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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목 김주근]'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김주근:아호 자목/시인/수필가/신한기업(주)대표

  누구나 과거가 있다.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리움이다. 마치 바다에 파도가 쉼 없이 물결치듯이 기억 속에 숨바꼭질 한다. 티 없이 맑고 밝은 유년시절이 때때로 그립다.나는 거제시(당시에는 거제군) 아양리 1구 59번지 "관송마을"에서 태어났다. 옥녀봉과 국사봉이 옥포만 바다를 감싸 안고 장승포읍 아양리, 아주리,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포장 신작로를 덜컹거리며 버스가 지나가면 훍 먼지가 뿌옇게 마을을 덮어놓는다.

  농촌과 어촌이  어우러진 마을이다.당시에 관송마을은 아주국민학교에 가야하지만, 장승포국민학교와 가까워서 학구 조정을 했다고 한다.마을마다 특색이 있다. 관송마을(아양리 1구)에는 장년이  팔을 벌려서 잡을 수 없을 정도의 우람한 해송 소나무가 바닷가에 펼쳐져 있었다.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해송 밑 자갈밭은 마을사람들의 쉼터이자,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여름밤이 되면 황금 솔잎과 바다에 밀려온 작은 나무들을 모아서 불을 피워놓고, 밤하늘의 별들과 은하수를 보면서, 밤바다 지킴이가 되었다.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자갈 아래까지 물이 찬다. 썰물이 시작하면 자갈아래에서 부터 약 30미터까지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모래는 부드럽고 아주 작은 알맹이지만 밟으면 밟을수록 단단해지는 특유한 모래였다.여름에는 음력 그믐 쯤 되면, 밤마다 바닷물이 자갈이나 모래에 파도와 부딪쳐 시거리가 파란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어떤 날에는 시거리가 물결 따라 군락을 이루어 파랗게 일렁이는 모습이 아름다워, 꿈속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바닷물이 간조(干潮)가 되면, 바구니를 들고  호미로 모래를 파면 조개가 종류별로 소환된다. 특히 맛조개는 철사로 만든 화살모양 도구를 사용하여 구멍에 찔러 넣는다. 화살촉과 맛조개를 분리하여 바구니에 담는다. 왕우럭은 모래 속 깊이 숨어있어 면적을 조금 넓게 하여 모래를 파면 바닷물이 고여 손으로 더듬어 잡아서 올린다.바닷물 속에 잘피 밭이 숲을 이루어 무성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잘피 숲속은 각종 물고기들이 산란하는 장소다. 알에서 부화되어 일정기간 성장하도록 보호하는 식물이다. 간조가 되면, 꽃게를 잡기 위해 바지를 허벅지까지 동이거나, 수영복을 입고 손에 장갑을 끼고, 신발을 신고, 한손에 고무대야를 물에 띄워서 손에 잡고, 잘피 밭을 조심조심 걸어가면 꽃게 등이 신발에 밟히는 느낌이 든다. 한손으로 발밑에 있는 게를 손으로 잡고 발을 옮겨 꽃게를 물속에서 고무대야에 담는다. 당목마을(야양리 2구) 입구에는 삼층석탑(대우조선해양 내에 보존하고 있음)이 신작로 근거리에 설치되어 있었다.

  지게를 지고 가는 사람, 봇짐을 이고 가는 사람, 걸어서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는 사람, 남여노소 누구나 받아주는 석탑이다. 바닷가에 자갈과 몽돌이 혼합되어 있는 곳이다. 파도가 철썩 치는 소리에 곧장 물이 빠지면서 자르르 자르르르르 소리가 하루 종일 합창을 한다. 자갈 굴러가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생동감 넘치게 한다.정치망을 하는 선주가 있었다. 날마다 배에 고기를 잡아오면 갈매기들이 뱃길을 따라 배가 닿는 곳까지 따라오는 모습이 눈에서 선명하게 떠오른다.마을과 가까운 산 밑에 참샘이(우물)가 있었다. 물이 땅속에서 솟아나는 곳이다. 여름에는 물이 차가워서 서리가 맺힐 정도다.
 
  동네 사람들은 물속에 먹을 음식이나 막걸리를 주전자에 넣어 시원하게 먹거나 마시고는 했다. 여름밤이면 여인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바가지에 물을 담아서 몸을 적시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물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장터마을(아주리 1구)은 당목마을과 겹쳐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첫 승전지로 거북이 모습을 한 아주당산은 선열의 혼이 담겨있는 곳이다. 기념탑의 웅장함은 옥포만을 지키고 있었다.해마다 장승포 초등학교에서 6월이 되면, 저녁에 등불을 밝히고 신작로를 따라 걸어서 아주당까지 제등행렬에 동참한 기억이 난다.

  일본 강점기에서 해방되면서 선열들이 3.1운동을 일으킨 역사적인 흔적이 있다.특히 우물가가 유명하다. 장승포 사람들, 옥포사람들, 야양사람들 그리고 아주 탑골, 안골, 배골, 용소 사람들이 모여서 목이 마르고, 허기져서 지친 몸을 두레박에 물을 담아 한목을 마시면 기운이 난다. 그 곳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우물이다.용소마을(아주리 4구)은 바닷가에 백사장이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다.

  아침에 해가 뜨면 질 때까지 모래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모래가 살아 움직이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아주 하천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곳에는 숭어가 무리를 지어 물살을 가르면서 헤엄치는 모습은 소년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었다. 위에 열거한 글은 이주하기 전에 삶의 모습들이며, 잊지 못할 그리운 추억들이다.

  작고하신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정책으로 덩치가 크고 쇠로 만든 물체가 들어왔다.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불도저는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5개 마을(약 2천명) 사람들은 불도저를 구경하려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서 갔다. 어린이들은 신기하여 불도저 기사가 시동을 걸고 앞으로 가면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뛰면서 따라 가기도 했다. 불도저가 밀고 간 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삶의 터전이 산산조각 난다고 하면서 생존의 위기를 느꼈다. 마을 어른 몇 분이 불도저 앞에 가서 누워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작고하신 남궁련 회장의 대한조선공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80년도에 작고하신 김우중 회장이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하여 대우조선해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고향의 향수는 땔감 나무를 하려고 다니던 산과 조상들이 지키고 있는 공동묘지가 있다. 위로가 된다면, 대우조선해양에서 만든 배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면서 대한민국을 부강하게 성장시키는 모습과 아양. 아주 이주민 망향공원이 이주민의 가슴을 달래고 있다.

 최근에 환화그룹에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는 희소식을 접하고 있다. 당시에 이주민들은 1974년도에 장승포읍 능포리 옥수동(현재 능포동)으로 이주를 한지 올해로 48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2년 후면 50주년이다. 반세기의 세월이다.이주민들은 새 주인이 인수하여 지역민과 함께 거제시의 향토기업으로 영원히 번창되길 희망한다.(20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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