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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득 황설수설23] ' Basic and 신군부 '

                             Basic and 신군부 

한국인이 원어민과 다르게 발음하는 영어 단어 중의 하나가 Basic이다. 안타깝게도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다수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베이직이라고 발음하는 혼동의 근원을 초보자들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Beginner's All-purpose Symbolic Instruction Code에서 찾고 있다. 앞 글자를 딴 BASIC을 베이직이라고 소개한 결과라고 보는 분석이다. 

그래서 70~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50대 이후의 장년층에서 주로 베이직이라고 읽는다. 이러한 발음상의 오류는 basically에서는 수정이 되어 베이지컬리라고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편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책이 번역될 당시에 출판사에서 마케팅 전략으로 영어 단어 basic과 BASIC을 구별하기 위해 베이직이라고 명명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필자가 유추건대, 80년대 초반 TV 광고에 베이지(Beige)라는 색깔이 소개되고 유행했었는데 베이지와 베이직이 상호 동반 유행을 타면서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자매결연을 하였을 수도 있다. 

Basic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지금까지 그 명맥이 언론이나 정치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유지되고 있는 “신군부”라는 단어가 있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 “신군부”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전두환 노태우의 정규 육사 11기를 필두로 1212와 518을 주도한 하나회 군벌을 신군부로 정의한다. 또 신군부는 박정희 시대의 육사 8기를 중심으로 516을 진두지휘하였던 실세 군부가 1026사태로 대거 몰락에 즈음하여 새로이 우리 군과 정치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신생 정치군인 집단인 셈이다. 

그러나, 이 신군부라는 표현은 1979년 1026사태로 박 대통령의 서거 이후 곧 이어질 대권을 꿈꾸고 있던 공화당의 육사 8기 김종필, 신민당의 반정부와 반독재 투쟁의 김영삼, 그리고 신민당에서 이탈하여 학생 세력과 노동자 세력을 등에 업은 재야 세력을 규합한 혁명지휘부 성격의 국민연합을 이끈 김대중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김재규의 1026사태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는 격랑의 정치 실종과 불안을 걱정한 대한민국 언론이나 정치 학계에서 주장한 표현도 아니었던 것이다.

 극우 논객이라 알려진 지만원(육사 22기)에 따르면 이 신군부라는 말은 “남조선에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인민무력부는 신호만 떨어지면 즉각 출동할 수 있도록 24시간 가동하라.”라는 김일성의 지시 명령에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그 시점이 1979년 12월 20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군부의 출처도 모른 채 아니면 애써 외면한 채 1980년 이후로 지금까지 베이직처럼 신군부는 현대 정치사의 단골 유행어이자 오류가 되었다. 신군부는 김일성의 북조선 스케치에 남파 및 고정 간첩과 동조 정치 세력의 덧칠로 남조선에서 명품 정치 선동 인용어가 된 셈이다.

2013년 이후 반군 단체와 내전 상황이었던 수단에 자국민 수백만 명을 학살한 최악의 알 바시르 철권 독재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군부 쿠데타가 2019년 4월 아침에 발생했다. 그러나, 수단은 정치적 안정을 찾기보다는 다시 2021년 2차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대치 내전 상황이 계속되었고 정치 불안과 군부 내의 알력과 갈등은 2023년 4월 15일 내전이 격화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빠지게 되었다. 지난 2023년 5월 14일 태국의 군부 정권이 총선에서 야권에 다수의 의석을 내주면서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군부의 250명이라는 상원 의원 임명권 때문이다. 

필자가 생도 3학년인 1990년에 태국 육사 생도들이 태릉의 한국 육사를 방문 했었다. 당시의 생도들은 저마다 “저기서 누가 총리가 될 줄 모른다”라는 농담을 한두 번씩은 들었다. 입헌 군주제 하의 군부 독재가 지속되는 특이한 구조의 태국에서 육사 출신 장성이었던 청백리 잠롱의 첫 민선 방콕 시장당선은 정치적 희망과 부정부패를 타파할 영도자로 여겨졌지만, 정치적으로는 실패했다. 뉴스에 자주 보도되는 미얀마의 군부도 빼놓을 수 없는 독재 정권의 대명사이다. 태국과 미얀마 외에도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가 인도차이나반도 내의 국가들이다. 각각 전쟁, 킬링필드, 그리고 일당 독재 공산 국가로 세 나라에 대한 부연 설명이 가능하다. 인도차이나반도는 군부나 공산 독재의 공통분모가 있다. 

한반도 주변국도 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이 공산당 독재를 넘어 일인 독재 체제로 정권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군부 독재란 앞서 언급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분쟁국들 그리고 과거 남미의 칠레나 아르헨티나 같은 무자비한 군사 정권을 일컫는다. 유독, 세습 독재 병영국가인 북한과 대치 휴전 상태인 한국은 군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가 어떻게 정착되었는지 따져 볼 일이다. 필자는 그 뿌리를 한국전 당시 민주주의가 몸에 밴 이승만 대통령의 노력과 능력이라고 본다. 미 8군 사령관 벤플리트 장군의 도움으로 미 웨스트포인트의 민주적 교육과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한국군의 정예화에 힘썼다. 

미 육사의 교육제도를 지도하고 동시에 전쟁 후 호전적 군사교육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미 군사 고문관들이 육사에 상주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눈과 귀를 피해 “북진 통일 고토 회복”이라는 기상과 군인 본분을 육사 11기 이하 생도들에게 이 대통령은 강조하였다. 군에서 흔히 불명예의 칭호인 “고문관”이라는 은어는 한국전 후 육사 교육에서 그 에피소드를 찾을 수 있다. 이 대통령은 1960년 315 부정 선거 후 거센 국민적 저항에도 군부를 이용한 비상계엄 없이 하야를 결정했지만 우려한 대로 장면 내각의 정국은 혼란에 빠지고 1년 후 급기야 516 군사 혁명을 맞게 되었다. 군 출신 대통령은 정치와 경제를 안정시키고 번영까지 도모하였다.

 남북분단의 휴전 대치 상황과 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의 국제적 냉전을 이용한 장기 군부 독재의 틀과 구체적 실행이 가능한 여건이었으나 1026사태는 한국의 정치와 군의 흐름을 일시에 초기화 상태로 바꾸었다. 육사 12기 하나회 핵심이었던 박희도 육참총장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계급정년의 문제를 꺼냈다가 “양로원 만들 일 있나”라는 면박으로 퇴짜를 맞았다. 1990년 전후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생도들은 부족한 급식비로 생도 대장 김석제 준장이 경제기획원 장관을 출근 때마다 찾아가 결국 생도들은 양배추김치와 선짓국 신세를 면했다. 한반도 내 남한에서는 권력과 부의 신군부는커녕 국물도 없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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