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야기'<3>
  와! 

누가 먼저 외쳤을까,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 함성을 내질렀다. 굴절망원경, 반사 망원경 등, 10대의 망원경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보조관측실, 은엽은 무하의 등뒤만 따랐다. 그녀가 두고 나온 별을 만나기 위해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댔다. 그녀의 체온이 아직 가시지 않은 렌즈는 은엽 가까이에 별을 데려다 놓았다. 렌즈에 숨은 별은 은엽의 온몸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우주, 어떤 산술로도 계산이 안되는 공간이다. 과거로부터 미래로의 시간적인 연결 속에 놓인 공간, 별은 그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은엽은 망원경이 맞추어 둔 별자리를 다 관찰한 후, 자리를 옮겼다. 토성을 보기 위해 주 관측실로 이동을 했다. 사실, 영월은 굳이 망원경이 아니더라도 별보기가 수월한 하늘이 있다. 렌즈 속에 담기는 한정된 공간의 하늘보다 은엽은 툭 트인 하늘의 별을 한꺼번에 보는 걸 더 즐겼다. 공해도 광해도 없는, 별보기에 완전무결한 영월 땅에 오면 그런 맘을 알아주는 하늘이 있어 좋았다. 언젠가 은규도 영월 하늘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렇다고 했다. 천문과학관에는 벌써 아마추어 천문학회 회원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마추어천문학회는 2년마다 총회를 개최한다. 물론 그 사이 별보기 행사는 많지만 총회는 임원들의 임기가 끝나는 주기에 맞추는 게 관행이다. 과학교육관으로 돌아온 회원들은 2년 임기가 끝난 임원들의 재임명에 대한 의제를 다루었다. 모든 임원은 재임명 동의안에 통과되었다. 단지 결석 중인 행사진행 책임은 은엽이 맡았다. 공식적인 회의가 끝나면 천문학회는 본격적인 별 이야기 프로를 진행한다. 이 프로가 정착한 지는 오래되었다. 천문학회 인기몰이로 각광받게 된 ‘별 이야기’ 는 열두 별자리를 담당하고 있는 대표 회원들의 몫이다. 신입 회원들을 향한 이만한 러브콜은 드물 것이다. 

 “8월 무렵이면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전갈은 오리온자리의 천적이기도 하죠. 안타레스를 포함한 그 전갈자리는 S자 커브가 특징을 이루는 여름을 대표하는 별자리입니다. 그러나 5만년 후이면 그 아름다운 S자 커브를 볼 수 없게 됩니다. 그건 지구의 자
전, 공전에 의한 ‘일주 운동’과, ‘연주 운동’ 때문이죠. 별들은 이런 운동 이외에도 ‘고유 운동’에 의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안흥수 회장은 열두 별지기들의 발표가 있기 전에 움직이는 별자리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인사말을 대신했다. 연단 아래로 내려서는 그의 안경알에서 반짝 별 하나가 튀어 달아났다. 형광등에서 빠져 내린 불빛이 안경알에서 부딪친 것이다. 별의 세계로 들어서면서 은엽은 과대평가하던 자신의 존재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별, 그 이름부터 신비로움이었다. 어느 누가 주관하는 원리일까, 별의 거동이 빚어내는 사건, 다이내믹한 그 스케일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별자리이야기는 사실 은규와 정연 씨가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은규와 정연은 손발이 척척 잘 맞는 환상적인 별지기 커플이었다. 발표를 시작하기 전, 별지기 두목, 정연 씨가 연단 위에 섰다. 활달한 정연 씨는 시원한 목소리로 올해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갖고 온 회원들을 환영한다는 인사말과 담당 별지기들의 차례와 이름을 발표했다.  1월, 오리온자리는 무하의 몫이다. 무하는 별의 일생을 먼저 다루었다. 그녀는 별에게도 일생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연단에 선 무하에게서 초등학교 교사 냄새가 물씬 풍겼다. 습관 때문일까, 그녀는 마치 어린 학생들 앞인 양,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나, 그런 염려를 담뿍 담은 목소리였다. 
“일생에 대하여 관념적으로 풀이한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의 동안’이란 말이 될 것입니다. 백여 년도 채 못 채우는 우리 인간에게도 일생은 대단한 의미이며 그걸 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무엇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챙이 긴 모자를 쓴 채 연단으로 올라선 무하는 퍽 감성적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일생, 무하가 던진 화두는 별지기들 마음자락을 살짝 건드려놓기에 충분했다. 무하의 별은 듣는 이의 가슴 어디엔가에서 날아온 한 알의 꽃씨처럼 박혀 발아를 시작했다. 그것이 자라면 틀림없이 별꽃이란 이름으로 피어날 것이었다.

“사람과 비교하면 별의 수명은 영원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수소를 연료로 해서 빛이나 열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한, 별도 죽음이란 것이 찾아옵니다. 수소를 핵융합으로 태워서 탄소나 질소, 규소 등, 좀 더 무거운 원소로 바뀌게 하죠. 핵반응 뒤에 재가 생
기고 무거운 재가 차츰 중심부로 고여 갑니다. 태양의 8배 이상 되는 아주 무거운 별은 일생의 마지막에 별 전체를 날려 버리는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말하자면 과격한 지구인들이 자주 자행하는 자폭이란 거죠. 이 폭발 현상을 초신성이라 합니다. 우주 공간으로 날아간 가스와 먼지가 중심에 남은 별에 비치거나 성간 물질과 충동해서 빛나는 것을 초신성잔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행성상 성운이나 초신성 잔해는 우주의 쓰레기와 함께 흩어져서, 다시 다음 세대의 별을 만드는 성운에 거두어들여 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과정을 ‘별의 윤회’라는 이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무하는 그 말쯤에서 숨을 돌렸고 숨 돌림과 동시에 박수를 받았다. ‘별의 윤회’라……, 무하가 명명한 말이 별처럼 신선한 느낌으로 전해졌다. 숨을 돌린 무하는 다시 씩씩한 사냥꾼 오리온성좌를 신화의 측면에서 말해 나갔다. 무하의 별 이야기는 제법 인기를 얻었다. 몇 번의 상쾌한 웃음과 두 번의 박수, 그 정도면 퍽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진지했고 내용이 신선했다. 그리고 조리 있고 설득력 있는, 차분한 말투 때문이었다. 그녀의 지휘봉 끝에는 두 개의 1등성과 5개의 2등성으로 이루어진, 별자리의 왕인 오리온 성좌가 그려 진 그림이 있었다.
오리온자리는 특히 겨울에 볼만하다고 했다. 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설날의 오후에는 남동쪽에 있지만, 한 시간 반 뒤에는 남남동쪽으로 이동한다. 그 이동에 무하는 또 ‘별의 흐름’이라는 표현을 써서 마지막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무하는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앉자마자 은엽의 손을 꼭 잡았다. 열기 때문일까, 상승한 그녀의 체온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애썼다는 말 대신 은엽은 그녀의 손을 힘껏 잡아 주었다. 두 번째 2월의 별자리는 은엽의 몫이다. 은엽은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그리스 신화로 풀어 나갔다. 단상에서 들려준 쌍둥이 성좌는 은규의 각본이었다. 은규의 이야기를 한마디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겼을 뿐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은엽은 내내 은규의 표정을 떠올렸다. 목이 잠겨왔다. 잠시 말을 쉬고 물 한 컵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환하여 쌍둥이 별자리 아래에 위치한 겨울의 대삼각형에 대한 해설도 끝냈다. 2월 별지기 은엽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3월의 별지기 용희 씨가 큰곰자리를 설명하기 위해 일어섰다. 용희 씨는 제 손을 은엽의 손에 부딪치면서 바통터치를 흉내 냈다. 후드 점퍼 차림인 그의 몸이 날렵하게 단상을 훌쩍 뛰어올랐다. 단아한 용모인 그의 얼굴은 미리 별빛을 깔아둔 듯, 맑았다. 용희 씨는 천문학과 출신답게 우주의 극적인 천문현상을 언급했다. 무거운 별이 죽음을 맞이하
는 최후의 순간인 초신성 폭발에 대한 설명이었다. 11월의 별, 안드로메다자리를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김경수 선생이 맡았고 마지막으로 안흥수 회장이 12월의 별, 황소자리를 끝냈을 때는 얼추 12시가 다된 무렵이었다.

긴 시간이었지만 자리를 지키는 회원들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그들은 슬슬 움직일 채비를 서둘렀다. 별지기들의 활동시간은 깊은 밤이다. 옷을 두껍게 껴입고 개인 장비를 챙겨 어둠 속으로 무리지어 숨어들기 시작한다. 은엽과 무하는 그들 틈을 비껴 나와 산책로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섰다. 가만 눈을 떴다간 감았다. 잠깐의 워밍업 후면 슬며시 어
둠이 길을 열어준다. 날가지만 거느린 나무들이 무리지어 선, 그 숲을 양팔로 껴안고 앉은 계단 끄트머리에 주저앉았다. 어둠을 말아먹은 먼산주름이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었다. 장비 같은 게 없어도 별은 얼마든지 제 모양을 맞추어 볼 수 있었다. 무하의 손이그의 파카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따뜻했다. 두 사람은 후미진 곳에서 한참이나 정물처럼 앉아있었다. 
“은엽 씨가 쌍둥이였다는 게 참 신기해요.” 
어둠의 휘장을 걷어내며 걸어오는 듯한 무하의 말이었다. 
“쌍둥이들은 늘 시선을 집중 받죠. 어렸을 땐 재미있기도 했어요. 관심 받는다는 게 싫지는 않았거든요.”
“차림은 어땠어요. 어렸을 적 은규 씨와 쌍둥이 연출 말입니다” 
“물론 우리 쌍둥이도 피해가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은규와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이었어요. 그날은 쌍둥이 형제가 기념해도 좋을 거구생신(去舊生新)의 날이었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쌍둥이의 분리가 시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입은 옷부터 모양이 달랐어요. 은규는 붉은 색 점퍼에 감색 치마, 저는 병아리 색 윗도리에 초록 바지, 둘은 서로의 다른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지요. 나와 다른 사람이 앞에 서 있다, 그건 경이롭다 못해 반란이었어요. 한 번도 다르게 갖춘 입성으로 밖을 나서보지 못한 쌍둥이들이었으니까요. 양말, 모자, 신발 심지어는 속옷마저도 판에 박은 듯 똑같았어요. 그리고 은규가 처음으로 여자 옷을 입었던 날이기도 했어요.”
“은규 씨가 그럼 남장 스타일이었단 말이죠?” 
“네. 머리 모양까지도요. 어찌된 셈인지 엄마는 한 번도 은규에게 여자아이의 분장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은규 또한 남자 아이에 길들여져 있었고 그걸 더 편하게 받아들였어요. 그날, 입학식에 은규는 자신의 변신에 무척 당황한 눈치였어요. 치마를 입고 쑥스러워하던 은규가 입학식 이후 ‘형’이란 호칭을 감추어두고 둘만 있을 때만 몰래 꺼내어 사용하곤 했어요. 엄마는 입학 날까지라는, 금을 미리 그어둔 모양이었습니다. 은규와 저는 그때부터 둘로 완벽하게 분리되었어요. 학급을 달리했으며, 그래서 친구가 달랐고, 가방이며 학용품 색깔 모두가 달랐죠. 처음엔 달라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 쩔쩔맸어요. 습관이란 것은 마약과 같은 독성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은엽은 무하의 손을 꼭 잡았다. 여전히 손은 따뜻했다. 
“엄마의 손이 따뜻했다는 기억은 여덟 살, 입학식 날이었습니다. 엄마를 새롭게 발견했던 날이기도 했어요. 홀로일 때는 비교라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꼬맹이들 손을 잡고 줄을 선 많은 학부형들 무리 속에서 엄마는 완연 돋보였어요. 목이 긴 구두에, 짧은 울 치마, 그리고 벨벳 망토, 그뿐인가요, 새 깃털이 꽂힌 모자를 쓴, 그런 엄마를 닮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모두의 시선이 엄마에게로 모여 들었죠. 엄마는 정말 예쁘다, 은엽과 전 하루 내내 우쭐댔죠. 엄마는 그날, 정말 엄마 역할을 훌륭히 해내더군요. 담임선생님을 차례로 찾아 우아하게 인사를 했으며, 쌍둥이 두 손을 잡고 다정스레 교문 밖을 나섰어요. 모든 눈길이 쌍둥이와 엄마에게로 쏠렸어요. 선망을 받고 있다는 것은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자식이라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자랑스러웠어요. 그때 잡았던 엄마의 손, 매니큐어 붉게 칠해진 엄마의 손은 지금도 제일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주머니 속, 무하의 손이 꼼지락거렸다. 먼 길로 달려갔던 생각들이 일순간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어느 골짜기에선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망원렌즈에 뭐가 잡혔을까. 무하는 함성의 흔적 쪽으로 고개를 빼돌렸다. 은엽은 머리 위에 있는 쌍둥이성좌를 살피는 중이었다. 눈은 멀어도 마음이 미리 가서 그 별자리를 잡아냈다. 머리 위에서 빛나는 두 별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듯 다정했다. 전술에 뛰어난 카스트로와 격투기의 달인인 폴룩스, 그들의 우애에 제우스조차 손을 들고 말았다는, 쌍둥이의 형상을 그려내기 위해 은엽은 별을 따라가 보았다. 남쪽 하늘에서 유성인가, 빛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흐르는 별, 그렇게 이름 지어 부르지만 사실, 유성은 별이 아니다. 흐르는 별의 정체는 초속 수십 킬로미터의 초고속으로 지구에 돌입하는 먼지 입자이다. 새벽이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밤하늘은 여전히 아청빛 바탕이었고 수많은 별들이 연출되는 무대였다. 그 하늘에 눈을 둔 채 무하가 말했다.
“저 많은 별들에게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한 건 인간의 장난기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요, 그저 별을 별로 두지 못해 안달하여, 별의 주체를 무시한 채 제 마음에 드는 전설까지 붙여 이름 짓기 시작한 게 말입니다.”
두 사람이 계단 끝에서 일어선 건 새벽녘의 추위 때문이었다. 몸을 일으켰을 때 모든 기관이 얼어버린 듯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잘못 건드렸다간 뿌드득 소리 내며 뼛조각들이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계단을 타고 올라오면서 철수하는 별지기들과 맞부딪쳤다. 모두의 얼굴들에는 별보다 더 영롱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무하가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우리 언제 오로라를 찾아 떠나요?”
“오로라, 그거 좋지요.”
캐나다의 오로라 관광마을인 옐로 나이프에는 무하의 습관적인 꿈이 있다. 그 마을의 원주민들은 전기를 띤 입자들이 대기권의 기체와 부딪쳐 발생하는 빛 에너지를 ‘신의 정신’이란 이름으로 신성시한다. 산주름을 거느린 어딘가의 하늘에서 어슬어슬 여명이 흔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점점 바래지는 산 아래로 붉은색, 혹은 녹색의 오로라가 금방이라도 피어날 것 같은, 환상적인 예감이 일어났다. 별지기들이 슬슬 숙소를 찾아든 것도 그 새벽이었다. 작은곰 별자리가 그려진 문을 열고 들어가는 무하의 등이 사라졌을 때, 은엽은 큰곰자리 방문을 열었다<끝><다음은 '비애선'이 계속됩니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