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70」         
   육순(六旬) 즈음에

    
     강  민  진
    흐르는 세월속에 
    다져진 몸과 마음

    육순에 접어드니
    강철도 녹이 슬 듯
 
    기억은 가물거리고
    행동마저 굼뜬다.
 

    세상사 풍파에도
    견뎌 온 삶의 흔적

    육신은 쇠잔해져
    병명만 늘어나고

    이마에 아로새겨진 
    속 주름만 남았네.

    한 백 년 장수 시대
    다가올 남은 인생

    미리 걱정치 말고
    집착도 훨훨 버려

    겸손히 자연과 글을
    벗하며 살아가리.

◎ 돌거북과 문수동자
  나는 자연석을 소재로 하여 수천 점의 작품을 만들었다. 돌거북 작품도 그중 하나다. 돌거북 작품이란 넓적한 타원형의 몸통 돌에다 머리모양의 길쭉한 돌을 이어 붙여 거북이 형상을 만든 것을 두고 말함이다. 몸통 돌과 머릿돌은 따로 보아도 꽤 볼만한 모양을 지닌 것들이다. 돌거북 작품은 400여 점에 이른다. 3년 전 어느 날이었다. 그날 오전 9시경 이곳(거제자연예술랜드)의 문을 열자마자 모자(母子)인 듯한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인사를 건넸더니 지리산 자락에서 새벽에 출발하였다며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찾아왔다고 아들이 말했다. 그로부터 한 30여 분이 지났을 즈음 할머니께서 주인을 찾았기로 뵈었더니 연못가에 놓여 있는 돌거북 하나를 가리키면서 달라고 했다. 구입하겠다는 말인가 하여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어서 달라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그냥 달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이곳의 문을 연지가 이십 수년인데 남의 작품을 그냥 달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인지라 당황스럽기도, 멋쩍기도 했다. 왜 달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집에 둘 데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곳에는 너무 많으니 하나 가져 가겠단다. 팔순이 넘은 분이 그러하니 거절하기도 무엇하여 ‘싸 둘 테니 나가실 때 가져 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돌거북이 많기도 했다.

  오대산의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다. 이 상원사에 국보 제221호인 문수동자상이 있다. 이 문수동자상에는 조선조 7대 임금인 세조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세조는 만년에 온몸에 생겨 난 종기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종기가 생겨난 내력은 이러했다.  단종의 모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서 힐책했다. “여보시오, 내 말을 들어 보시오. 아들이 나이가 어린 탓으로 당신이 섭정을 하고 있었으니 왕이나 다름없을 터인데 무엇이 부족하여 왕위를 빼앗고 영월에 귀양까지 보내더니 다시 그렇게도 무참하게 죽여 버렸단 말이오. 왕위가 그렇게 탐이 나던가요. 이 더러운 양반아”하고 침을 뱉었다. 이런 까닭인지 세조는 이로부터 온몸에 종기가 생겼다.  이 종기는 용하다는 의원도, 신비한 영약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세조는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지난날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강원도 오대산 상주 도량의 문수보살이 영험하다는 소리를 듣고 상원사에 가서 문수보살 님께 지극정성으로 100일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백일째 되는 날 몸이 가려워 견딜 수가 없어서 기도를 마치고 개울로 나아가서 목욕을 하게 되었다. 몸에 난 종기를 신하들한테도 보이지 않으려고 혼자 목욕을 했다. 혼자서 몸을 씻자니 누가 등 좀 밀어줬으면 하던 차에 마침 개울 옆 샛길로 한 동자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세조는 동자를 손짓해 불러 자기의 등을 좀 밀어 달라고 부탁했다. 동자가 그러마하고 부드러운 손으로 등을 밀어주자 가려운 부분들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자를 향해 칭찬을 하고 다시 이르기를 “네가 나가서 행여나 사람을 만나더라도 상감 옥체에 손을 대고 종기를 씻어 드렸다는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더니 동자가 미소를 지으며 “잘 알겠습니다. 상감께서도 후일에 누구를 보시더라도 오대산에 가서 문수동자를 친견했다는 말씀은 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하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세조의 불치 종기는 씻은 듯이 나아 버렸으므로 환희와 감사한 생각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라에서 제일가는 화공(畫工)을 불러 자기가 본대로 문수동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또 조각하여 모시었으니 지금의 상원사 선원에 모셔진 문수동자상이 곧 그것이다.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세라
    사람이 되어나서 옳지 곧 못하면 
    마소를 갓 곳갈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송강 정철(鄭澈)의 「경민편(警民編)」에 있는 작품이다.
 송강은 思君•警民•勸善•詠風 전반에 걸쳐 안한 노래가 없는, 우리 시가 사상의 거인이다./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구나 / ‘세상 사람들’이라 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라고 한데서 친근감을 느낀다. 옳은 일 하자는 말, 옳은 말씀이다. 세조가 그의 조카인 어린 단종을 폐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그 죄악의 응보가 온몸에 생겨난 악성 종기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날 지리산 자락의 할머니께서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싸놓은 돌거북을 웃으며 건네 드렸다. 뒷날 지리산 자락 할머니와 문수동자를 자주 떠 올렸다. 생각건대 지리산 자락 할머니는 세조 앞에 나타난 문수동자와 같은 분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말이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시인/게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육순 즈음에〉는 나이 예순에 이른 강민진 시인이 그 심경을 3수 연작으로 읊었다.《논어(論語)》에서 공자가 “나이 예순에 이순(耳順)하고 나이 일흔에 마음먹은 대로 해도 구(矩)를 넘지 않는다.” 고 한 대목을 생각나게 했다.
 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지난번 중학교 동창 모임에 갔었는데 친구 대부분이 건강과 노후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었다. 오십 즈음에는 눈이 침침하여 잘 보이지 않더니만 육순에 접어드니 고혈압, 당뇨에 무릎 관절까지 좋지 않아 약 가지 수만 늘어가는 상황을 서로 공감하면서 100세 장수 세대에 건강하게 살아가자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인 것 같았다. 정작 본인도 집 뒤뜰 창고에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갔는데도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친구들도 이런 경험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예전에 어르신께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머리맡에 약봉지 가지 수만 늘어나니 더 늙기 전에 건강관리 잘하시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어느새, 그냥 웃으면 지나쳐 버렸던 옛이야기들을 실감하는 육순의 문턱에 와 버렸다. 아직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이렇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냥 주저앉을 수 없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성찰해보는 과정에서 ‘육순 즈음에’라는 졸시를 지어 보았다.” 고 했다. 
 
노년을 두고 ‘삼광(三光)의 나이’라고 했다. ‘세 가지 빛의 나이’는 곧 노숙(老熟)과 노련(老鍊), 노장(老壯)을 말함이다. 노숙을 잘 익은 가을 과일 같은 향기를 풍기며 삶이 완벽하게 성숙한 것을 의미한다. 노련은 솜씨나 재주가 최고의 경지에 다다라 있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젊어서 일찍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제 비로소 이룩해내는 나이가 노년이다. 노장은 노숙과 노련을 겸하면 나이 들어서 오히려 건장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로(耆老), 예순을 넘겨야 기로라고 하는데 기(耆)는 ‘힘셀 기’이고 ‘즐길 기’이다. 예순을 넘어서 비로소 장사처럼 힘깨나 쓰고 삶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드는 것, 그것이 바로 기로이다. ‘삼광의 나이’며 ‘기로’는 시인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육순에 접어드니 기억은 가물거리고 행동마저 굼뜬다. 병명만 늘어나고 예서제서 삐걱거린다. 하지만 마음은 방하착이다. 미련도 집착도 훨훨 날려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과 글을 벗하리란 다짐, 시인의 심성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국궁에, 시조창에, 시조 창작에, 시인은 영락없는 閑良이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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