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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거제인 이찬욱 선수, U20 국가대표로 선발한국 축구 차세대 주역을 소개합니다

거제인 이찬욱 경남FC 센터백이 U20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아래글은 nextgenfootball 블로그에 2022. 11. 11. 7:19 올라있는 글 전문으로 이찬욱 선수에 대한 소개문이다.

신화는 추억이 되고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카타르월드컵이 성큼 다가왔다. 지나간 월드컵을 아쉬워하는 사이, 새로운 월드컵이 ‘희망’이라는 얼굴로 또다시 기대감을 부추긴다. 4년 주기로 열리는 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에 끝맺음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월드컵 정상에 서기 위해 지금도 세계 각국은 다음 세대를 찾아내고 길러내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국 축구도 마찬가지다. 한국 축구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이렇게 개성 넘치는 재능이 다양한 곳에서 반짝이는 시기는 없었다. 20년 전 신화의 시기에 태어난 ‘월드컵 키즈’가 속속 성인 무대에 데뷔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우리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주목하는 이유다. 눈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을 넘어 다음 월드컵, 또 다음 월드컵에서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재능을 지닌 다음 세대를 미리 주목해 봤다. 

​지금부터 소개할 ‘미래의 슈퍼스타’들은 신화의 계절에 태어난 이들이다. 2002년 이후 출생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국내 축구 전문가,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25명을 선정했다. 2022카타르월드컵 개막을 기다리며, 다음 월드컵까지 이어질 희망의 릴레이를 지켜보시길.  이번 주인공은 경남FC의 지능적인 센터백 이찬욱이다
필진: 서호정(축구칼럼니스트), 배진경(전 포포투 편집장), 정재은(네이버 스토리텔러 이재성 편 에디터)

경남FC의 센터백 이찬욱은 인터뷰 내내 담담한 편이었다. 자신의 축구 커리어를 말할 때도 어조의 큰 변화보다는 차분한 뉘앙스가 이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신이 해야 하는 플레이를 완수할 것만 같았다. 센터백이라는 포지션이 줘야 하는 안정감이라는 것이 말투에서도 느껴지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수비를 할 때 그의 머리 속은 누구보다 빠릿하게 돌아간다. 이찬욱은 스스로를 “상대 공격수와의 수 싸움에서 압도하는 걸 즐기는 타입”이라고 소개했다. 

​“생각하면서 하는 수비를 추구하는 편이에요. 막 치열하게 붙어서 하는 수비도 있지만, 저는 영리하게 머리 싸움에서 상대보다 늘 한 수 앞서가고 싶어요. 그래서 경기하기 전에는 무조건 상대 공격수의 특징이 무엇인지, 그 선수의 장단점을 철저히 파악하고 여러 상황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고 들어갑니다.”

​현 소속팀에서는 김명준, 그리고 소속팀 밖에서는 버질 반다이크와 김민재를 영리한 수비수의 모델로 꼽았다. 공격수가 유리한 상황에서도 탁월한 판단력과 심리전, 수 싸움으로 어렵지 않게 공을 되찾아 오는 모습들이 인상적인 선수들이다. 공을 소유한 공격수로 상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센터백의 필연적인 상황을 뒤집어 오히려 자신이 공격수들로 하여금 좁은 선택지에 갇히게 만드는 상황. 그것이 이찬욱이 꿈꾸는 센터백으로서의 이상적인 그림이다. 

​재능보다 중요했던 마음가짐

거제가 고향인 이찬욱은 초등학교 시절 클럽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김진규FC에서 3년 간 축구를 배웠다. 잘한다는 평가가 이어졌지만 이찬욱은 취미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운명이 바뀐 것은 중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클럽팀에서 잘하는 편에 속해서인지 중학교 때 생각하지도 않았던 스카우트가 왔어요. 다른 선수들은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하시는 편인데, 저는 6학년까지만 하고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산 중앙중학교 축구부에서 제안이 오면서 주변 상황이 급변했어요.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셨거든요. 저는 축구를 좋아하기만 했지 그렇게 운동부 활동을 할 거라는 계획이 없었어요. 입학이 결정 나고 미리 학교에 가서 일주일 생활을 하고 왔는데 저는 안 하겠다고 울고 불고 난리였어요.”

​낭중지추였다. 이찬욱 본인보다 주변에서 축구 잘하는 데 그 재능은 아깝게 썩힐 거냐고 얘기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고등학교 1학년까지 계속 내적 고민을 하면서 운동을 해 왔다고 했다. 그랬던 이찬욱이 축구로 승부를 띄워봐야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였다. 

​“주변에서 잘 될 거 같다, 재능이 많다는 얘기를 하니까 부모님도 조금만 참고 더 해 보자, 해 보자 하셨어요. 저는 축구를 좋아했던 거지, 축구부 활동하는 게 잘 맞지 않아서 ‘힘들다,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인 흥미를 찾았고 이걸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죠. 그렇다고 축구를 대충 하거나 재능에 의존해서 하지는 않았어요. 할 때는 정말 열심히 집중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감독님, 코치님이 중요할 때 찬욱아~ 하고 찾았어요.”

​축구에 재능이 있는 아이였던 이찬욱이 축구 선수로 본격적인 변태(變態)를 하게 해 준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조정현 진주고 축구부 감독이었다. 

​“진주고 진학할 때는 같은 학년에 18명이 뽑혔는데 그 중에서는 뒤쳐지는 선수에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마지막에 뽑힌 선수였어요. 처음엔 코칭스태프에서도 별 기대를 안 하신 거 같아요. 그런데 조정현 감독님이 제가 경기 뛰는 걸 한번 보시더니 그때부터 계속 경기를 뛰게 하셨어요. 감독님 눈에 든 거죠.” 

​조정현 감독은 이찬욱이 갖고 있는 축구에 대한 흥미와 재능을 나날이 발전하는 성과,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해 승리하는 환희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면서 이찬욱은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지도를 해 준 스승은 지난 7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1년부터 췌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이어왔던 조정현 감독에 대해 이찬욱은 “제가 너무 빚을 많이 졌는데,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감독님을 잃었죠”라며 잠시 말이 떨리는 모습이었다. 

​“감독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듣고 실감이 안 났어요. 너무 힘들었죠. 저한테는 너무 큰 은인이에요.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스승 이전에 좋은 사람이셨어요. 많은 인연도 연결해주시고, 제가 잘 되게끔 항상 뒤에서 도와주셨어요. 장례식장에 가서 펑펑 울었죠. 하늘에 계신 감독님을 위해서 더 잘해야 한다는 건 앞으로 제 축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일 거 같아요.”

간절했던 우승, 그리고 故 조정현 감독
고교 시절 최고의 순간도 마지막엔 조정현 감독과 함께여서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투병 중인 스승을 위해 선수들이 한 마음이 돼 진주고가 16년 만에 전국 대회 우승을 하는 과정을 겪으며 이찬욱은 강한 결집이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경험을 줬다고 했다. 성인 축구로의 진입 직전에 얻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체험과 깨달음이었다. 

​“추계 전국고등학교 축구대회였어요. 첫 경기에서 지며 예선 탈락 위기로 갔는데 선수들끼리 정신 차리자,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고 단합했어요. 그 뒤로 정신을 차리고 이겨 나가기 시작했어요. 계속 밀고 올라갔고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로 승리하며 결승까지 갔습니다. 결승 상대는 대전 유스인 충남기계공고였어요. 당시에 감독님께서 투병 중이셨는데 저희 몰래 경기장에 오셨어요. 결승전도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고 감독님에게 트로피를 안겨드렸어요. 너무 힘든데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아서 고맙다며 감독님이 오열하시더라고요. 저희도 그 경험을 통해 가장 동기부여와 집중력이 있으면 못 이룰 것이 없다고 배웠던 거 같아요.” 

​눈 앞까지 왔던 큰 기회가 도망가다

준프로 계약을 맺었지만 대부분의 생활을 진주고에서 했던 이찬욱은 정식 프로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프로팀에 콜업됐다.

​“준프로 계약을 맺었지만 여전히 운동을 학교에서 하다 보니, 주변 친구들이 부러워 하는 시선을 보냈죠. 그래서 부담도 됐어요. 준프로인데 저거 밖에 못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니까, 그게 오히려 책임감이 됐어요. 프로로 오면서 그런 부분을 조금을 내려놓을 수 있었죠.”

​프로에서는 뜻밖의 상황을 맞았다. 김명준, 김영찬, 이광선, 우주성 등 주축 수비수들이 동계훈련 기간에 잇달아 부상을 입으며 전열에서 이탈된 상황이었다. 프로 데뷔전을 치르지도 못한 이찬욱이 개막전 선발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찬욱도 개막을 일주일 남겨 놓고 부상으로 빠졌다. 경남은 한 동안 다른 포지션 선수를 센터백에 세우며 버텨야 했다. 

​“동계훈련 3달가량 했는데 엄청 힘들었어요. 그런데 동계훈련이 끝나는 시점에 중앙 수비에 저랑 같이 서야 하는 형들이 대부분 다친 상황이었어요. 일찍부터 경기를 뛸 수 있는 기회가 오겠다 싶었는데 허무하게 저도 훈련 중에 쇄골이 부러졌어요. 3개월을 쉬어야 했어요.”

​“선수 생활을 한 뒤로 그렇게 크게 다친 게 처음이었어요. 가득 찼던 희망이 절망으로 급변하더라고요. 멘탈이 나가버릴 정도였어요. 어쩌면 인생에 처음 오는 큰 기회인데 그게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설기현 감독님을 비롯한 주변 분들이 직접 전화를 해서 위로를 해 주셨어요. 주변에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정신 차리고 버텼던 거 같아요.”

​쇄골 부상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기까지
부러진 쇄골이 아물어 5월 말에 복귀를 했지만 이미 센터백 포지션에는 선배들이 대부분 돌아와 있었다. 들어갈 자리도 없었고, 몸도 안 돼 있는 상태. FA컵 16강전을 통해 프로 데뷔전은 치렀지만, 리그에서는 출전 기회를 넘보기 어려웠다. 첫 시즌부터 최악의 경험을 하는가 싶었던 그때 새로운 기회가 왔다. 20세 이하 대표팀의 김은중 감독이 소집을 한 것. 

​“1월에 처음 소집됐었는데 쇄골을 다치면서 3월 소집에 못 갔어요. 부상을 당했고 경기도 못 뛰고 있으니까 한 동안 못 가겠다 싶었죠. 그런데 복귀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김은중 감독님이 불러주셨어요. 6월에 포르투갈 훈련에 가면서 자신감을 찾았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4개국 대회에서 첫 경기는 몸 상태 때문에 못 뛰고, 이후 체코, 노르웨이를 상대로 2경기를 뛰었는데 오랜만의 실전이었는데 생각보다 실수도 적었고 경기력이 괜찮았다고 느꼈어요. 물론 만족은 못했죠. 프로 첫 해에 저를 살린 특별한 기회를 얻었던 곳이기 때문에 20세 이하 대표팀에 가면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준비된 데뷔전, 48분의 자산

자신감을 회복한 이찬욱은 서서히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8월 17일 대전을 상대로 한 홈 경기에서 드디어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후반 27분 부상을 당한 김명준을 대신해 수비라인에 섰다. 경남은 이찬욱이 들어가기 직전 티아고의 페널티킥으로 1대1 동점을 만들었던 상황. 대전의 공격이 거셌지만 이찬욱은 김영찬과 함께 잘 막아냈다. 경남은 후반 37분 고경민의 역전골로 2대1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경기 후 설기현 감독은 추가시간 포함 22분가량 잘 버텨낸 이찬욱을 언급하며 칭찬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갑작스럽게 들어갔음에도 신인이 훌륭히 제 목을 해줬다는 내용이었다. 

“대전전 이전에도 엔트리에 들어가면서 분위기는 어느 정도 익숙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경기에서도 투입될 일은 없을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명준이 형이 종아리를 다쳐서 나오면서 제가 들어가야 했죠. 갑작스럽게 데뷔전을 치러야 하니까 당황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첫번째 상황 경합이든 패스든 거기서 실수를 하지 않으면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첫 플레이를 잘 했고, 그 다음에는 수비라인을 리드하면서 괜찮게 했던 거 같습니다. 옆에서 영찬이 형이 같이 해줬는데,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수비수로서 리드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니까 선배인데도 잘 따라와 주셨어요. 라커룸에서 형들 전부 돌아가며 저한테 와서 잘했다고 칭찬받았습니다.”

​선발 출전이 아닌 급박한 교체 출전으로 데뷔전을 치렀지만 이찬욱은 “돌아와서 보면 경험적으로는 더 큰 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0월 15일 안양과의 홈 경기에도 다시 한번 교체로 투입돼 26분을 소화했다. 대전전보다 한결 마음 편하게 플레이를 했지만 그는 “오히려 긴장감이 덜하니까 경기력만 놓고 보면 첫 경기보다는 좋지 않았던 거 같아요”라며 냉정하게 스스로를 평가했다. 

​부천, 안양을 상대로 치른 K리그2 플레이오프 일정에도 동행했다. 투입되지는 못했지만 팀이 부천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순간 함께 한 그 경험만으로도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었다. 

​“어린 선수가 중요한 경기의 엔트리에 들어가기 쉽지 않은데,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팀 전체가 이건 진짜 마지막 승부처라는 생각으로 정말 강한 투쟁심으로 무장했었죠. 제가 약하다는 점이 그런 부분이거든요.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경기 한 경기에 모든 걸 던지는 투쟁심과 본능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 그걸 옆에서 체험했어요. 부천전 종료 직전에 티아고의 결승골이 터질 때 저를 비롯해 옆에서 지켜보던 팀원 모두 간절했어요. 그 간절함이 결과로 이어지니까 그 짜릿함을 앞으로도 느끼고 싶어서라도 더 열심히 하고 계속 엔트리에 들고 경기에 나서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 소화한 2경기, 그리고 마지막에 동행한 플레이오프에서의 경험은 다음 시즌 제 큰 자산이 될 거 같아요.”

공격적인 축구를 뒷받침하는 수비수가 꿈입니다

인터뷰 시점에 이찬욱은 동기이자 팀 동료인 이준재와 함께 진주고 축구부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는 20세 이하 대표팀의 소집 훈련을 앞두고 모교에 가서 몸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동시에 올 시즌 두 선수가 얻은 소중한 경험을 후배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재명, 윤일록 이후 우수 선수 배출에 애를 먹고 있는 경남FC 유스에게 자부심이 되는 존재들이다. 

​“진주고에서 사흘간 운동했어요. 예전 생각도 많이 나고, 후배들이 저를 보고 뭔가 배울 수 있다면 뭐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같이 훈련도 하고 궁금해하는 걸 가르쳐줬어요. 준재랑 같이 간식도 사 줬어요. 작은 부분이지만 저희가 고등학교 때 훈련하면서 가진 궁금증이나, 선수로서 어떻게 그라운드에서 나를 표현할 지 막막했던 것에 대한 답을 돌려주고 싶더라고요. 유스팀의 목적은 성적보다는 팀이 지향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의 성장인 거 같아요. 구단에서 방향을 더 잡아준다면 후배들이 더 많이 프로로 올라올 거 같아요.”

​다시 어떤 센터백으로 성장해 나가고 싶느냐는 질문에 이찬욱은 확고한 답을 내놨다. 
“지금까지는 프로에서 누가 다쳐서 투입되는 상황이었지만, 앞으로는 그 자리에는 반드시 이찬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팀에 제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비중 있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팀이 앞에서 공격적인 축구를 하기 위해 수비라인을 한껏 올려도 제가 뒤에서 상대를 다 잡아주는, 마음껏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센터백이 되고 싶어요. 나폴리에서 김민재 선배님이 그렇게 하는 거 같아요. 뒤에 그 선수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더 앞으로 압박하고 공격하자고 할 수 있는 정도로 믿음을 주는 수비수이고 싶습니다.”

​이찬욱의 연령별 대표 경력은 올해서야 시작됐다. 지난 1월 처음 들어가서 축구협회 엠블럼과 태극마크가 붙은 유니폼과 훈련복을 받았을 때 느낀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이찬욱에게는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제가 지금까지 짊어졌던 그 어떤 책임감도 커요. 제가 못하면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모든 분들이 실망을 하시겠죠. 태극마크를 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이상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위치라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동시에 지금부터 새로운 꿈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연령대의 선수들은 향후에 A대표팀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기회와 자격을 갖춘 만큼 그 꿈을 위해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죠. 그리고 언젠가는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까지 갈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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