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에서 꼬박 1년이 지나면 중위로 진급한다. 달라진 계급장을 수여하고 또 일선 소대장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전통은 부대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본인은 경기도 파주 금촌 일대에 소속 부대가 편성되었으나 지금은 해체된 101여단에서 중위 진급을 맞이하였다. 1993년 2월 말경 제법 쌀쌀한 날씨에 여단 사령부에 모인 소위들은 교육 등록과 정신 훈화에 이어서 소대장 연구발표 시간을 가졌다. 저녁 식사 전의 축구 경기도 그립다. 정신 훈화란 일종의 안보 교육으로 여단 작전참모가 주관하였다. 안보 및 국제 정세에 관한 주제가 무르익을 즈음 강사는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몇 % 정도 될 것 같냐? 라는 질문을 하였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대뜸 필자가 손을 들어 ”군인이 전쟁의 확률을 따지고 있습니까? 1%의 확률에도 최선을 다해서 국방에 충실해야 합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새파란 갓 중위가 덤벼들 듯이 대꾸하니 강사도 당황한 눈치였다. 동료 풋내기 중위들은 눈과 귀를 확장한 채 ”누구야?“. ”아 저놈이 대대장 아내에게 뽀뽀했다는 그놈이구나! “라고 확신을 한 듯 작전참모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강의를 이어갔다. 아마도 육사 선후배가 아니었으면 발칙한 놈이라는 낙인과 괘씸죄에 걸려 여단을 떠날 때까지 좀 괴로웠을 것이다. 

전쟁이란 통상적으로 세 단계를 거친다. 갈등과 분쟁 그리고 전쟁이다. 개인 간의 갈등이 폭력으로 악화하듯이 국가 사이에서도 전쟁의 시작을 갈등에서 찾는다. 가까운 예로 일본과는 독도 문제가 갈등의 원천이다. 이 갈등이 더 크게 확산하면 분쟁인데 지난 이명박 정권 때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갈등을 넘어 분쟁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실례가 있다. 다행히 일본에서 전투기나 해상 자위대를 보내는 등의 맞불 무력 행사가 없어 더 이상 분쟁으로 확전되지는 않았다. 독도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여 분쟁지역으로 군사적 대치까지 간다면 전쟁의 시발이 되겠지만 독도 문제로 한일 간 전쟁은 없을 것이고 대신 일본은 국제사법 재판소에서 누구의 영토인지를 가리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국제사법 재판소에서 독도의 영유권 문제의 결론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 준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국인의 반일 감정이 집단광기로 전환된다면 군사적 대치가 불가피한 분쟁지역으로 급변될 수 있다. 집단광기는 전쟁의 방아쇠이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가보자.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위성국일 때 많은 핵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배치되었다. 보도로는 3,000여 개의 전술 핵탄두를 포기한 우크라이나는 친러와 친서방정권의 시소(seesaw) 같은 등장으로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 및 사회의 부정부패로 나라는 분열되었다. 특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부 지역은 친러지역으로 줄기차게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포격전과 국지전이 일상화된 분쟁지역이었다. 결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복잡한 역사와 실타래처럼 꼬인 크림반도의 영토 주권과 정체성이라는 갈등 요인이 1994년 12월, 미국, 영국, 러시아의 부다페스트 각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가 철수하는 시점으로부터 자국의 구심점과 안보 방어선을 허물어 버린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해방 후 한반도에서 선조들이 우려하던 대로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는 경고가 그대로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와 러시아의 자국 이익 우선의 정책과 행동으로 여실히 재현되고 말았다. 힘없고 무지했던 우크라이나 국민이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것인가? 푸틴에 의한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인들이 절대자 푸틴에게 보내는 지지가 집단적 광기이다. 이에 맞서 불사 항전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지도력 또한 자국민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고 있다. 절대적인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쉽사리 휴전 협정을 맺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다. 막상 전쟁의 뚜껑은 러시아의 오판에 기인하지만, 교전을 거듭할수록 우크라이나군의 전투력과 서방의 지원은 공고해지고 서방의 지원이 지속되는 한 장기전으로 진행될 태세다.

가까운 이웃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독재자 시진핑이 대만을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전쟁이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과연 전쟁은 일어날 것인가? 장개석과 모택동의 기나긴 싸움의 결말은 625전쟁으로 모택동의 공산군이 대만 침공의 시기를 놓쳐 포기하는 행운으로 국민군이 대만에서 지금의 중화민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사관이 지배적이다. 최근 들어 대만과 중국과의 가상 전쟁 시나리오도 언론보도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강화되고 있는 한미일 군사 동맹에 대만의 첨단 기술을 매개로 한미일 대만 간의 반도체 동맹도 물밑 작업이 치열하다. 지금 한반도에는 한중 우호 관계 복원의 주장과 한미일 동맹 우선의 극단이 대치하고 있다. 이 두 주장의 충돌에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가 있다. 결국 베트남 파병의 과거를 따를 것이다. 다만 대만 침공은 큰 물음표다. 대만은 우리보다 앞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우리보다 많은 군인과 군무원이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을 위해 희생되었으나 반일 감정이 우리와는 다르다. 

그 이유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대만 집권당의 친중과 반중의 정치적 좌우 진동에도 불구하고 전쟁사로 미루어보면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대만을 중국이 침공하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한미일 동맹은 대만 유사시 중국 동해안의 핵 발전소와 싼샤댐 공격을 감행해 줄 비장의 카드로 한국의 미사일 전력을 확보한 셈이다. 서해안에서 국군의 해·공군력도 가상의 적이 추가된 이상 증강이 필요할 것이다. 양안(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 되면 될수록 우리도 얻을 게 많다. 과거엔 베트남전의 보상으로 경제원조자금 지원이었지만 이제는 한미일 군사 동맹의 대가로 우리가 필요한 실리를 요구할 수 있다. 전쟁의 구렁텅이로의 두려움과 집단광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강으로 똘똘 뭉친다면 대만의 최첨단 기술 산업의 협력과 확보도 가능하리라 판단된다. 
해방 후 일본이 일어난다고 했던가? 이번엔 한국이 한다면 한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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