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별 이야기<2>

   은규는 온통 그런 내용의 가슴을 폭탄처럼 숨겨서 가출한 것이 었다. 가족 모두가 산산이 흩어져버린 그해, 은엽은 대학진학도 포기했다. 가출한 은규의 전화를 받았을 때 홀몸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은엽은 은규와 병원으로 갔다. 그때에도 은엽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은규는 그 후 골 깊은 상처의 후유증과 내내 투쟁해야만 했다. 목표였던 미대를 포기했고, 끝내는 출가를 하고 말았다. “그 아이, 내가 생명줄을 끊어버렸던 아이 말이야. 짝사랑하던 남자의 아이였어. 나는 쫓아다녔지만 그 사람은 늘 그만큼 도망가더라. 그를 포기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 이 말은 어쩌면 엄마가 더 궁금해 할 말인지 몰라. 세상을 살아내는 힘이 오직 사랑에만 있다고 믿는 엄마이니 말이야.”  그 말을 던져놓고 혜원 스님은 등을 돌렸다. 발걸음이 어느 때 보다 가벼워 보였다. 은엽은 한참이나 그녀의 등만 바라보았다. 그리곤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벌써 별마로 천문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은엽은 천문대 오르 는 좁은 도로를 가까이 두고 장릉 앞으로 차를 돌렸다. 허름한 초가를 개조하여 식당으로 바꾼, 산채 비빔밥이 맛있는 집 앞에 익숙하게 주차했다. 무하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별을 보러 오는 날이면 무하와 이곳에서 만나 저녁을 먹은 후 함께 천문대를 출발하곤 했다. 무하는 차에서 내리는 등뒤에서 은엽을 안았다. 보고 싶었어. 무하의 첫말은 늘 그랬다. 식사를 마친 후 운전 끝의 피로가 털렸다 싶을 때에 일어섰다. 무하의 차는 식당에 세워두었다.

 천문지대의 훌륭한 배경은 암흑천지이다. 별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이 배려한 보호 장치일 것이다. 별은 왜 어둠에서만 빛을 낼 수가 있을까. 언젠가 심각하게 은규가 물었다. 그냥 어둠으로 빛은 존재하겠지. 은엽의 대답은 치장이 없었다. 은규보다 훨씬 단조롭다. 이런 문답의 한 예로 은엽과 은규는 분명히 구분된다. 은규의 속은 호두 속 보담 복잡하고 묘했다. 천문대를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어둠의 터널을 뚫는 기분이었다. 헤드라이트는 가로막는 어둠길을 매몰차게 찢어낸 자리에 빛을 분사했다. 빛이 빠져나가면 어둠의 입자들은 다시 원래대로 봉 합을 서둘렀다.
“너무 순수한 것은 변질될 우려가 많다고 했어요.” “무엇이 순수하다는 건가요?”
“별요, 별이 순수하다고 그러대요. 내 누이 은규가 말입니다.”
“별은 순수하다……. 사람들 손에 잡히지 않아서일까요? 사실 뭐든 오염이라는 말끝에는 항상 사람들 책임이 따르니까요.”
 겨울이 가려고 할 때쯤이면 은규의 맘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2월 하늘에 나타나는 쌍둥이 별자리 때문이었다. 혼자놀이를 즐기는 은규가 별에 빠진 건 별로 의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을 구속하면서 위안을 받는, 가슴 한 구석에 음지 한 자락을 간직하고 사는 은규, 그녀의 속앓이는 유별나다 못해 치열했다. 상처 받는 것에 민감한, 그래서 그 상처를 누구보다 오래 간직하는 은규에게 가족들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산마루에 다 올라와서야 온길을 되돌아보니 어둠을 가르는 수 많은 빛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별마로 천문대에서 실시되는 아마추어 천문학회의 총회를 향해 달려오는 불빛이었다. 긴 겨울을 기다린 회원들의 발길은 끝이 없었다. 2월이 지나가는 겨울 하늘, 별 자리 관측으로 이렇도록 훌륭한 날이 언제 또 있을까, 싶었다. 은엽의 차는 천천히 어둠을 가르며 800m 정상의 봉래산 별마로 천문대에 몸을 풀었다.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을 가진 천문대, 그 산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영월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별을 많이 거느린 탓일까, 영월의 땅에도 별이 가득 움을 틔우고 있었다. 동강을 끼고 앉은 마을 집집이 어둠 속으로 쏘아내는 불빛들이다. 그 마을 사람들도 하늘처럼 빛을 발하는 별을 키우고 있다.

 “어 오랜만입니다.”
천문교육관 앞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은엽의 걸음을 붙잡는 목 소리였다. 지회장이다. 인천의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안흥수 선생, 그가 은엽의 등을 돌려세웠다.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는 중에 한 무리 별지기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천문학을 전공하는 용희 씨, 일산의 중학교 물리 교사 승우 씨, 올해 대학 4학년에 올라가는 명희 씨, 초등학교 교사인 정연 씨……. 별을 좇은 눈에는 이미 별들만 가득이었다. 숙소 배정을 맡은 정연 씨가 남자들의 짐은 큰곰별자리 방에 다 풀어 놓으라고 지시했다. 얼추 30여 명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큰 방이다. 은엽은 망원경 등, 장비를 방안에 부려놓고 문밖을 나왔 다. 무하는 어느새 팀들과 어울려 가방을 옮겨놓고 방문을 나서는 중이었다. 무하가 기거할 방문에는 작은곰자리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는 여자 몇과 간단한 간식거리로 과자나 음료수 등을 휴게소에 배치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도 별빛 생기가 감돌았다. 이런 날이면 발걸음도 재바르다. 느릿느릿 굼뜬 행동으로 ‘춘향이 걸음’이라는 놀림 받는 무하였다. 그러나 별지기들과 어울리는 날이면 사뭇 달랐다.
  
연락부를 맡고 있는 용수 씨는 인원을 점검하고, 아직 얼굴이 안 보이는 몇몇 회원들의 도착시간을 휴대폰으로 일일이 확인하는 중이었다. 무하는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정연 씨 손  잡고 깔깔거리는 중이었다. 9시가 다 되어갈 무렵, 참석한 회원들은 천체투영실로 향했다. 전망대로 오르기 전에 행하는 필수 워밍업이다. 8M 돔 스크린의 별이 가상 별자리로 먼저 하늘 자리를 살펴보고 실전에 들어가는 순서가 별을 관찰하는 유익한 코스이다.
“오징어먹물 같아요.”
 무하는 이런 어둠을 곧잘 먹물에 비유하곤 했다. 정말 먹물 속을 걷는 듯한 완벽한 암흑이었다. 돔 스크린이 설치된 천체투영실은 별빛을 풀어놓은 듯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빛을 헤집고 겨우 자리를 찾아 앉았다. 투영실의 인공 하늘엔 3,500개 정도 가상의 별이 투영된다. 비록 인공의 별이지만 날씨와 무관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늘이 투영되자 무중력의 지대에 진입한 우주인처럼, 갑자기 몸 무게가 부재한 듯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진공 상태, 아니 부유하는 느낌이랄까. 눈앞에 주저앉아 내린 하늘이 손을 내밀면 잡힐 듯 가까웠다. 옆 좌석의 무하는 팔을 길게 펴 올려 별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가 한 손을 은엽의 다섯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녀의 몸은 온기로 사람을 맞아들이는 방법을 안다. 그녀가 손을 잡아주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그러워지곤 한다. 숭굴숭굴한 성격 의 무하는 유난히 손잡기를 좋아했다. 영월군청 소속이라 했다. 머리숱이 무성한, 턱이 네모로 각진 별 가이드인 김영민은 자기소개를 그렇게 했다. 아주 오랜 옛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88개의 별자리는 결국 이집트와 그리스로 전해졌다. 이집트와 그리스는 물론 신화 의 왕국이기도 하다. 황도 12궁과 별자리 찾는 법, 그 별이 지니고 있는 신화도 곁들여 설명했다. 전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리온자리로 시작된 신화는 포세이돈과 에우리알레드 사이에 태어난 오리온의 사랑이며 숙적이 되고 만 전갈과의 관계로 풀어 나갔다. 2월, 쌍둥이별자리를 시작할 때에는 형제애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별 가이드는 은엽이 알고 있는 것, 은규에게서 숱하게 들어 온 쌍둥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세세하게 했다. 물론 2월이었고, 2월의 대표적인 별자리가 쌍둥이 성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동쪽 방향을 향해 눈을 돌려보라는 가이드의 지시가 아니었어도 은엽은 벌써 그 별자리에 눈을 맞추고 있었다. 2개의 밝은 별이 비스듬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어 눈여겨보지 않아도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쌍둥이자리는 눈을 감아도 마음으로 떠오르는 별이다. 오래전부터 은규에게 세뇌당해온 은규의 별자리이기도 하다. 두 별에서부터 각각 별의 줄이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들 별의 줄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한 쌍둥이 모습을 자연스레 만들어 내었다.    
“제우스가 말예요, 스파르타 지방을 여행하다가 그 나라 왕비 레다와 사랑을 했다네요. 그때 이미 남편 튄다레우스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레다가 말이예요, 제우스의 아이를 함께 품게 된 거랍니다. 레다는 두 개의 알을 낳았어요. 쌍둥이 알이지요. 한 알에서는 카스토르와 크리타임네스트라는 여자 아이가, 또 다른 알에서 폴 룩스라는 아들과 헬레네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났겠지요.” 은엽은 나직이 무하에게 말했다. 별에다 시선을 둔 무하는 은엽의 말에 가만한 귀를 내주었다.
“카스토르, 저건 내 별이래요. 폴룩스, 저 일등성은 은규의 별 이구요.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비록 핏줄은 달랐지만 우애는 그만이었다는 것. 형제는 황금 양피를 찾아 나섰던 아르고호의 일 행으로 항해를 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에 휩쓸리게 된 겁니다. 오르페우스, 알죠? 아, 에우리디케와 사랑으로 유명 한……, 그 오르페우스의 하프 연주에 파도가 잠잠해 진겁니다.” 그렇게 가상 우주를 30여 분쯤 헤매었을까, 갑자기 별은 희미해지고 하늘이 멀어졌다. 꿈에서 방금 깨어난 듯 옆 사람들의 얼굴 윤곽이 슬슬 살아나기 시작했다. 불이 들어 온 것이다.  꿈을 털고 일어나듯 일행은 4층 관측실로 올라가기 위해 밖을 나왔다. 밤이 제법 깊었는데도 1층 매점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영월지역은 쾌청 일수가 연중 192일쯤 된다. 그래서 별을 보기가 알맞은 곳이다. 아마추어 천문인을 위해 심야개방을 하는가 하면 여러 첨단 시설로 별지기들에게 친절을 베푼다. 4층은 아직 별이 돋지 않은 미지의 지대였다. 가이드의 간단한 주의사항이 끝나자, 공연 시작을 알리듯 스르륵, 보조 관측실의 슬라이딩 돔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둑하던 실내는 갑자기 옥외로 변하고 머리 위엔 또 하나의 암청색 하늘이 펼쳐졌다. 밤하늘에 심어 놓은 별들이 빛을 매달고 얼굴을 쏘옥 내밀었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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