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안개
벌써 사흘째.

뽀얀 안개는 지칠 줄 모르고 유리를 핥아댄다. 깊디깊은 안개는 미노스의 미로처럼 암암하다. 이 도시에 삶을 풀어헤친 나를 영접하려는 미호의 혼령일까, 안개는 저렇도록 창 안에 가두어진 나를 슬쩍슬쩍 훔쳐보곤 한다. 습습한 기운이 맺혀든 창가에 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던 어제의 풍경들을 풀어보려 애를 쓴다. 연둣빛 움을 매달기 시작한 여학교 운동장의 은행나무, 비탈진 도로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벚꽃, 그 뒤에 배경화면처럼 너그럽게 흘러내린 민수름한 과수원 능선……. 사과나무 가지엔 무리지어 피어난 허연 꽃들이 애잔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산, 그 뒤로 키대로 앉은 듯 또 산이 있고, 그 속에 산벚은 희슥희슥 피어난 마른버짐처럼 곳곳에 스며들었다. 앞엣것들을 압도하려는 듯 웅크리고 앉은 뒤의 산들은 설어둠을 받은 몸처럼 회청색 기운에 휩싸여 있다. 나는 퍼즐을 맞추듯 지워진 풍경 속의 가깝고 먼 것들을 기억해내기 위해 눈을 감는다. 그러나 머릿속에 잡혀들 것 같던 겹겹의 산들은 이내 안개 속에 흩어지고 만다.  저 맨 뒤의 산이 아마도 문경새재쯤 될 걸. 이사 오던 날이었다. 이삿짐 속에 묻혀 오듯 아이가 우리 집에 들어온 첫날이었다. 남편은 베란다에서 담배쉼으로 잠시 허리를 펴던 중이었다. 제 뒤꽁무니만 쫓던 아이에게 들려주기라도 하듯 남편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문경새재? 
용수철처럼 내지른 내 말에 남편과 아이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놀라는 얼굴이라니. 그렇게도 닮은꼴일 수가 없었다. 철렁 내려앉은 열패감이 내 가슴을 싸늘하게 훑고 지났다. 질긴 피의 내림바탕은 아무도 못 말려. 아주 가까운 어디선가에서 미호의 말이 나직나직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던 남편이 일어나 짐을 다시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런 남편의 뒤만 쫓아 다녔다. 나는 남편이 버
리고 간 창가로 다가갔다. 남편이 섰던 그 자리에서 문경새재쯤일 거라는 먼 산에 눈을 맞추어 보았다. 하늘이 풀어놓은 노을에 못 견뎌 몸을 움츠린 산은 점점 파르스름한 저녁 이내에 갇혀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 산은 세상에 제 몸을 드러내는 게 싫어 엷은 안개를 쓸어안고 있는 건 아닐까. 산들은 스적스적 물러가는 노을이 남겨둔 어두운 빛에 잠겨갔다. 

몇 년 전이던가.
갑자기 그해를 짚어낼 만한 마땅한 숫자가 생각나지 않는다. 좀 이른 가을, 그래 9월의 허리쯤이었다. 미호와 문경새재를 올랐다. 새가 넘기도 힘들어 이름 지어진 거래. 그때에도 승우는 부재중이었다.  인도로 갔어.  세 번째 관문을 통과한 언덕이었다. 등에 짊어진 배낭을 풀어내던 미호가 아무렇지 않게 흘린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실어내는 무게는 상당했다. 그 한마디를 위해 마음다툼을 했을, 그녀의  아픔이 내 맘에 훤히 잡혀 들었다. 인도로 갔어. 미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자꾸 아득하게 물러났다간 되돌아 왔다. 인도에 갔어 이렇게 한 글자만 살짝 고쳐 말했다면 나는 미호의 그 말을 가슴속에 넣고 그렇게 곱씹어 대지 않았을지 모른다. 인도에 갔어, 라는 말은 기약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어떤 날짜를 품고 있는, 희망 같은 것. 그러나 미호가 선택한 ‘인도로’라는 말은 막연한 불안에 대한 암시이기도 했다. 

 산에 오를 때는 고구마가 제일 좋아. 약간의 수분이, 약간의 당분이, 알맞게 피로를 풀어 주거든. 껍질째 먹는 게 좋아. 소화를 도와주기 때문이야. 미호는 보온병의 물로 만들어낸 종이컵의 녹차를 펴놓은 신문지 바닥에 세워 놓으며 말했다. 삶은 고구마 옆에 세워진 종이컵이 기우뚱, 잠깐 몸을 휘청거렸다. 미호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컵을 바로 세워 놓았다. 그때 올려 묶은 그녀의 숱진 머리카락들이 출렁, 물결처럼 흔들렸다. 옆모습으로 본 미호는 콧날만 유독 날카로워 보였다. 별말 없이 고구마 두 개를 다 먹어 치웠고, 그녀가 따라주는 더운물로 녹차를 한 번 더 우려 마셨다. 관문을 돌아 나올 때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둘째 관문에서 본 하늘에 불쑥 달이 나타났다. 초아흐레쯤으로 여물어 가는 애저녁 달이었다. 달은 별처럼 돋아나 하늘에 박혀든 듯 뜬금없어 보였다. 묵묵히 걷는 발걸음에 의해 어슴푸레 머뭇거리던 달빛은 생기를 찾아갔다. 부드러운 달빛은 길가에 선 사물들에 그림자를 걸기 시작했고, 그 그림자들은 제 주인들을 위해 점점 선명한 모양을 지어내었다. 달이 빛을 토해내고, 그 빛이 또렷한 그림자들을 만들어 낼 때까지 미호는 별말이 없었다. 사람 모여 사는 아랫길을 따라 맨발로 걸었을 뿐이었다. 마을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말없는 길이었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미호와 나는 말이 필요하지 않아도 괜찮은 긴 세월을 공유하고 있었다. 

 새재의 흙길이 다 끝나던 즈음이었다. 미호가 털썩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웅크린 제 그림자를 부여안고 손에 거머쥔 신발을 발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스테파노 선율로 익숙한 ‘무정한 마음’이었다. 가끔 밤바다 앞에서 승우가 허밍으로 부르던 노래이기도 한.카타리, 카타리…….그녀의 노래가 창백한 달빛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옆에 앉아 나는 미호가 그랬던 것처럼 발바닥을 털어 내고 양말을 껴 신은  후 신발을 신었다. 미호와 나는 길가에 주저앉아 제 몫의 달빛 그림자만 오롯하게 받아내었다. 약간의 어둠과 푸른 기운을 머금은, 가을바람에 잘 마른 달빛의 기운 때문이었을까. 노랫소리는 푸른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애잔하게 소리를 풀어내는 그녀의 옆얼굴엔 서툰 화가의 소묘처럼 달빛이 그려준 명암만 고즈넉했다. 그 위로 이파리를 거느린 나뭇가지가 길바닥에 그림자를 끌고 내려왔다. 그 나뭇가지 하나가 그녀의 등에 긴 그림자로 주저앉았다. 미호의 회색 재킷에 어지러운 선을 그리며 지나던 그림자 끝이 길 바닥에 나뒹굴었다.  노랫소리는 제 그림자 속에 묻힌 미호의 자그마한 몸을 버리고 흐늑흐늑 날아갔다. 언제나 넉넉하고 화려했던 미호의 소유.그랬던 그녀가 제 그림자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나지막한 소리로 카타리를 부르고 있었다. 외로움이 한껏 실린 노랫소리는 슬픔의 입자가 되어 그녀의 웅크림 속에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습기 빠진 푸른 달빛이 잠시 그녀의 노래와 슬픔, 그리고 눈물까지 에워쌌다. 찬란한 햇빛은 저렇도록 슬퍼. 언젠가 마루 끝에 앉았던 미호가 툭, 뱉어내던 말이었다. 지붕 끝이 만들어 둔 삼각의 마당 안에 안온한 햇볕이 놀고 있었다. 병
아리 어리 사이로 가늘게 빠져 내린 줄무늬의 그림자, 그 주위로 병아리들이 부지런히 땅을 쪼아대고 있는 그런 봄날, 그 햇볕에 슬프다 했던 미호였다. “너 아직도 신을 믿는 게니? 나는 이제 의심이 많아서 신도 믿지 않아.” 제 그림자에 파묻혀 움직일 염도 않던 미호가 툭, 뱉어냈다. 막 노래를 끝낸 후였다. 여린 달빛은 그녀의 작은 몸피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자꾸 서성였다.

 신을 믿느냐고, 아직도……. 그녀가 승우처럼 그렇게 물었다. 바다를 끼고 도는 읍내 길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묻던 승우였다. 신작로에 널린 돌멩이를 밟던 승우는 겨드랑이에 레마르크의 소설을 바투 끼고 있었다. 그때 하늘은 뜬금없는 구름을 불러들이는 중이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처럼 위를 점령한 구름으로 그 아래 바다 거죽은 암청색 근심에 잠겨 갔다.주인공 에린스트가 한 말이야.사랑할 때와 죽을 때’였다. 그때 승우는 한 휴머니스트의 종말을 비감해하던 중이었다. 그는 제 어깨에 얹힌 풋내 나는 고뇌를 묵묵히 걷는 내 발걸음 앞에다 떨어뜨렸다. 그때의 승우처럼, 미호가 내게 또 물었다. 내 앞에 그 말을 던져 놓은 미호는 승우처럼 대답 같은 건 필요치 않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걷기 시작했다. 나는 멍히 서서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점점 그녀와의 사이에 나타난 막막한 거리가 불안하게 들썩였다. 신을 믿는 여자와 신을 믿지 않는 여자의 경계였을까. 그녀가 내민 등뒤에는 그녀의 것이 아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주 낯선 표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건 조심스럽게 다루어 왔던 언제나 내 몫이었던 이질감의 정체였다. 그림자처럼 숨죽여 기생하던 그것들이 비로소 그녀의 등에 붙어 숨탄것이 되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치마 속에 감추어 두고 싶었던, 언제나 매몰차게 등뒤로 

내몰고 싶었던 엄연한 내 현실이었다. 그것들이 함부로 만들어낸 거리가 저승으로 통하는 무당의 다리 천처럼, 아니 끝도 없이 늘어지는 고무줄처럼 내 앞을 가로막고 버티어 섰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녀의 등이 풀어내는 암암하고 빈 길을 대책 없이 바라보았다. “고뇌하는 인생이 제일 숨기 좋은 곳이 인도라며?”
묵묵히 등만 보이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내 앞에 그 말을 던져 놓았다. 내 발 아래 떨어진 그녀의 말은 마치 꼼지락거리는 한 마리 벌레 같았다. 나는 그 말을 함부로 밟지 못해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길바닥에 눈을 꽂아 두었다. 내 걸음을 구해주려는 듯 그녀가 다시 말했다. 
“나도 인도나 가 버릴까. 그러면 또 승우가 어디론가 도망을 가야겠지.”
미호와 문경새재를 다녀온 그날, 나는 충주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미호의 등에 밀려 자리에 누운 방은 승우가 쓰던 책방이었다. 책을 좋아하던 승우, 그래서 괜찮은 작가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적도 있었던 그였다. 그가 누에머리손톱에 침을 묻혀 무수히 넘겼을 책이 꽂힌 책장이 사방 벽을 메우고 있었다. 창을 앞에 둔 낮은 벽면엔 주인도 없는 책상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저 의자에서 승우는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그리고 무슨 글을 쓰고 싶었을까.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성적을 그려 넣고, 가끔
은 그 자신을 위해 읽었을 책들……. 옛날, 승우는 제가 좋아하던 푸쉬킨의 시를 가끔 읽어주곤 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창을 열었다. 가을볕에 잘 마른 바람이 몰려들어 왔다. 멀리에서 철길을 달리는 기차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잠깐 잠이 들었던가, 가수면의 틈 사위로 비집고 들어오는 아득한 소리가 있었다. 눈을 떠보니 책상 위, 디지털시계가 보이는 파란 불빛은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꿈결 같던 소리들이 너울너울 춤이 되어 문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가만 귓문 속으로 스며드는 건 섬뜩한 요령소리였다. 먼 길 떠나는 소리, 장사익의 ‘하늘 가는 길’이었다. 마루의 상여 소리는 점점 방안으로 맘 놓고 흘러 들어왔다. 미호는 세워둔 무릎노리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마루 모서리에 기댄 미호의 몸피는 구겨 쥐면 서너 줌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왜소했다. 그날 미호는 그 상여 나가는 노래를 날이 새도록 오디오에 걸고 또 걸어두었다. 나는 방에 누워 미호가 풀어놓은 그 노래를 꼼짝없이 듣고 또 들었다. 마루에서 숨어들어 오는 상여 소리는 어린 날 상여꽃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우던 그 유년으로 나를 끌고 갔다.<계속>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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