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79」
        보름달

      심 옥 배

    뭇 별이
    산허리를
    스치듯 강을 건너
    저
    멀
    리
    태백산을
    늦도록 맴돌다가
    휘영청 
    달빛 속으로
    하얗게 뜬 아버지.

◎오리(汚吏)와 잼버리
태풍 매미에 놀란 가슴이라 6호 태풍 카눈에 얼마나 쫄고 긴장했던지 말복이 지나는 줄도 몰랐다. 태풍과 함께 새만금 잼버리 대회도 끝이 났다. 새만금, 발꿈치를 힘껏 세우고 멀리 바라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었기에 만금(萬金)의 부를 이루어주리라는 희망을 안겨 준 곳이기도 했다. 그 새만금 벌판에 세계 스카웃들이 모인 잼버리대회가 개최되었다. 그것도 태권도 연맹이 자리 잡고 있는 산 좋고 물 좋은 무주 구천동을 마다하고 나무 한 그루 없는 새만금 벌판에서 치러졌다. 8월 염천에 159개국 4만 3천 명의 청소년들이 모여들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드디어 비명 소리가 들리고 오물이 넘쳐났다. 전라북도 스카웃들은 가장 먼저 새만금 대회장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국무총리가 달려가서 화장실 청소를 했다. 무려 2조가 넘는 예산, 1170억을 배정받아 152억으로 대회를 치르는 기적(?)을 보았다. 크루즈 여행까지 무려 99차례에 걸친 공무원들의 출장도 목격하였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 썩은 오리(汚吏)들의 작태를 온 국민은 지켜보고 경악했다.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 닿자 哀切히 우는 서러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草家 三間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情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 맺힌 열두 줄은 구비구비 愛情인데
   靑山아, 왜 말이 없이 鶴처럼만 여위느냐.
            정완영, ‘祖國’, 전문

 백수 정완영 선생은 자작시 ‘조국’의 해설에서  “눈 감고 가만히 생각하면 내 조국 한반도는 내 품에 안긴 한 채 가야금이다.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아파오지 않는 손 마디라고는 없다. 둥기 둥기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끼듯 목 메이면 꽃잎도 떨어지고, 푸른 물 흐르는 情에 흰 옷자락도 감겨들고. 아! 내 사랑. 통곡으로도 다 못하는 구비구비 애정이여, 너는 왜 말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고 조국사랑을 노래했다. 

 오늘은 썩은 관리들로 해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78주년 광복절이다. 기회에 썩은 아전(衙前)을 잘못 다스려 낭패한 청백리 얘기를 하여 본다. 청백리(淸白吏)는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관료상으로 탐관오리의 반대말인 셈이다. 청백리는 아무나 지칭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타천으로 뽑힌 것인데 그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보아도 그 자리에 추대되기가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영상과 좌•우상으로 짜여지는 의정부, 그 아래의 육조판서들, 중앙정부의 2품 이상의 당상직, 백성과 관료의 기강을 관장하는 사헌부와 임금의 부정을 규탄하는 사간원의 수직들이 입을 모아 추천해야만 청백리의 칭호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청백리가 임금의 특명으로 의주 부사에 임영된 것은 중국과의 무역 역조를 시정케 하기 위함이었다. 청렴결백하기가 까치 배 바닥 같은 이 청백리가 부임하자마자 파헤친 부정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물화를 계량하는 저울대의 추였다.  순금 백 근인 그 저울추는 역대 의주 부사들이 야금야금 깎아 먹어 버린 탓에 명색이 백근이지 실제 중량은 50근도 채 못 되는 것이었다. 무역 역조는 뻔한 일이었다. 저울추가 그 모양이라 50근도 못 되는 중국 물화가 백 근으로 계량되었으니 말이다. 이 사실을 발견한 청백리의 첫 사업은 평안도 일대의 금광에 명하여 순금을 긁어서 모아 정 백 근짜리 저울추를 주조케 하는 것이었다. 새로 만들어 놓은 후에 이 저울추를 깎아 먹는 놈이 생기지 않도록 무슨 비상 수단을 써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었지만, 그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고 있는데 하루는 아전 한 놈이 나서서 헌책을 했다. 후손만대 아무도 깎아 먹지 못하도록 그 순금 추에다 정 백근이라는 것을 새겨두자는 안이었다. 그러고는 ‘신해년 11월 1일 의주 부사 청백리 아무개 새김’이라고 적어두면 앞으로 누가 의주 부사에 부임하더라도 언감생심 그 저울추를 벗겨 먹을 생각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딴은 그렇겠다 싶었다. 모든 물욕을 초극해서 청백리의 칭호까지 받은 의주 부사였지만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싶은 공명심은 미처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던지, 그 아전 놈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 저울추의 명각이 닳아 없어지지 않고 자손만대에 전해지기 위해서는 글자를 되도록 크고 짙게 새겨야 한다는 아전 놈의 건의 역시 받아들여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정 백근의 저울추에 깎아낸 순금이 30근, 20근은 아전 놈이 챙기고, 나머지 10근을 그 청백리가 내직으로 승차할 때 금반상으로 만들어 증정했는데 그 청백리는 아전 놈의 성의를 물리칠 수 없어 받아 가더라는 얘기다. 준비 부족에다 폭염과 장마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때에 천만다행하게도 대통령의 호소가 닿아 잼버리대회는 삼성을 필두로 하는 여러 기업과 종교계, 심지어 군까지도 동원되어 수습되었고 마침내 K팝 공연으로 근근이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다. 책임 공방을 남겨 둔 채 말이다. 폭염 속에 광복의 의미를 되새긴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시인/게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보름달〉은 어린 자식을 남겨 두고 홀연히 떠나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보름달로 떠올라 쉰 살 넘은 딸자식을 품어 주신다는 못내 그리는 父情을 단수로 읊은 심옥배 시인의 작품이다. 보름달은 보름인 음력 15일 밤에 뜨는 둥근달을 말한다. 보름달은 해가 질 무렵에 떠서 해가 뜰 무렵에 지는데 보름달을 두고 만월(滿月)이라 한다. 그리곤 점점 작아지면서 반달이 되고 하현달이 된다.

 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입추가 지나면 산들바람에도 무더위가 가시고 밤하늘 바라만 보아도 그리움의 대상이 하나둘씩 떠오릅니다. 이맘때면 늘 어김없이 밤하늘의 별을 쫓아 봅니다. 쏟아 낼 듯 총총한 별들의 이야기가 기억 저편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은 신화 속에 주인공을 찾는 것도 아니요, 어린 자식을 남겨 두고 홀연히 떠나신 아버지의 품입니다. 아버지의 커다란 품은 넉넉한 보름달이 되어 쉰 살이 넘은 딸을 품어 줍니다.” 직접 차를 몰고 여행길에 나서곤 하는 시인이 다달은 곳은 / 뭇 별이 산허리를 스치듯 강을 건너 / 다달은 태백산이었다. / 태백산을 늦도록 맴돌다가 / 마침내 / 휘영청 달빛 속으로 하얗게 뜬 아버지 /를 보았다.
 
시인이 그리는 아버지, 아버지는 한 가정의 역사이건만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셨다. 그리곤 보름달이 되셨다. 그것도 넉넉한 품을 지닌 보름달이 되어 쉰 살이 넘은 딸내미를 품어 주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밤하늘의 별을 쫓아 본다는 시인, 쫓는 별 속에서 찾는 것은 넉넉한 품을 지닌 아버지였다. 그 그리움이 간절하였기에 아버지는 보름달이 되어 하얗게 떠올랐다. ‘저 멀리’가 한 자씩 행을 이루었음이 조금은 독창적이라 단조로움을 피했다고나 할까. 보름달과 아버지, 그 여운이 귓전에 오래 머문다.―능곡 시조 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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