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52」             
      입 춘 대 길

   김  용  호

설 쇠자 입춘이네
해마다 그러듯이

해 뜨자 배 고푸네
다반사 인생이라

그 무슨 대길이란가
무탈도 감지역지.

동으로 가볼까나
남으로 나설꺼나

이 산이 저 산이고
여기가 그긴 것을

어디면 어떠할 건가
무위도 그저 다행.

◎  人 香 • 3
 누구나 삶의 조건을 돈, 명예, 건강에 두고 있다. 이 세 가지만 가지면 여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삶이 안락이다. 그래서 이 안락함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안락 속에 사는 사람에게서는 향기를 맡을 수 없다. 안락함은 판에 박은 단조로움의 연속이기에 여기에 안주하는 사람에게서는 진솔한 인간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人香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체취를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난사(蘭麝)의 향이 있다. 양귀비의 몸에서 풍겼다는 그 향이다.
 
 중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동물계의 향으로는 사향(麝香)을, 식물계에서는 난향(蘭香)을 알아주었는데 이 동•식물의 향을 합친 난사(蘭麝)의 향이면 최고로 쳤다. 당(唐)나라 6대 황제 현종(玄宗, 재위 712-756)이 탐닉했던 양귀비를 미모로 찬양한 문헌은 없으며, 사랑의 라이벌인 매비(梅妃)가 양귀비를 향해 ‘비비(肥婢)’ 곧 살찐 종년이라고 매도했을 만큼 몸매도 별 볼 일 없었는데, 그토록 황제를 매료시킨 것은 몸에서 풍기는 체취였다. 그 체취를 두고 그녀가 즐겨 먹었다는 과일인 여지(荔枝)의 향내라는 설이 있고, 그녀가 서역(西域) 오랑캐의 핏줄을 이어받았기에 체취에 호취(胡臭)가 섞인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녀의 매력을 찬양하는 글에 등장하는 난사(蘭麝)의 체취가 단지 아름다운 말로만 꾸며 낸 것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양귀비의 전용 욕탕인 화청지(華淸池)에 오색 화향(花香)을 넣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난향이 빠지지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체취에서 풍기는 난사의 향은 실제의 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짧은 잎 긴긴 뿌리
   단단한 매무새다

   한 톨 흙도 마다하고
   움켜잡은 천 길 벼랑

   수맥은 아득한 꿈길
   포복하는 모진 목숨.

   유시(酉時)에 뱉은 감향(甘香)
   주충(酒蟲)을 유혹한다
 
   몇 마리 학까지 불러
   춤사위가 한창인데

   연모는 향에 취한 채
   이승의 울 넘고 있다.

 - 拙詩, ‘풍란•9’, 전문
 나는 간혹 ‘두 필 스무자’라는 말을 농담 삼아 하곤 한다. 두 필 스무자는 바로 ‘천치’다. 1필은 40자, 1자가 10치로 두 필 스무자는 100자니 1,000치가 된다. 천치는 바로 바보다. 자신을 바보로 내세운 이가 있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바보로 내세웠다면 불경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나 김수환 추기경은 “내가 바보다”라며 카톨릭이란 종교를 초월하여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 성철스님은 자신이야말로 “가장 못난이”라며 항상 절하고 자신을 낮추었다. 남들이 그를 바보라고 불렀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생을 자신이 병원장으로 있는 병원 건물의 옥탑방에서 기거하며 밤낮없이 환자를 보살폈다. 덕분에 그의 병원에서는 어떤 시간이라도 아픈 사람들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비가 없는 사람을 위해 자기 월급을 가불해서 대신 병원비를 내주는 마음 따뜻한 바보였다. 

 남북 분단으로 이산가족이 되어 헤어진 아내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이 의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聖山 張起呂(1911-1995) 박사다. 어느 날 은행에서 장 박사에게 급한 연락이 왔다. 장 박사에게 발급된 월급수표를 어느 노숙인이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장 박사는 급히 은행으로 갔다. “아니, 이 사람에게 적선을 하려는데 마침 가진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냥 드린 것입니다. 아이고 나 때문에 이분이 괜한 의심을 받았네요. 이거 미안해서 정말 어쩌지요.”  또 자신의 월급을 미리 받아 환자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려고 했으나 병원에서 긴급 임원 회의를 소집하여 거절했다. 이러다가는 선생께서 돈이 없어서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판국이라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고민하던 장 박사는 환자에게 말했다. “그러면 내가 밤 중에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눈치를 봐서 살짝 도망가세요.” 이런 바보 이야기는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다. 
 수많은 인술을 펼치고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초석을 만들어주신 장기려 박사, 그는 1979년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부문)을 받았다. 환자들의 마음까지 치료한 아름다운 의사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바보였기 때문이었다. 1995년 세상을 떠난 장기려 박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전하려 했다. 무소유로 일관한 삶, 그는 자신을 위한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다. 아니다, 진하디진한 聖山의 향기를 세상에 남겼다. 그 향기는 사그라들 줄 모르고 그가 떠난 지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동하고 있다. 나는 죽어 어떤 향기를 남기려나, 생각만 하여도 모골이 송연하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立春大吉〉은 입춘절을 맞아 암울한 심사를 2수 연작으로 읊은 김용호 시인의 작품이다.立春은 24절기 중 첫 번째이고 봄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입춘에 내 거는 문구를 입춘방이라 한다. 입춘에 대문이나 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데 이를 춘축(春祝) 이라 하며 많이 쓰이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하는 뜻이다.감상에 앞서 시인의 ‘시작 노트’를 옮겨본다.

 “입춘입니다.
입춘방이 카톡으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시절이 나빠서 그런가, 둘 다 합쳐서 그런가, 입춘방이 그저 전단지처럼 시들하게 보입니다. 춘래불사춘입니다.” 예전에는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입춘방을 많이 써 붙였는데 이제는 시인의 시작 노트에서처럼 카톡으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사는 것이 힘들고 주변이 암울하고 보니 카톡에서의 입춘방이 그저 전단지처럼 시들하게 보인다. 이는 시인뿐만이 아니지 싶다. 설 쇠자 바로 입춘이었다. 해마다 그러듯이 말이다. ‘다반사(茶飯事)’는 원래 불교 용어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극히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로서 불교 중에서도 선종에서 유래했다. 참선 수행을 하는 데는 유별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듯이 일상생활이 곧 선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실제로 차 마시고 밥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사로운 일이나 항상 있는 일 등,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 무슨 대길이란가 무탈도 감지덕지 /다. 대길까지 바라지도 않는 시인, 그저 무탈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란다. 감지덕지는 매우 고맙게 여기는 모양새를 말함이다.

 시인은 ‘시작노트’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다. /동으로 가볼까나 남으로 나설까나 / 나서 보았자 / 이 산이 저 산이고 여기가 그긴 것을 / 어쩌랴. / 어디면 어떠할 건가 무위도 그저 다행 / 이란다. 무위는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한 상태를 말할진데, 무위도 그저 다행이라니 자조의 넋두리로 들린다. 그런가 하면 체념의 아픔도 읽혀진다. 무탈도 감지덕지요, 무위도 그저 다행이라는 읽는 이의 가슴도 쏴한 찬바람에 서글픔이 안긴다.우리는 흔히 봄이 오긴 했는데 매서운 추위가 봄 같지 않게 느껴질 때 ‘춘래불사춘’이란 말을 쓴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같이 않다는 뜻이니, 이는 고달픈 인생살이를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주로 쓰는 말이다. 동방규가 소군원(小君怨)>에서 쓴 구절이다. 지금까지 왕소군의 무덤에는 풀이 시들지 않아 청총(靑塚)이라 하는데 왕소군의 한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지금도 ‘춘래불사춘’은 애달픔과 그리움의 인용구로 널리 쓰이고 있다. 무언가 아픔이 있지 싶은 시인, 머잖아 맞이할 봄날엔 시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길 바랄 뿐이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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