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별 이야기<1>

 불영을 보듬고 앉은 천축산의 기척이 느껴졌다. 은엽의 몸은버릇처럼 긴장을 급조해내기 시작했다. 불영사에 도착했을 때, 햇살은 이미 기운을 놓고 있었다. 산문 앞,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손에 쥘 때부터 상습적인 염증처럼 가슴 한 쪽이 쓰라려 왔다. 산문을 지나 메숲진 길을 걸어 올랐다. 서름한 눈빛으로 입구를 내어주는 불영사, 늘 그러하듯 어려운 집 문턱을 넘듯 발길이 지 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은규의 승복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 은엽은 이 불영사를 찾지 않았다. 막 스물아홉을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해 초파일이었다. 불현듯 차를 몰고 새벽길을 달렸다. 이제 은규를 놓아주라는 부처님의 계시가 그의 맘을 건드렸던 것인지 몰랐다.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불영사에 안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은엽은 그녀를 자주 찾지는 않았다. 멀리에서 그녀의 회색 옷차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이른 봄날 메주를 씻는 모습, 가을날이면 김장 준비로 앞뜰 배추를 고르고 있을 때나 아니면 해질녘 긴 그림자를 거느리고 대웅전으로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을 훔쳐보고는 했다. 그때에만 해도 그녀의 옷과 몸은 티격 태격 서로 다투는 듯 보였다. 남의 것을 빌려 입은 양 생경스러웠던 그 승복에서 은엽은 은규가 아직 두고 온 세상을 버리지 못한 거라고, 그렇게 주제 넘는 짐작을 하곤 했다. 옷과 몸이 불일치한 은규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어느날 갑자기 가출했던 것처럼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그 산문을 등지고 나오지 않을까……, 부질없는 생각에 혼자씨름하곤 했다.
그러나 그 초파일, 은규의 모습은 여태껏 본 것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걸음걸이가 그랬다. 뭔가 익숙하지 못해 서먹하던 걸음 걸이가 아니었다. 지난한 삶은 그녀의 부처님에게 모두 공양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은규를 가슴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월은 놀고먹는 한량만은 아니었다. 지나고 보면 시간은 언제나 우호적이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데 흐르는 세월만큼 훌륭한 처방은 없었다.

 색깔의 중립에서 더러는 절망을, 더러는 희망을 내비치던 회색, 그날 승복이 은규의 몸에 그렇도록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세상에서 입던 청바지나, 체크 남방보다도 훨씬 멋스러운 맵시였다. 연못가에 앉아 겨울 햇살을 모아 쥐었다가 다시 빠뜨리는 허전 한 그녀의 손가락에서, 도량천수를 행하며 허적허적 짚어대는 걸음짓에서, 무시로 새 나오던 허수한 마음자리는 뵈지 않았다. 그런 차림으로 은규는 바삐 절간을 돌아다녔다. 엉킨 연등을 바로 고쳐놓는가 하면, 초파일 준비에 열심인 그녀의 걸음이 조용하면서 분주했다. 그녀의 몸에는 비구니가 자연스레 붙어살았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모질게 끊어버린 스님이었다. 반질거리는 머리에 무르익은 봄 햇살이 다급스레 미끄러지고 있었다. 얼굴빛은 계곡 물보다 투명했다. 분명 그녀는 스님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이제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은규가 선택한 삶을 존중해주자, 은엽은 그런 마음으로 슬그머니 사찰을 빠져 나왔었다. 연못 속의 돌 위에 해쪼이 하러 올라앉은 자라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간 그냥 차를 몰고 저물녘을 달려오곤 했던 적도 있었다. 은규를 생각하면 낡고 삭아버린 어리석음이 마음속 병자리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삶을 관조할 나이에 들어섰고 그 구태한 굴레의 허물을 벗어던질 때도 되었지만 묵은 기억은 가끔 가슴에서부터 파상을 이루며 은엽의 전신으로 퍼져나가곤 한다.

 그 초파일 후 처음 찾아온 불영사이다. 고적하고 단정한 사찰. 부처님 모습이 그림자로 내려앉았다는 연못가를 빙 둘러보았다. 머리가 푸르스름한 비구니 둘이 대웅전 계단을 내려서는 중이었다. 무의식중에 은엽은 고개를 돌렸다. 그 스님이 은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은엽의 의식은 저 먼저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은규를 만난 건 전혀 뜻밖의 장소였다. 마음의 긴장을 풀고 걸어 나오던 길이었다. 절간 입구, 꼭 닮은 건물 둘을 요사채로 세워 둔, 가을이면 은규가 배추를 뽑던 채마밭 앞이었다. 겨울에 몇 번이나 눈을 둘러썼을 그 밭엔 무지렁이 배추 몇 포기가 삭은 듯이 뒹굴고 있었다. 그곳에서 은규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그냥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먼저 수습한 쪽은 은규였다. 은규가 두 손으로 합장을 하면서 싱긋 웃었다.  은엽은 절간 앞으로 걸어 가는 은규를 뒤따랐다.
“스님 뒤를 밟긴 왜 밟아?”
“중생이 짊어진 업을 좀 벗어볼까, 하고.” “오빠는 지금도 여전하네.”
 “은규야.” “…….”
“그냥 불러보고 싶었어.”
“실없기는……. 나이 들어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은규의 입가에 조용한 웃음기가 맺혔다.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던 긴장이 누그러지고 있었다.
“오늘 별 보는 날이야. 가는 길에 들렸어.”
“정연씨가 보낸 초대장 받았어. 정연씨는 해마다 보내. 언젠가 여기 한 번 다녀 간 모양이야. 만나지는 못했어. 책 몇 권을 두고 갔더라. 고맙다고 전해 줘. 엄마는 좀 어때? 요양원 생활에 적응은 잘 하셔?”
“인간 세상의 우리는 다 무고해.”
인간 세상이라는 은엽의 말에 은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볼에 피어난 볼우물은 참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이었다.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너무 아득해서 잠깐 가슴이 먹먹해왔다.  은규의 맘에 병소를 키우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그 가을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화실이 있는 마당이었다. 꽃밭 위를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를 채에 잡아 담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유리창으로 고추잠자리가 날아들지 않았더라면 쌍둥이의 인생이 좀 달라졌을까. 그 아홉 살에 보지 않아도 괜찮을 장면을 보게 된 건 분 명히 고추잠자리 때문일 것이다. 고추잠자리는 유리창에 꼼짝없이 붙어 있었다. 소리를 죽여 은엽과 은규는 창 가까이 다가갔다. 죽은 듯 붙어있던 잠자리는 은엽의 손에 쉬이 잡혀들었다. 그러나 잠자리를 잡은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잠자리가 앉았던 창 너머 거실, 분명 심상찮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왜 저럴까, 이마에 손차양을 만들어 안을 살 폈다. 아버지는 벌건 얼굴로 엄마를 때리고 있었다. 풀어헤친 혁대로 내리치는 아버지, 발가벗긴 그녀는 그 매를 오롯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폭력은 차라리 원한이었다. 은규는 비명을 질렀다. 얼굴이 노랗게 변해갔다. 도저히 아홉 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은엽은 엄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나이를 살고 있었다.
무력감으로 몸은 부르르 떨렸고 바지 아래로 오줌은 염치없이 흘러내렸다. 은규는 울기만 했다. 쌍둥이, 두 아이의 눈으로 담아 내기엔 한없이 버거운 현실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은 무엇으로도 당해낼 수 없이 거대했다. 은엽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안고 눈을 꼭 감았다. 그날 은엽은 저주이듯 퍼붓는 아버지의 고함에서 엄마의 부정을 알았다. 그 런 후 아버지는 떠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 은엽은 젖은 바지가 부끄러웠다. 창에서 등을 돌렸다. 은엽 손에 들린 잠자리는 이미 죽어 있었다. 기억은, 아니 상처는 제멋대로 부상하여 몸을 키워 나갔다. 떠난 아버지의 이유도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이제 나에 대한 염려는 좀 놓으시고 오빠 삶이나 챙겨. 도대체 언제 안주할 거야. 날마다 남의 집짓기하느라 떠돌지 말고 이제 무하랑 제 둥지도 틀어. ” 은규의 말에 은엽은 지난 시간에서 헤매던 정신을 챙겼다. 은규의 표정은 온화했고 말은 아무런 티가 묻어나지 않았다. 은엽은 아직도 아픈 기억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끙끙거리지만 은규는 남은 삶을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이제는 맘 편히 널 놓아 줄 게.”
“도대체 우리들 아버지는 누구일까, 처음엔 엄마의 추한 비밀이 내 고통이었지만 아마도 그것들은 내 방황을 위한 빌미에 불과했 을 거야.”
은규가 두 번째 가출을 한 날은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이었다. 가방을 챙겨 학교에 갔지만 도무지 시험 문제를 읽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은규의 방으로 올라가 가출의 단서라도 될만한 흔적이라도 찾아볼 양으로 서랍을 뒤적였다. 서랍 속에는 그녀의 속마음이 담긴 일기장 몇권과 제법 두꺼운 스케치북이 있었다. 스케치북은 제법 두꺼웠다. 그녀의 시간이 오 하게 담겨 있는, 마치 그림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여백이 없었다. 뜻밖에 그림 뒷면에 긴 글이 있었다. 낙서라기에 는 내용이 퍽 진지했다. ‘쌍둥이 성좌’ 를 그리스 신화로 설명해 놓은 글이었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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