다. 돈이 많은 남자인가 보지. 모두들 그런 뒷소리로 점자의 홀로살이 탈출에 이유를 껴 맞추려 안달했다. 점자는 내 앞에서 꼭꼭 형부라는 호칭으로 제 남편을 말했다. 그래서 두어 달 남짓 일찍 맞는 생일을 깔축없이 우려먹곤 했다. 형부, 라는 그 호칭은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랫사람 보담 윗 람 행세가 결코 낙낙치 않다는 세상살이 법칙을 이미 익힌 후이 기에.
결혼한 후 6년쯤 되었을까, 그녀의 이상 증후를 눈치 챈 건 친구들이 먼저였다. 제집도 잘 찾아가지 못한다는, 꾀죄죄한 행색부터 전 같지않다는 등, 말결에 나온 점자의 형편은 그다지 순탄해 뵈지 않았다. 결국 결혼생활이 그녀의 말과 일치하지 않았다는 결론이었다. 한번 말꼬가 터지자 점자의 삶은 두레상 중심에 얹힌 간 장종지처럼 발가벗겨지기 시작했다. 공직에 몸담았던 훌륭한 시 아버지, 운동권 대학생인 딸, 돈을 책상 서랍에 쌓아두고 맘대로 쓰게 한다는 법대 출신의 남편, 잘 배운 시누이 등, 점자의 입을 통해 번지레하게 포장된 그 모양의 실체가 드러나는 중이었다. 애초에 그녀 말들이 거짓이었거나, 아니면 신혼기에 후했던 그 식구들이 본색을 드러냈다던가, 어느 것이든 혼자 자유롭게 살던 점자에게 형벌일 것이었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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